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북면 대촌리] 대청호변 횟집.낚시터로 유명한 '방아실'
[군북면 대촌리] 대청호변 횟집.낚시터로 유명한 '방아실'
<1995년 7월 15일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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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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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북면 대촌리

아흔아홉 봉우리를 거느렸다는 명산. 군북면의 중심에 위치해 어디를 가도 그 연봉을 볼 수 있는 고리산이 군의 가장 끄트머리에 빚어놓은 마을이 군북면 대촌리이다. 가구수가 43호에서 45호 사이를 오르내리고 인구수는 2백여명에 이르는 작은 마을. 그러나 이러한 수치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빚어낸 결과물이다.

이 마을의 성쇠는 결국 대청댐이 좌지우지한 셈이 되었다. 수몰전 1백20호에 달하던 주민들의 수가 3분의 1수준인 40여호에 불과할 정도로 감소한 것은 수몰이 주민들에게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이다.

마을이 크고 골짜기마다 형성되어 있어서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간다 해도 어디인가 한 귀퉁이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인 점을 감안하면 수몰을 전후에 대촌에 일어났던 변화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수몰은 마을의 위치나 주민들의 생활상을 완전히 변화하게 했다. 대촌리에 오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진입로로 올 수는 없었다. 지금의 횟집이 많이 들어선 곳이 본래 마을이 있던 자리였는데 마을을 오기 위해서는 지금으로 말하면 강변을 따라 대청호변을 돌아와야 했다.

대정초교를 거쳐 '방화정'이란 정자를 거쳐 들어오는 길은 수몰된 후 새로 개설된 도로이다. 말하자면 마을의 앞과 뒤가 뒤바뀐 것이다. 현재 횟집이 들어찬 대청호변 쪽이 옛날로 말하자면 큰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막다른 곳으로 변했고 길도 제대로 없어 좁은 길로 사람만 통행했던 산간지역은 주민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 어엿한 마을의 형태를 갖춘 마음이 되었다.

대청호 수몰로 당장 갈 곳이 없어진 주민들이 새로 마을을 만든 곳은 지금은 마을 자랑비가 서있는 신주택지이다. 이전까지는 불과 몇 가구의 주민들이 거주했지만 마을 양 방면 진입로가 수몰되어 산 너머로 이설되자 주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마을 하나를 건설하는 대역사를 펼쳤다. 3천여평에 달하는 24가구의 집터를 닦은 것은 물론 마을 개천 양쪽의 8백m 석축을 주민들의 힘으로 완공했으니 이들 주민들은 1개 마을을 자신들의 힘으로 이룩한다는 보람으로 이 대역사에 참여한 것이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수몰 후 '마을 출력이 너무 많아 농사를 짓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면서도 마을 터닦기나 도로 관리를 위해 적극 나섰다. 수몰 후 주민들이 새로 조성한 마을에서 옛 방화실(방아실, 현재 횟집이 많은 마을)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주민들이 뜻을 모아 '방화정'이란 정자를 세운 것은 마을 조성을 모두 끝낸 기념으로 건립한 것이다.

그렇다면 '방화정'이란 명칭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기록에 따르면 대촌(大村)은 자연마을로 분구할 당시마을이 가장 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마을 외부에서는 '방아실'이란 지명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인근 대전에서도 '방아실'하면 횟집으로, 낚시터 등으로 유명하다. '방아실'이란 지명은 본래 마을의 생긴 모양이 디딜방아 같이 생겼다 하여 지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본래 지명은 '방아실'이 아니라 '방화실(方花)'이라고 주장한다.

대전시와 경계를 이루는 마을 뒷산의 이름이 꽃재이기 때문에 꽃화(花) 자를 써서 마을 이름이 정해졌다가 방아실로 변천되었다는 유영래 노인회장의 증언. 현재 출향인들과 모임은 구성되어 있지 않으나 경로잔치 때나 각종 행사가 있을 때는 자연스럽게 출향인들과 연계가 맺어진다. 문화류씨 대전 종친회에서 수몰 후 마을 도로변에 은행나무 가로수를 심어준 것도 이와같은 맥락에서이다.

전체 45가구 가운데 30가구 가까이가 문화류씨로 성씨가 구성되어 있는 이곳에는 문화류씨 사당이 있어 매년 10월이면 시제를 지내러 오는 문중 사람들로 붐빈다. 공식적인 문화류씨 족보에는 1506년 유 근 공이 처음 자리잡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마을이 생긴지는 꼭 11년이 빠지는 5백년 세월이다. 마을 주민들의 가장 큰 숙원으로는 방아실 입구-와정-항곡리에 이르는 도로의 확포장이다.

현재 비야-항곡간 도로 확포장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실제 주민들의 생활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구간인 항곡-대촌간 도로나 증약-감로리 구간의 도로가 먼저 확포장되어야 한다는게 주민들의 생각이다. 따라서 옥천-대정간을 잇는 현재의 도로 확포장공사가 주민들의 생활권을 기존의 대전권에서 옥천권으로 돌려놓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라는게 주민들의 분석이다. 기름진 논밭이 대부분 수몰된 후 이 마을에서 택한 것이 포도 농사이다. 현재 10가구가 포도 재배에 참여하고 있으며 포도와 함께 한우 사육이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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