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면 석화리] 550년 이어온 풍천임씨 집성촌, 옥천포도 주산지
[동이면 석화리] 550년 이어온 풍천임씨 집성촌, 옥천포도 주산지
<석화리...1996년 3월 9일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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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6.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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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이면 석화리


 "석화촌은 옥천역에서 남쪽으로 6km 지점으로 서울-부산간 국도가 마을 중심부를 동서로 관통하고 양촌과 음촌이 합하여 석화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으로 적하리, 서쪽으로 용운리, 남쪽으로 이원면 건진리, 북쪽으로 평산리와 접하여 있는 곳이고 철봉산에서 해가 떠서 장령산으로 해가지는 중간지점에 위치하여 일조량이 많고 공기좋은 농촌이다.

남방으로 장령산 아래 도덕봉 준령이 동으로 뻗어내려 풍기날을 감싸고, 북방으로 함박산 아래 구리 산맥이 뻗어 내려와 양촌 마을을 포용하고 있어 명당의 위치를 간직하고 있다."  위 글은 동이면 석화리에 살고 있는 임창준(80)씨가 마을의 유래와 위치 등을 정리해 소개하고 있는 글 중의 첫머리이다.

유교적인 전통이 그대로 이어져온 석화리는 널이 알려진 대로 풍천임씨가 집성촌을 이뤄 살고 있는 곳이다.  씨족적인 전통이 강하게 이어지고 있는 만큼 마을 어른들이 전통 지키기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구수는 1백15호, 인구수는 3백9명인 이곳 석화리는 풍천임씨 집성촌이 관계로 현재 거주하고 있는 임씨만해도 74가구에 이른다.

조선 초기인 지금으로부터 5백50여년 전에 한성판윤을 지냈던 임경윤 공이 낙향해 거주한 이래로 이 일대가 풍천임씨의 거주지가 되었다.  현재 마을에 사는 주민들 중 소문중으로 나뉘어져 있기는 해도 가장 먼 촌수가 18촌일 정도로 가까운 혈통을 지키며 마을을 가꿔 온 것도 이 마을의 자랑이다. 마을 내에서는 5백년이 넘게 함께 살아오면서 가꿔왔던 전통의 맥을 잇기 위한 노력이 한창 진행중이다. 다름아닌 택호부르기 운동이 그것이다.

이는 마을에 어른이며 원로회장인 임창준씨가 주창하고 임봉호(72) 노인회장 등이 적극 나서고 있는데 그동안 세태가 변화하면서 자칫 잃기 쉬운 도덕성을 회복하고 예의범절을 가르치기 위한 운동이다.  즉 마을에서 다른 사람을 지칭해 부를 때 흔히들 자식들의 이름을 넣어 '○ ○ 아버지'라고 부르기 보다는 그 가정의 출신이나 유래 등을 생각해 각기의 택호를 부여, 마을 전체적으로 통일해 부르는 것이다.

주민들은 택호부르기를 통해 50살이 넘은 나이가 돼도 '○ ○ 아버지'라고 부르던 버릇 때문에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분위기를 고치고 이웃간에 존경하고 사랑을 돈독히 하려는 분위기를 배우고 있다.  석화(石花)란 지명은 말그대로 '돌꽃'이란 말이다. 그러나 이는 와전된 표기이고, 본래는 '돌꼬지'라 해야 맞다. 이는 현재 4호선 국도가 지나는 아래쪽에 위치한 양지말 서편 속칭 바위날산 끝에 곶감 꼬지같은 형태의 자연석이 있었고 그곳에 바위형태를 딴 석환이란 정자가 있어 붙여진 석환이란 지명이 한문으로 옮겨 쓰는 과정에서 변화된 것이다.

그 자연석은 190년대초 철로 공사를 할 때 깨서 석재로 사용하는 바람에 없어졌다고 한다.  석화리를 특징 지을 수 있는 특산품은 뭐니뭐니해도 포도다. 용운리와 함께 세산포도라는 명품을 생산하는 이곳의 포도재배 역사는 깊다.  특히 이 마을 주민들의 경우 다른 마을에서 노지포도를 주로 재배할 때 하우스 시설재배에 눈을 떠 소득면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도가 높아 포도주산지 옥천의 대표적인 포도산지로 각광받고 있다.

현재 이 마을 주민중 83호가 농가이며, 농가의 대부분인 72호가 포도재배에 참여해 마을은 온통 포도밭이다. 이 마을에 하우스 재배방식이 도입된 것은 17∼18년 전이며, 주민들은 작목반인 포도회(회장 임동순)를 주축으로 생산에 임한다.  다만 포도 수입과 더불어 고품질포도 생산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현재 주민들은 포도주산지의 명성을 지켜내려 노력하고 있다.

집성촌인 관계로 부녀회원들을 중심으로 한 주민들은 검소한 기풍을 잃지 않고 있으며, 마을의 궂은 일을 부녀회와 영농회(회장 임벌재)에서 도맡아 한다. 영농회는 마을 젊은층 16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의 대들보로 일컬어지고 있다.  마을내에 주차장 시설이 제대로 없다는 점과 노후된 할머니방 보수문제, 4차선 확 포장 문제와 관련, 마을 진입도로 문제가 숙원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양지말 경로당 건축도 과제이다.

양지말 경로당 부지는 이 마을 임선재씨가 30평의 부지를 희사한 상태로 예산이 뒤따르지 않아 공사시행이 늦어지고 있다.  마을 경로당을 건축해준 임천준(대전 동국서림 대표)씨가 대표적인 출향인이다. 이 마을 출신 인사로는 임경순(전 내무과장), 임형재(전 부면장), 임영순, 임명재, 임장재, 임덕빈(군 산림과), 임순재, 임충호, 임시순, 임인순, 임흥식, 임진호(역전파출소장), 임원호, 임낙재(옥천농협), 임익재(예비군 이원면대장), 임억재(제천농협)씨 등이 꼽힐 정도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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