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면 남곡리] 주민들 뜻 모아 경로당 건립 단합 과시
[동이면 남곡리] 주민들 뜻 모아 경로당 건립 단합 과시
<남곡리...1995년 10월 21일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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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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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이면 남곡리

동이면 남곡리는 옥천읍 동정리와 면 경계를 이루는 마을이다. 면소재지가 아닌 경계마을로는 제법 큰 규모를 갖고 있다.  98호에 달하는 가구수에 주민수는 3백40여명이다. 면 경계마을이 1백호 가까운 규모를 갖고 있는 것은 군내 9개 읍면에서도 흔치 않은 일인지라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이처럼 마을 규모가 큰 것은 사실 남곡리라는 마을이 2∼3개 마을이 같은 법정리로 통합되면서 연유된다. 옥천읍이나 다른 읍면의 경우 마을이 크거나 행정상 불편이 있으면 1,2리 등으로 분구했으나 남곡리는 그에 따르는 분구가 이루어지지 않은데 원인이 있다.

남곡리(南谷里)는 본래 군동면 수남리(水南里)와 행곡리(杏谷里), 군남면 목금리(木金里)가 통합되어 이루어진 마을이다. 수남리란 현재의 옥천읍 수북리의 남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1890년 신유장적에는 군동면 수남리에 6호, 행곡리에 22호, 군남면 목금리에 64호가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동이면이 생기면서 수남리와 행곡리를 통합, 각 마을의 지명 한자씩을 취해 남곡리라 했으며 이때까지도 남곡리는 동이면, 목금리는 옥천면 소속이었다.

이후 1949년 8월 132일 옥천면이 옥천읍으로 승격면서 수북리는 옥천읍, 목금리는 동이면에 각각 편입시켜 남곡리와 한 마을이 되었다.  먹금리는 '목쇠리'를 한자화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현재의 목사리가 되었으며 목사리 이외에 행곡의 우리말 표현인 살골(살구골=향정), 개미재, 신촌 등 4개 자연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각 자연마을 마다에는 나름대로 유래가 있는데 살골은 살구나무가 많다 하여 생겼고, 개미재는 '옥천향지'의 기록상 야산 속에 깊숙히 잠겨있는 마을이라 해서 갬이재→개미재로 음운이 변화되었다고 나오는데 주민들 중에는 개미재의 마을 뒷산의 모양이 개미허리같이 잘록하게 생겼다 하여 개미재라는 지명이 붙었다 한다.  마을 구성상 가장 특이한 것은 신촌의 구성이다. 사실 남곡리는 70년대말, 80년초의 대청댐 건설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수는 늘어났다. 어림짐작으로도 마을 전체를 통해 30여호 늘어났는데 이는 수몰지 주변의 석탄리, 오대리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농경지가 위치한 남곡리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마을이 신촌이다.  정작 남곡리에서 수몰로 인해 고향을 떠난 주민들이 많은 반면 수몰민들이 보금자리를 찾아 집단 이주한 예는 옥천읍 장천리 등 일부에 불과하기에 특이한 예에 속한다.

남곡리는 예전부터 창녕조씨 집성촌이었다. 현재 조씨는 39가구에 달한다.  마을은 자연마을별로 떨어져 있어 행정을 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자연마을이 동떨어져 있음으로 해서 새마을 사업이나 기타 마을대상 사업이 배정되어도 어느 곳에 먼저 할 것인가를 놓고 신경전(?)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1949년 옥천읍 승격 이전에 옥천면이었던 목사리와 여타 마을과의 거리가 1km가 넘는데서 오는 불편이 많다. 남곡리 전체가 옥천읍 생활권이기는 하지만 목사리는 매화리 앞 지방도를 이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교통이 편리하다.  반면 살골, 개미재, 신촌 등 3개 마을은 하루 3∼4회에 불과한 버스 운행횟수 때문에 상당한 불편을 느끼며 산다.

이런 불편 때문에 주민들 중 일부는 3개 자연마을과 목사리를 1,2리로 분리해 주든가 행정구역을 조정해 달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특히 인접 마을인 수북리의 경우 매 한시간마다 시내버스가 오가는데 비해 동이면 지역이라 대중교통수단 이용상 차별을 두느냐며 주민들의 항의가 줄을 잇는다.마을에는 79년부터 시작해 순수한 주민들의 힘만으로 완공한 경로당이 있어 자긍심을 심어주고 있다. 노인회원들은 79년 경로당 마련을 위해 병을 줍고, 폐품을 모아 기금을 마련, 5년에 걸친 경로당 건축사업을 추진, 마침내 84년 어렵게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조인영(죽향초교 교사)씨와 유우규(금하여관 대표)씨는 경로당 부지를 희사했다.  숟가락 하나에 이르기까지 순순한 주민들의 힘으로 이루어냈기에 더욱 자랑거리로 삼는다. 당시를 기념해 조장옥씨가 심은 느티나무는 이제 여름이면 제법 시원한 그늘 역할을 한다.  특수작물보다는 대부분 주민들은 벼농사에 의존하고 있으며 TV난시청 지역인데도 꼬박꼬박 TV수신료를 내야하는 부담 때문에 주민들은 KBS 측에 곱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목사리에 거주하는 양진권씨는 평범한 직장인이면서도 자신이 아껴 모은 돈으로 지난해 50만원을 들여 주민들의 효도관광을 시켜줘 칭송을 듣고 있다.  출향인 중에는 목사리 출신 김재관(재경향우회 부회장)씨와 김응모(서울거주)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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