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읍 금구1리] 금거북이 묻혀있는 형세
[옥천읍 금구1리] 금거북이 묻혀있는 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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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2.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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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구1리 전경사진

옥천읍 뿐만 아니라 옥천군의 정치, 경제의 1번지. 본래 현대적 의미에서의 옥천읍은 1949년 옥천읍이 승격되고 부터이다. 

이전부터 가화리라 하여 삼양, 금구리 지역을 통괄했던 지역이 있었던 바 경부선 철도의 개통으로 신읍이 개발되면서 금구리 지역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금구리가 금구1리로부터 4리까지 4개 마을로 나뉘어져 있는 가운데 금구1리는 옥천군 최고의 경제 및 상업중심지로 발전해왔다. 

현재 학교나 행정기관은 없으나 국민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 삼산병원, 유지범의원, 박치과 등 의료기관과 뭐니뭐니해도 옥천에서는 단 하나뿐인 종합상가와 채소시장이 금구1리의 역동적인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인구수 926명에 343가구. 

금구리라는 명칭은 지난 1910년 군남면과 읍내면을 합해 군내면이라 부르면서부터 붙여졌다.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나 조폐창에서부터 시작해 경찰서 뒷산으로 이어지는 지형이 거북이가 엎드린 형상이고 풍수설에 금거북이가 진흙에 묻혀있는 명당이란 뜻으로 금구리가 되었다 한다. 

이에 대해 김영태(61) 이장의 말은 더욱 그럴 듯 하다. 김 이장은 오래전에 금구리라는 지명을 듣고 금을 캐러온 외지인을 목격한 적도 있다는데 옥천 조폐창이 들어서 돈을 찍어내고 있으니 금거북이가 묻혀있는 셈 아니냐고.

금구1리는 옥천읍의 중심에 위치해 상가가 밀집되어 있으면서 주민들의 대다수가 농업보다는 상업 또는 직장에 근무하는 직장인으로 생활하고 있음을 볼때 농촌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순수농민의 비율은 높지 않다. 

마을의 가장 큰 숙원 역시 경로당과 마을회관이 없다는 것. 옥천읍의 중심마을로 커오다 보니 마땅한 공간을 마련할 겨를도 없었을 뿐더러 땅 한평이 근 1천만원을 육박하는 수준으로 볼때 마을회관 부지마련이 그리 쉽지는 않다.

앞으로도 계속 숙원사업으로 남아 있을 이 경로당 갖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모든 마을 일을 이장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개발위원회의 심의를 받고 마을원로회의 자문을 얻어 실행하고 있는 것이 자랑거리.

가화교로부터 장천교 위쪽 마을까지 경계를 지닌 금구1리.  여전히 79년, 80년 당시의 소도읍가꾸기 때의 토지보상관계 등으로 인해 네집 정도가 관련되어 있는 곳.  여느 마을과 같이 마을숙원을 많이 안고 있는 금구1리이지만 정진철 도의원과 강구성 군의원이 이 지역 출신임을 상기해내며 금구1리의 발전에 희망적인 견해를 밝히는 주민들이 많음은 앞으로의 옥천발전에 거는 기대도 많음을 의미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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