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면 우산2리] '큰 황소가 누워있는 모양'에서 명칭 유래
[동이면 우산2리] '큰 황소가 누워있는 모양'에서 명칭 유래
  • 인터넷판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6.10.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동이면 우산2리

우산리는 본래 이원면 관할이었다. 1739년의 기록에는 우두미리(牛頭尾里)라 하여 72호가 살았다고 전하고 1914년 행정구역 조정당시 우두미리와 산서동을 합하여 우산리(牛山里)라고 했다.

이원면에 속해 있던 우산리는 1973년에 이르러 동이면으로 편입되었고 이는 고속도로의 개설에 힘입은 바 컸다는게 주민들의 얘기다. 마을을 우두미라고 부른 것은 마을과 이원면 지탄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의 모양이 큰 황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고 해서였다.

지금은 우산리가 두 대의 행정리로 분할되어 1,2리를 이루고 있는데 2리는 소의 형상 가운데 꼬리 부분에 해당된다는 말이 마을에 전해오는 말이다.  이 마을에 사는 박영규(61)씨는 마을의 지명과 관련된 흥미있는 말을 전한다.

마을 지명이 소와 관련된 지명이기 때문인지 마을 주위에는 소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는 얘기다. 청성면 고당리와의 경계에 짐을 싣기 위해 소의 등에 올려놓는 질마를 표현하는 질마산이 있는가 하면 채찍을 나타내는 장채말, 여물을 쑤었던 가마를 뜻하는 가마소, 소의 등에 짐을 싣고 조여주는 북두와 같이 생겼다 하여 불리는 북두날 등이 있다.

옛날 노인들이 말하듯이 한다면 가마소에서 소에게 여물을 먹여 질마에 짐을 싣고 채찍을 들고 나서는 형국이 우산리 주변에 짜여진 소와 관련된 얘깃꺼리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원지 앞에는 소골이 있고 질마산 밑에는 소를 묻었던 소 묘지가 있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풍수지리상으로도 이곳 어딘가가 '와우혈'의 명당이 있다고 전한다.

우산2리는 동이초등학교 우산분교장이 있는 벌마와 함께 산 중턱 쯤에 위치한 지매(池梅) 등 2개의 자연마을에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호수는 77호 정도에 주민들의 수는 2백50여명에 이른다.  옛부터 벌마에는 경주김씨 문중이 가장 먼저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하고 지매에는 충주지씨 문중이 들어와 거주한 지가 4백년 가까이 되었다.  우산리 전체에 전하는 지형과 관련된 얘기가 전하듯 지매에는 효자 지악지의 효자문이 있다.

지악지 효자는 기록에 나타난 연대로 보아 조선조 숙종, 영조 대의 사람으로 농사일을 하며 어머니 모시기에 정성을 다했는데  1727년 2월 거동을 하지 못하는 어머니가 집에 계신 상태에서 집에 불이 나자 불길을 뚫고 어머니를 구해 업고 나오다 그만 어머니와 함께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처럼 눈물겨운 효행은 조정에까지 알려져 마침내 1781년 정조 5년에 효자문이 내려졌다.

지매는 특히 조인들의 입을 빌면 매화꽃이 피는 혈이라 하여 옛부터 좋은 땅이라고 불렸다.  이 마을에서 특별히 소득작목이라고 할 수 있는 작목은 없다. 일반적으로 벼농사와 바곡식이 전부일 뿐 특산물이 없는 요인 중의 하나다.  그 여건은 다름아닌 여름 작물 한창 출하시기에 교통로가 막혀 농산물 출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산리로 통하는 통로는 조령리에서 금강 소수력 발전소의 고무댐을 건너야 가능하다. 하지만 장마철에는 별도의 교량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주민들의 형편상 40여일 이상 주민들은 고립되기 일쑤다.  따라서 소득작물을 재배한다 해도 출하할 길이 마땅치 않아 소득작물 재배는 아예 포기하고 만다. 다만 최근들어 지매 쪽에서 행락객들을 대상으로 수박농사를 짓는 농가 5가구 정도가 있을 따름이다.

농경지가 부족한 마을 현실에서 마을의 부녀자들 20여명은 인근 금강휴게소로 일을 나간다. 농사꺼리가 적은 대신 부녀자들은 금강휴게소에서, 남자들은 대전 등지로 날품을 팔아 생활하는 경우가 많고 금강유원지로 놀러온 행락객들을 대상으로 최근에는 식당이나 가든 등을 운영해 마을의 존재를 알리는 주민들도 있다.

1백 가마 이상 수매하는 농가가 2가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 마을의 농업 현실이다. 주민들은 앞으로 고속도로 선형이 개량된 후에야 기존 고속도로를 이용한 교량이 마을 진입로로 이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있다. 마을에서는 뽕나무집을 운영하는 박수용, 김순자 부녀회장 부부가 마을 노인들을 대상으로 관광을 보내주는 등 미담을 실천하고 있다.  세종대 교수로 재직 중인 김옥환씨가 가장 잘 알려진 출향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