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성면 궁촌리] 마당바위, 장수둠벙 전설 잇는 욕심없는 마을
[청성면 궁촌리] 마당바위, 장수둠벙 전설 잇는 욕심없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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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2.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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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촌리 전경

경운기 적재함에 소에게 뜯길 풀을 한가득 싣고 마을길을 내려오는 70노인. 농촌에 그만한 인력이 없다는 것이 70노인조차 농사를 짓지 않으면 안될 상황까지 이르게 한 원인이지만 한편으론 정정한 모습을 보는것 같아 위안아닌 위안을 삼기도 한다.

76세에 이른 궁촌리 노인회장이자 원로회장인 한원구씨. 비가 치적치적 내리는 가운데서도 노부부만 사는 관계로 몸소 소깔을 베러 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비옷을 입은 채로 건강한 웃음을 지으며 기자를 맞는 한 회장에게서 궁촌리의 마을 유래와 전설 등을 들을 수 있었다.

한 회장에 따르면 궁촌리는 원래 활골이라는 자연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궁촌리를 둘러싸고 있는 뒷산의 지형이 활모양으로 생겼을 뿐만 아니라 마을 앞으로 지나는 청성-심천간 지방도가 영낙없는 활시위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을에 처음 자리를 잡은 이가 은진송씨 집안. 그러나 송씨 문중은 임진왜란 당시 인근 소서리로 모두 옮겨가고 그 뒤를 영산김씨 문중에서 이었다.

한때 이 마을 전체를 이루며 집성촌을 형성했던 영산김씨 집안은 지금 한가구만 남기고 모두 다른 곳으로 이주한 상태이며, 지금으로부터 300여년전 청주한씨 집안이 자리를 잡아 현재 10여가구가 남아 있고 경주이씨 집안도 10여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45가구 130여명의 인구가 고향마을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가운데 청주한씨, 경주이씨 집안이 절반정도를 이루고 있는 셈. 가구수가 많을 때는 80여가구가 있었던 것에 비하면 절반정도가 빠져나간 상태인지라 80노인은 물론 마을에서 최고령인 유복순(94) 할머니조차도 바쁜 농사철이면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선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한 회장의 마을얘기가 더욱 흥미를 끈것은 마당바위와 장수둠벙 등 바위에 얽힌 얘기를 듣는 데에서부터였다. 마당바위는 청심도로를 따라 마을의 오른편 산쪽으로 오르다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옛날 어느 장수가 옮겨다 놓았다는 전설을 담고 있으며 어른 20명이 앉아서 놀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다. 

이 장수와 관련해서는 `장수둠벙'이 있어 얘기를 뒷받침해주고 있는데 바위모양이 현대의 욕조와 같이 움푹 패여 한 회장만 해도 젊을 때까지는 그곳에서 목욕했다 할 정도로 여름이면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단다.

결국 장수둠벙은 그곳에 궁촌소류지가 건설되면서 제방 둑 가운데 묻혀버리고 말아 주민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다.  이밖에 서당골, 마골 등 많은 얘기를 담고 있는 궁촌리는 벼농사 외 담배농사와 인삼농사를 조금 지을 뿐 전형적인 벼농사 중심마을이다. 그럴수록 정부의 벼수매 문제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로 마을 앞과 오른쪽 산 새골에 작은 저수지를 축조, 물사정은 어느곳 보다도 좋은 편이다.

이와는 반대로 소득작목 개발은 지지부진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새로운 작목을 시도했던 사람들이 연이어 실패하는 바람에 소득작물 개발에 뛰어드는 주민이 없음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도로사정과 물사정이 좋은 이곳 주민들에게 약 20일전에는 군으로부터 지원금이 나와 마을회관 및 경로당을 보수할 수 있었다.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한 가운데에 깨끗하게 정비된 마을회관은 경로당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젊은층까지 모이는 장소가 되고 있다.

마을청년회나 새마을부녀회가 젊은층의 대거 이농에도 불구하고 재기의 몸짓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기금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경로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매년 효도관광을 펼치고 있다.  부녀회원 가운데 5명이 인근 공장에 취업하고 있음으로 해서 상대적으로 어려워진 부녀회에서는 마을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조성해보는 것이 꿈. 얼마 남지 않은 마을 젊은이 가운데 최진중(37)씨의 삶이 주민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지난 67년 부모님을 따라 궁촌리에 정착한 최씨는 맨손 쥐고 밤을 낮삼아 노력한 끝에 논 4천평을 마련하게 되었고 3천평의 밭을 임대해 각종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농지규모 소득면에서 많은 대농과는 상대적으로 격차는 있으나 땅 한뙈기 없이 시작했음을 볼 때 최씨의 삶은 주민들의 칭찬을 받기에 충분했으며 농촌에서도 성실히 일을 할 경우 결코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믿음을 준 사례이기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현재 마을 젊은층 3명과 공동으로 트랙터 등 농기계를 소유, 마을 공동작업을 도맡아 하고 있는데 젊었을 시절 4-H 활동을 한 경험이 지금까지 살아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유통구조 개선이 앞으로 농촌에 있어서 가장 큰 과제'라고 설명하는 최씨는 부인 이상숙씨와 함께 궁촌리를 지킬 중심인물이다.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젊은층이 줄어드는 반면 마을 원로회에서는 군에서 전체적으로 제정한 마을향약보다는 자체적으로 규범을 제정, 마을규약을 자치적으로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  "요즘 세태를 어떻게 옛날과 비교할 수 있느냐"고 말하는 한원구 회장에게서 점차로 심화된 농촌 노인문제를 느낄 수 있다. 이 마을만 해도 할머니 혼자 가구를 이끌고 있는 가구가 전체 마을의 3분의 1 정도인 12가구.

마을앞 저수지의 준설과 아직까지 포장하지 못한 마을안길의 포장문제는 별로 요구할 것도 없는(?) 이들 주민들의 해결해야 할 숙원이었다.  "가뜩이나 적자라고 울상짓고 있는 시내버스 회사에 대고 우리가 불편하니 `버스를 보내달라'고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는 한주민의 말에서 아직 남아있는 농촌의 심성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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