[군서면 하동리] 3.1운동 애국지사 숨결이 살아있는 충절의 고향
[군서면 하동리] 3.1운동 애국지사 숨결이 살아있는 충절의 고향
<하동리...1992년 9월 12일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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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2.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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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서면 하동리

"이장! 그 위에 시멘트 좀 쓸어내야겠어", "시멘트 한삽 더 가져와", "아이구, 지도자 일 잘하네" 평소 원로회원들만 나무그늘에 앉아 소양하던 조용함이 그나마 젊은(?) 이장, 새마을지도자 등이 끼여들어 공동작업을 하는 통에 시끌시끌하다.

지게차 움직이는 소리가 멎으니 시멘트 비비는 삽소리하며 공사판 특유한 건강함과 활력이 살아 숨쉰다. 70을 거뜬히 넘긴 노인들까지 `나도 한삽'하며 삽을 들고 마을자랑비 세우는 일에 나섰다. 4일 오전 군서면 하동리 경로당 앞 공터에는 마침내 세우게 된 이 마을 `마을자랑비' 건립을 위해 20여주민들이 모여 공동작업을 펼치고 있었다.

이윽고 자랑비는 세워지고 차이길(84) 원로회장은 막걸리 한사발과 새우깡 한봉지를 제사음식에 대신하여 깊이 고개숙여 자랑비와 함께 마을의 영원한 화합과 발전을 빌었다. `우리 마을은 마고실과 마리뜰, 옥녀봉, 새터로 북쪽에는 전설이 깃든 식장산이 휘감아 애워싸고, 일제시대에 도내에서 독립투사로 그 이름을 드날리신 김순구 선생을 주축으로 이 마을 애국지사 25명을 비롯하여 면민이 1919년 4월8일 만세봉에서 만세를 부르며 항거하시다가 김순구 선생은 대표로 잡혀가 많은 고문을 받으시다 순절하셨으니 그 얼 어찌 장하다 아니하랴... 후략'

일제치하에서 만세운동을 벌이다 장렬히 순국한 김순구 열사를 비롯한 26인 애국지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 마을주민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이자 자긍심을 북돋아주는 원동력이다. 그 원동력의 이면에는 뿌리깊은 3.1정신유지계(회장 차이길)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다. 3.1정신유지계는 일제치하에서 만세운동으로 항거하다 고문 등을 당한 김수눅 열사와 25명의 애국지사의 후손들이 일제하에서부터 비밀리에 조직, 항일정신을 계승해왔으며 해방후에는 공식적으로 김순구 열사 추모제를 거행해왔다.

지난 91년 8월15일을 기해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아 김순구 열사가 독립유공자로 포상되었으며 여기에서 나오는 연금으로 3.1정신유지계의 기금을 보충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항일정신이 새겨진 마을자랑비 사업에 90만원을 투자하는 한편 당시 만세를 불렀던 만세봉을 후손에게 알리고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만들기 위해 `만세봉 기념비'를 세웠다. 80가구 330여주민들이 마고실, 마리뜰, 옥녀봉, 새터 등 4개 자연마을에 흩어져 평화롭게 살고 있는 터전 하동리.

벼농사를 주로하는 전형적인 농촌인데다 12가구가 14동의 느타리버섯 재배사에서 버섯재배로 고소득을 꿈꾸고 있다. 한때 잠업에 거의 모든 전 농가가 참여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옛얘기가 되었고 젊은이들의 이농 등으로 딸기재배도 이 마을에선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다만 인근 대전에 있는 아파트의 경비나 신옥천전력소의 경비 또는 일반공장에 다니는 가구수가 20가구가 족히 넘어 농외소득을 추구하는 농가가 많아졌음이 뚜렷한 변화라면 변화.

이밖에 마을에서 많이 재배하고 있는 작목은 복숭아, 포도 등 몇개 과실류이며 91년 통계로 임야를 제외한 경지면적 중에서는 논이 36.7ha로 가장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91년 군에서 지정한 원로회 시범마을인 하동리에는 옥녀봉에 얽힌 전설이 내려와 현대와의 묘한 끈을 느끼게 해준다. 마을의 뒷산 이름은 옥녀봉으로 그 옛날 늙은 부모가 무남독녀로 얻은 옥녀가 가야금을 잘 타는 등 출중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가 미처 꽃봉우리도 펴보지 못한 채 돌림병으로 죽자 옥녀를 뒷산에 묻었는데 산 앞에는 장고벌이라하여 넓은 평지가 있어 그곳 지형이 `옥녀탄금형'이라는 명당자리였다.

사람들은 이곳을 일러 옥녀가 가야금을 타는 형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75년 이곳에 한국전력 신옥천변전소가 들어서면서 송전선 12줄로 가야금 줄과 똑같다 하여 옛 전설과 상통하고 있다는 묘한 여운을 남기게 하고 있다. 성씨별로는 뚜렷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문중은 없으나 선산곽씨가 10가구, 함창김씨와 밀양박씨가 각각 8가구씩을 이루며 살고 있으며 이중 군서면에 가장 먼저 정착해 23대째 살고있는 함창김씨가 이 마을에서도 역시 18대째를 살고 있어 가장 연륜이 깊은 문중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도 교육위원인 김광수씨가 하동리 출신인 것을 비롯, 박덕룡 동이부면장, 박희직 청성면 산업계장, 군서면에 근무하고 있는 박희무씨가 공직생활을 하고 있다. 마을일에 언제나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출향인으로는 대전전화국에 근무하고 있는 송동호씨와 역시 대전에 거주하는 곽방환씨, 또한 재경향우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관형씨, 국방부에 근무하는 김희용씨 등이 있다. 마을자랑비 하나를 세우면서도 마을 젊은층과 노인들이 어우러져 서로 격려하며 일손도 없는 가운데 마을책임자들만 죽을 욕을 본다고 혼자말을 하는 촌로의 말에서 마을의 분위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마을의 숙원으로는 아직 비포장인 채로 많이 남아 있는 마을안길과 농로의 포장문제. 마을 전체가 암반지역인지라 식수문제가 염려스러웠으나 91년 지하수를 개발, 아직까지 물걱정은 안하고 살아 다행이라는 주민들의 말과 함께 이웃 대전 도심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기 위해 지정된 그린벨트가 목을 죄는 현실로 드러난 이상 주민들은 신속한 해제 또는 대폭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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