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북면 이평리] 물 가까이 살지만 식수.농업 용수 절대 부족
[군북면 이평리] 물 가까이 살지만 식수.농업 용수 절대 부족
<1996년 5월 25일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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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6.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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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북면 이평리

1970년대 군북면 이평리 하면 양수장 시설만도 3곳이나 갖춰져 있었고 농사지을 여건이 좋아 주민들로서는 별달리 부러울 것이 없는 그런 마을이었다. 1년 농사지어 수매한 보리가마만 해도 평균 5백가마에서 7백가마에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주민들은 당시를 회상할 양이면 면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웠을 정도라는 말로 옛날의 마을정취에 대해 향수를 풀어내놓곤 한다.

군북면내에서 새마을 사업이 일찍부터 시행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거주하던 가구수만 해도 86호에 달했을 만큼 마을 규모도 제법 큰 규모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을의 전경은 70년대 후반 대청댐 건설이 시작되면서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대청호 담수가 시작되면서 본래 마을이 있었던 곳은 모두 물 속에 잠겨버렸다. 그리고 80호가 넘었던 마을은 한 순간에 분리되었다. 주민들도 눈물을 머금고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다.  현재 이평리를 이루고 있던 자연마을 중 옛부터 사람이 살고 있어 마을을 이루고 있었던 '공곡재'를 제외하고 '국원이골'과 '추실'은 모든 집과 집터를 물 속에 놔두어야 했던 주민들이 이주해 새로 만든 마을이다.

떠날 사람 떠난 고향에서 차마 고향은 떠나지 못했던 사람들과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떠날 여건을 갖추지 못했던 사람들이 남았다. 고향 주민들이 떠난 마을 한 곳인 '갈마당'에는 다른 곳에서 3가구가 들어와 살다가 1가구는 떠나고 양대석씨 등 2가구만이 남았다. 그래서 현재 이평리에는 20가구가 남아 있다. 수몰의 한을 품은 채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들의 삶은 자연 척박할 수 밖에는 없는 삶이다.

수몰 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마을을 포함한 4개 자연마을 중 11가구가 모여 사는 국원이골이 가장 크고 옛부터 있었던 공곡재에 4가구, 추소리에서 갈마당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추실에는 3가구가 산다. 국원이골이 국원리 너머 군 쓰레기매립장을 지나 대청호변에 터를 잡고 있다면 나머지 3개 자연마을은 대청호 건너에 있다.

마을 내에서 어떤 일을 도모하고자 해도 배를 타고 건너가 상의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물론 이같은 상황에서라면 주민들끼리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 자체가 지극히 어려워 실질적으로는 마을일이 절반의 행정(?)에 불과하리란 예상은 그리 어렵지 않다.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는 대청호로 인한 피해의식이 상당히 고조되어 있다. 농사짓기 좋은 문전옥답을 모두 물 속에 잠겨놓고 이제는 천수답으로나 연명해 나가야 하는 주민들의 기막힌 사연을 하소연할 데가 없다고 주민들은 한탄이다.

더욱이 엎친데 덮친격으로 94년, 95년의 연속된 가뭄에다 뒤이은 홍수 피해로 지난해 이들 주민들은 1년내내 연명할 양식도 제대로 수확하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 처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등성이 하나 너머 추소리에는 소각장을 포함한 쓰레기매립장 확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매립장으로 인한 또 다른 피해를 당할까봐 주민들은 우려하고 있다. 진작부터 파리 등 해충으로 인한 피해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민들은 생각한다.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3백50여년전, 반남박씨 문중인 박 호 공이 처음 터를 잡음으로써 생기게 되었고 그로부터 마을은 반남박씨 집성촌으로 이어져 왔다. 수몰되기 전만 해도 마을에 타성은 80여호 중 10여호에 불과할 정도로 박씨 일색이었고 확인할 수는 없으나 마을이 쪼개져 명맥조차 잇지 못할 정도가 되자 일각에서는 다른 마을로의 편입을 거론했으나 문중의 반대로 조상 무덤이 있는 이평리라는 명맥을 이을 수 있었다는 말도 전한다.

주민들은 현재 벼농사와 밭농사를 주로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한편 축산도 조금 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소규모로 생활은 곤궁한 편이다. 공곡재나 갈마당 주민들은 고리산에서 산나물을 뜯어 부업을 삼기도 한다. 농사를 짓는데 가장 불편한 것은 농업용수가 제대로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식수가 좋은 것도 아니어서 주민들은 마냥 하늘만 쳐다볼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대청호 물을 끌어대 용수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주민들이 제기하고 있는데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이다.

날마다 지척에 둔 고향이 그리운 주민들은, 특히 출향인들은 지난 94년부터 고향 잃은 출향인들이 잠시나마 고향의 곁에 와서 고향내음을 맡을 수 있는 행사를 마련했다. 서울 이평향우회(회장 박청일)가 주동이 돼 준비한 이 행사를 통해 주민들은 서로간의 정을 새삼스레 확인하기도 했다. 이제 이들은 2년마다 모이기로 해서 내년이면 또다시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게 된다. 대청호로 인해 감.대추 등 가을에 흔한 과실조차 이젠 흔하게 볼 수 없는 땅에 살고 있는 이들 주민들에겐 행정기관, 또는 국가의 정책적인 지원책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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