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남면 화학1리] 남양홍씨 집성촌, 돌고개 주막거리 고향내음 물씬
[안남면 화학1리] 남양홍씨 집성촌, 돌고개 주막거리 고향내음 물씬
<1992년 8월 8일 취재>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2.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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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남면 화학1리

안내면 인포리 인포교를 건너고 나면 바로 보은가는 국도와 안남면으로 향하는 군도가 갈라진다. 중봉 묘소 가는 길이라는 표식을 따라 인포리를 지나면 석산을 하다가 그만둔 곳인양 산허리가 잘린 곳을 배경삼아 안남면의 첫째 마을이 시작된다.

이곳이 안남면 화학1리 마느실(만곡)마을. 이곳에서는 23가구가 농사일을 대대로 이어받으며 산간의 밭을 일구어 살고 있고 조금더 고개를 올라가면 학촌. 학촌은 모두 28가구가 살고 있다.  마을 안길까지 모두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고 넓직한 집과 오래묵은 노송들이 눈길을 끈다. 이와 함께 엽송골은 학촌에서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난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면 볼 수 있다.

모두 19가구. 이렇게 화학1리에는 마느실, 학촌, 엽송골에 70ㅏ구가 제각각의 특성을 갖고 살고 있었다.  옛부터 특수작물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담배를 주요소득작물로 재배하며 살아왔다. 담배가 잔손질이 많이 가는 어려운 작물이라 할지라도 별다르게 대체할 작목이 없으므로 매달리고 있는 농가수도 제법 많다. 학촌 20가구, 엽송 12가구, 마느실 1가구니 모두 70가구 중 33가구가 담배농사에 생계를 걸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들어 일손이 부족하고 담배재배로 인한 소득도 상대적으로 줄어 작목전환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화학1리의 경우에는 담배 질이 좋고 담배 수량이 많이 나오기로 유명하다.  그 비결은 단지 이 마을 사람들이 퇴비를 많이 쓴다는 것. 화학비료를 쓰는 것보다도 노동력이야 더 들겠지만 땅심을 기르는데 퇴비보다 더 좋은것이 없다는 주민들의 자각이 이루어진 시기는 1980년대 초기.

특히 엽송골은 지난 90년 말에 한국비료(주)에서 주는 우수농촌상을 수상, 그해 생산한 퇴비가 가구당 77.5톤. 따라서 이 퇴비를 이용해 지은 담배생산량은 당시 군내 평균생산량이었던 10a당 206kg을 훨씬 넘는 242.3kg을 생산해냈으니 그 효과를 확실히 입증한 셈.  물론 상만 엽송골이 탔다뿐이지 학촌 역시 퇴비를 이용하기는 마찬가지다. 도로 옆에 쌓아놓은 퇴비더미나 퇴비 저장고가 땅의 산성화를 막고 지력을 증진시켜주는 원동력임을 아는 마을주민들은 척박한 농토, 열악한 환경속에서나마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학촌은 옛부터 커다란 팽나무가 많아 학이 자주 찾아들어 마을이름이 붙여졌으나 지금은 마을에 단 한그루의 팽나무만이 살아있는데 학촌고갯마루의 주막거리에 있었던 주막은 안남도로가 확포장될 때까지만 해도 `술맛 좋고 안주 잘하기로' 소문난 집이었다.  돌고개 또는 학촌고개라고 불린 이 고개를 넘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었던 이곳은 확포장으로 인해 자취가 없어지고 대신 그 위에 작은 잡화상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 3개 마을중 특히 학촌은 지금도 20가구가 살고있는 남양홍씨 집성촌이다.  조선초기 중시조인 홍권 할아버지가 동이면 석탄리에 처음으로 자리잡았다가 홍웅표 이장의 15대째 홍경동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학촌에 정착한 것이 마을의 형성동기. 조선중기부터 학촌이 있어왔던 셈이다.

이와는 달리 마느실 마을에는 힘이 장사인 딸이 자살했다는 전설이 담긴 화학성지(주민들은 이곳을 성재라고 부름)를 비롯, 마을의 북쪽에 있는 봉우재 등에 옛 삼국시대 때의 이곳이 요충지였음을 알리는 흔적들이 남아 있고 `이곳에 대한 꿈만 꾸면 부자가 되어 외지로 나갔다'는 노적봉이 겨울밤 화롯가의 할머니 얘기처럼 대대로 이어져온다.

이 3개 마을의 최대숙원은 역시 수원부족문제. 그중에서도 특히 학촌은 간이상수도 조차 없는 암반지역으로 가뭄때만 되면 여간 고생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연유로 집집마다 빗물을 받는 큰 물통이 처마밑에 놓여 있다. 빨래라도 하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다.  현재 대부분인 담배농사를 다른 작목으로 전환하려 해도 수원대책에 이르러서는 뾰족한 수 없이 물러나고 만다.

91년 처음 이곳 새마을지도자인 오명근씨가 느타리버섯을 재배하기 시작해 주민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고 홍성구씨와 정관영씨 등이 각각 축산으로 독농가를 이루었다.  출향인 중에는 지위상 특별히 뛰어난 사람은 없으나 그중 홍순흥(서울시 강원한의원 운영)씨와 홍순호(서울시 화창한의원 운영)씨가 보여주는 고향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이들은 안남면 2층에 예식장을 꾸며준 것을 비롯, 마을에 이앙기를 보내주는 등 수시로 마을에 대해 관심을 보여주고 있어 마을주민들이 한결같은 목소리로 칭찬하고 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민들이 느끼는 만큼 숙원인 수원부족 해결은 앞으로 이 마을이 어떻게 발전해 나가느냐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자 제약조건으로 제시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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