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읍 성암2리] 정월 초사흘이면 마을 탑제 전통이어
[옥천읍 성암2리] 정월 초사흘이면 마을 탑제 전통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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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6.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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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암2리 전경사진

1739년 여지도서에서는 성암리라는 마을은 나타나지 않는다. 읍내면 수정리라 해서 마암리를 관장하고 있었고 그당시 지명은 마함이라 했다. 성암리가 나타나는 기록은 1890년 신유장적에는 성암리를 신촌리라 불렸고 15호가 살았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신촌리는 새터라고 했고 마항리에는 17호가 살았다. 그후 신촌리와 마항리를 합해 마암리라고 불렀는데 마암리라 부르게 된 것은 마항리의 '마'자와 성암리의 '암'자가 합해 마을 지명이 된 것이다.

이같은 기록을 근거로 해성 성암리 마을의 역사를 추론해 본다면 성암리 지역에는 1973년 여지도서가 작성될 때까지도 마을이 형성되지 않았다가 이후 형성된 마을일 것이란 점이다. 적어도 집들이 들어서 1890년 기록에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의 '새터'라는 지명으로 기록되어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촌에서 성암리란 마을 지명으로 불리게 된 동기로 색다를 뿐만 아니라 적어도 현재 와서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마을의 전통으로 계승되고 있는 것이 다름아닌 성암리 마을의 '탑제'. 성암리라고 불리게 된 것은 마을이 생기면서 마을의 양쪽 입구에 돌탑을 쌓고 마을의 평안을 빌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말그대로 마을이 돌로 쌓은 성 안에 들어 있는 것과 같다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이 바로 성암리.

지금도 남아 있고 매년 정월 초사흘 날이면 탑제를 올려 마을의 평안을 비는 곳이 된 이곳은 마을의 전통과 역사성을 상징하고 있다.  성암1리와의 마을 경계에 남아 있는 큰 돌탑과 현재의 필성빌라 입구쯤에 세워져 있는 작은 돌탑이 그것으로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 가운데에서는 돌탑이 쌓여져 있는 유래와 탑제가 올려진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다만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이 살기 이전에 이미 돌탑은 있었으며 탑제도 지내져 왔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일.

주민들 중 일부 노인들은 돌탑을 쌓은 연대를 정확히는 알수 없으나 돌탑을 쌓은 유래와 관련,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얘기를 전하는 사람이 있다.  어느해인가 마을 앞을 흐르는 금구천의 제방둑에 심어져 있던 느티나무가 마을을 가린다 하여 마을 사람들이 나무를 베었다고 하는데 그 뒤로 사람이 죽는 등 흉한 일이 마을에 생기더란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탑제였고 지금껏 내려왔다.

마을 이름이 공식적인 문서에 비친 것이 1890년이었으므로 탑제의 역사는 적어도 100년이 넘는다는 추론이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은 327세대에 이르는 세대가 살고 있으므로 모든 가정의 소지를 올리기는 불가능하지만 각 성씨별로 구분해 한 해 동안의 안녕과 마을의 평안, 풍년 농사 등을 기원한다.  특히 탑제는 읍내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춘 옛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통으로 지켜내려는 마을 주민들의 정성이 돋보인다.

327세대, 900명 가량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성암2리에는 대개 8년전쯤에 경동아파트, 동원빌라, 필성빌라 등의 공동주택들이 들어서 마을의 세대수가 늘어나게 만드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주민들은 농사보다는 직장 등에서 일하는 경우가 더욱 많다. 96년의 경우 추곡수매에 응하는 가구수가 27가구. 수매 배정량도 227개 정도에 불과하다.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들은 볼품없이 보일 지 모르나 내집 마련의 부푼 꿈이 영글어가고 있는 마을이 또한 이곳.  이 마을의 주거지역으로서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 점으로 327세대 가운데 3분의 1에 가까운 100여세대가 세들어 사는 가구라는 점이다. 시내권과 비교적 가깝고 주택지로서의 여건이 좋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마을 안쪽 주택 밀집지까지는 소방차 등이 진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안길이 좁아 소방차가 돌어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97년부터 공사에 착수, 마암과선교로 접속되는 옥천읍 동부우회도로가 개설되면 이런 불편은 한결 덜게 되리라는 기대감이 있다.  마을 주민들은 물론 노인회원들까지도 노인회의 활성화와 부녀회를 비롯한 주민들의 어른 모시기에는 다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특히 노인들은 겨울철에는 경동아파트 앞에 마련되어 있는 경로당에 모여 소일을 하는데 할머니들이 손수 점심밥을 지어 할아버지들과 함께 먹는가 하면 부녀회원들이 자신들의 부모를 모시기나 하는 것처럼 여간 정성이 아니다.  따라서 한겨울 노인들은 점심을 노인회관에서 해결하지, 집에 가서 먹고오는 경우는 드물다.

외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이나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가끔씩 돌아보며 막걸리값을 주는 것도 물론이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마을에 이렇듯 주택이 밀집되어 있지는 않았었다. 최근들어 부쩍 늘어난 주택의 수가 자꾸 확산되는 성암2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어서 실상 토박이는 몇가구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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