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면 가덕리] 아직도 아궁이에 불 지펴 밥하고, 장작불과 가마솥이 있는 곳
[동이면 가덕리] 아직도 아궁이에 불 지펴 밥하고, 장작불과 가마솥이 있는 곳
<가덕리...1995년 1월 28일 취재>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5.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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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이면 가덕리

금강을 건너야만 자동차를 탈 수 있었던 마을. 동이면 가덕리엔 93년 초 처음으로 마을에까지 자동차가 들어오는 새역사(?)가 열렸다. 차 소리만 나도 방문을 열고 어떤 차가 들어왔는가를 확인하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어린아이, 어른들 할 것 없이 마을안에까지 들어온 자동차를 보고는 기뻐했고 신기해 했으며 자신들의 노력을 대견스러워 하기도 했다. 자동차가 마을에 들어온 것은 93년초 주민들이 힘을 모아 마을 앞 금강을 가로지르는 세월교를 가설하고야 가능했다.

불과 25가구, 74명의 주민들이 사는 이곳 가덕리 주민들이 금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아 스스로 교통불편을 이겨내려 한 것이다. 실로 주민들로서는 마을이 생긴 이래의 최대숙원을 해결한 것이요, 비료 한 포대를 실어나르려 해도 지게로 배까지 운반하고, 배에서 다시 경운기로 마을까지 날라야 했던 운반과정을 한 두 단계 줄인 것이었다.

작은 힘이라도 모으면 큰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걸 주민들은 몸소 체험한 셈이다.  동이면에서도 가장 오지마을로 평가받는 가덕리. 가덕리 가는 길은 오지인 만큼 멀고 험했다. 동이면 소재지에서 보다는 안남면을 통해 금강변을 휘돌아가는 순환도로를 따라가야 비로소 옛 선착장을 만날 수 있었다.  오지로 유명한 청마리의 앞 명칭인 '청'자는 가덕리의 한 자연마을로 현재는 세가구 밖에 살지는 않지만 옛날만 해도 15가구가 살았던 '청동'의 '청'자를 따온 것이다.

충청북도 민속자료 1호인 솟대제와 탑신제가 전승되는 마티리와는 바로 이웃이다. 안남면 지수2리 수동 마을에서부터 마을앞 세월교까지는 지금도 비포장길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옛날보다야 주민의 생활불편이 크게 덜어졌다.  92년 말부터 주민들은 교통불편은 참다 못해 다리를 놓기로 작정했다. 처음에는 사람이 다닐만한 너비의 작은 다리로 만족해 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더 어려웠고 계획을 세웠던 김에 출향인들까지 해서 온 주민들이 나섰다.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모은 돈이 8백만원, 여기에 출향인들이 또 8백만원을 모아주었다. 역사 이래의 주민숙원을 해결하는데 정성을 모은 주민들은 행정기관의 도움을 요청, 1천5백만원을 지원받았다. 이렇게 해서 어렵사리 다리는 놓아졌다.  물론 여느 대도시의 훌륭한 다리마냥 외관이 아름답지도 않고 다리의 난간도 없으며 접속도로의 일부분이 아직까지도 포장이 안된 상태이지만 주민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결실이었다.

"다른 마을보다는 10년에서 15년은 뒤졌다고 봐야 해요." 한 주민의 얘기에서 가덕리 주민들의 생활양태가 그대로 묻어 있다.  다리를 놓은 후 처음으로 기름보일러라는 시설이 마을에 선을 보였다. 93년에 한집, 94년에 두집이 기름보일러를 이용해 난방을 해결하고 있을 뿐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하루에 한 짐씩 땔나무를 해나르는 것이 큰 일이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하고 온돌방을 덮힌다. 장작불과 가마솥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이 마을 부엌의 풍경에서 변하지 않는 우리의 따스함을 느낀다.  강건너 마을인 청성면 합금리에서 이곳으로 시집온 몇몇 아낙네들은 기차 구경 한 번 못했다는 말이 실감나는 마을. 이것이 곧 가덕리가 내륙에 깊숙히 위치한 '섬'같은 위치에 있다는 말이거나 교통이 대단히 불편한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말일 터이다.

오후 4시만 되면 앞산의 산그늘이 골짜기로 길게 형성된 집들을 덮어 버리는 이곳 주민들의 소득은 아직까진 보잘 것이 없다. 벼농사에 고추,참깨 등 일반적인 작물이며 한가지 특이하다면 마을의 거의 모든 농가들이 땅콩 농사를 짓는다는 사실이다.  지난 94년 주민들은 1포대당 30kg들이 땅콩을 5백포대나 했다. 1포대에 6만원 가량했으나 2가구의 비농가를 제외하고는 땅콩 수입만 가구당 평균 1백30만원을 올렸다.

경지 면적은 논,밭 합해 6만여평에 달하고 있으나 거의 산비탈로 이루어져 있어 능률이 높지는 않다. 모든 일을 지게로 해결해야 하는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고자 몇몇 농가에서는 포크레인을 동원, 농로를 닦고 있다.  자연을 활용하기 위한 가덕리 사람들의 노력이 집요하다. 땅콩 이외에 고추는 모두 햇볕에 말린다 하여 인천에서 중간상들이 와서 가을철만 되면 싹 쓸어간다.

송연훈씨가 땅콩 농사로, 이덕주,정희만씨가 고추농사로 마을내에서는 선진농가로 꼽힌다. 마을에서 소득이 높은 농가라고는 하지만 소득은 아직 1천만원대를 크게 넘지 못한다. 주민들의 열악한 경제사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96세에 이른 이순봉 할아버지를 비롯, 74명 중 14명이 70세 이상의 노인이다.

'더디기'라는 자연명칭으로 불리는 마을은 옛부터 명당이라고 소문나 매년 시제철만 돌아오면 특이하게도 12개 문중에서 시제를 모시느라고 북적댄다.  겨울 가뭄으로 인해 주민들은 먹을 물이 모자라 고통을 받고 있는 실정으로 현재로선 간이상수도 마련과 좀더 튼튼한 세월교를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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