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서면 사정리] 전국에 소문난 '작약미발' 형의 명당 간직
[군서면 사정리] 전국에 소문난 '작약미발' 형의 명당 간직
<사정리...1996년 9월 21일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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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6.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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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서면 사정리

15년여전 이 마을의 이용희 이장이 평곡리에서 처음으로 딸기모를 가져다 재배를 시작한 이후 딸기는 온 마을에 확산되었고 한 때는 안하는 집이 없다고 할 정도로 최고의 소득 작목이었다.  딸기를 시작한 지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재배 가구수가 크게 줄었다.

매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한 딸기 재배농가수는 올해는 6가구 정도로 축소되었다. 다만 올해 딸기모를 심은 6가구의 경우 딸기를 주업으로 하는 농가로 1천여평씩 대형화된 딸기 포장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재배농가 수가 크게 줄어든 것은 노동력이 줄고 전반적으로 노령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소득작물 재배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사정리는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딸기 재배가 줄어든 대신 현재는 느타리버섯 재배와 포도 재배 쪽으로 눈을 돌렸다. 한때 15호까지 헤아렸던 버섯 재배 농가는 이제 8호 정도 남았으며 포도 재배 농가는 34호에 이른다.  딸기에서 느타리 버섯, 포도 등으로 소득작목재배가 변화되어 온 것이다. 10여년 사이에 이렇듯 소득작목이 변화되었던 것은 농산물이 시세 변동이나 소득작물로의 부침 현상이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소득작물 변화추이에 따라가려는 주민들의 노력이 그만큼 뒤따랐다는 얘기도 된다.

부지런한 이 마을 사람들의 정서는 바쁜 시기이든, 바쁘지 않든 쉴 줄을 모른다. 평소에 마을에 사람들이 없어 보이는 것도 남자들은 농사일을 하면서 아파트 경비 등으로, 여자들은 가까이에 있는 공장 등에 나가 일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렇게 직장을 다니며 농사일을 하고 있는 주민들의 수만도 남녀 합해 40여명이 넘으리란 추정이다.  쉴 틈없이 일하는 마을 주민들의 심성이 잘 나타나는 일면이다. 그렇다 보니 마을 회의 한 번 개최하기도 어려운 형편이 되어 버렸다.

사정리는 전국의 어느 곳에서도 풍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는 곳이다. 그 유명한 군서 8명당 중의 한 곳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사양리의 선인독서, 월전리의 장군대좌, 오동리의 오동제월, 옥녀탐금 등의 명당자리와 함께 사정리는 '작약미발(芍藥未發)'형(함박꽃 봉오리 모양의 지형)의 명당이 있는 곳으로 전한다.  이 명당은 토정비결을 만들어낸 토정 이지함 선생의 전설과 연관이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토정 선생이 전국의 산하를 두루 돌아다닐 무렵, 옥천땅에 들어서서는 작약미발형의 명당이 있음을 발견하고는 자신만이 아는 표식을 해두고 돌아갔다가 갑자기 죽음에 이르러 후손 등에게 미처 그 위치를 가르쳐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렸다 한다.  그 위치는 토정 선생 이외에 충실한 하인인 신개라는 사람만이 알아 토정의 시신을 모시고 묘자리를 찾으러 오던 도중 공교롭게도 신개마저 급사, 천하의 명당은 끝내 찾지 못하고 도로 돌아갔다는 전설이 그 내용이다.

지금도 신개가 죽었다는 곳은 '신각'이라고 하여 군서면 은행리 쯤에 아직도 지명이 전해진다. 신개는 죽을 당시 '삼밭'이란 말만 남기고 죽었다는데 이 말은 지금의 사정리 마전동과 지명이 일치해 마전동이 그 위치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남았다.  또한 지명과 관련해서는 훗날의 얘기이겠으나 마전동 국도변에 함박꽃상회라는 상호가 있어 구색을 갖추고 있다. 지금도 옛부터 전해오는 작약미발형의 명당을 찾으러 오는 전국 풍수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도 흥미로운 얘깃꺼리다.

사정리의 자연마을 중의 하나인 마전동에 위와 같은 얘기가 전해오듯 향정, 마전동, 사기점, 구억말, 말래 등 5개 자연마을마다에는 저마다의 유래가 깃들어 있다.  향정은 옛부터 살구나무가 많았다하여 살구나무향(香) 자를 써서 향정, 또는 살구정이라 불려왔다. 사기점은 고려때부터 청자와 백자를 굽던 가마터가 있어 사기점이라 불리워왔으며 옛 절터도 위치해 오랜 역사를 과시한다.  결국 사정리는 사기점의 사 자와 향정의 정 자를 합해 만들 지명이다.

미 마을은 소재지를 제외하고는 상중리에 이어 군서면내에서 두 번째로 큰 마을이다. 마을에 거주하는 가구수만 1백호 가까이 된다. 이용희 이장의 문중인 경주이씨가 13대째 살고 있는 이곳은 각 자연마을별로도 각성바지가 많아 마을 전체에 결쳐 21개 이상의 성씨가 살고 있는 성씨 집합소 같은 느낌을 준다.  출향인들과는 위친계가 구성되어 있어 비교적 원활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으며 이태우 군의원이 이 마을 출신으로 군서면에 근무하는 김상섭 산업계장과 이기우, 최재문씨 등 박사학위를 소유한 출향인들이 눈에 띈다.

포도, 느타리, 딸기 등을 함께 하는 복합농가들이 대종을 이루는 이 마을에서 독농가로 꼽히는 사람은 손광복, 김기영, 홍광덕, 육동진씨 등이다. 옛부터 큰 동네를 이루며 살았다는 이곳 사정리는 자연마을이 5개로 이루어져 제각각의 삶을 영위하고 있어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는 화목한 마을이다. 군서면 인근 마을에서는 가장 오래도록 사용돼 약 50년전까지도 방아를 찧었다는 연자방아 돌이 향정 마을 입구에서 뭇사람들의 방문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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