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남면 종미리] 조경수 묘목단지로 발돋움, 농가소득 높여
[안남면 종미리] 조경수 묘목단지로 발돋움, 농가소득 높여
<1994년 6월 18일 취재>
  • 인터넷판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4.06.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안남면 종미리

지난 3월께 파종한 각종 묘목의 종자가 이제 크게는 30∼40cm, 작게는 10cm 남짓으로 자라 주민들이 풀을 매는 일손들이 바쁘다. 6월 초순이면 여느 마을에선 대충 모내기 끝내고 잠시 한숨을 돌리는 시기이건만 종미리의 6월은 모내기가 끝났다고 해서 쉴 틈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집집마다 품을 얻고, 남녀노소가 모두 나와 묘목밭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3일 오후, 한여름같은 햇볕이 내리쬐는 두충나무 묘목밭에선 10여명의 아낙네가 김매기에 여념이 없었다. 새마을지도자인 박백현(43)씨의 묘목밭.

안남면의 민원이나 숙원을 면민들이 앞장서 풀어나가고 힘을 모다 작은 일부터 봉사하겠다고 나섰던 안남면 애향청년회장을 역임하는 등 활동적인 박씨는 현재 새마을지도자 면협의회장을 맡고 있으면서도 집 농사를 게을리하지 않는 성실파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올해 승부를 건 묘목은 두충나무. 농사만 잘 지으면 판로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게 그를 비롯한 묘목 재배농가들의 일관된 얘기다.  이렇듯 안남면 종미리는 최근들어 묘목의 주요산지로 부각되고 있다. 수종이 다양하다. 단풍나무, 두청나무, 은행나무, 산벚나무, 산수요, 이팝나무, 라일락, 메타세코야 등 조경수로 쓰이는 많은 종류의 수종을 이곳에서 키워낸다.

이 묘목재배는 지금으로부터 4∼5년 전 박상희 이장을 비롯, 박우범, 조양술씨 등 몇몇 주민들이 대전으로 조경공사를 하러다니다가 도입하게 되었다.  첫 해 도입하고 난 후 묘목재배가 큰 소득이 될 줄 몰랐던 주민들은 관망자세를 보이다 수입이 괜찮은 것을 보고 많이 뛰어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종미리 전체 85호 가운데 30여호가 조경수 묘목을 재배한다.

특히 면적으로 보아 올해는 지난해 보다도 두 배 가량이 증가가했다. 마을 주위의 7∼8만평에 이르는 좋은 밭은 물론 물 잘 빠지는 논은 묘목으로 뒤덮혔다.  이제는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묘목 단지로 알려진 이곳은 올해 1월 작목반을 구성하여 생산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묘목값이 좋았던 올해 웬만한 농가에서는 2천만원 이상의 수익은 올렸다는 설명이고 보면 이제 조경수 묘목재배는 종미리의 확실한 소득원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원이 유실수 묘목으로 전국에서 알아주는 단지라면 종미리는 조경수 묘목 재배단지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한 때 20여호에 달했던 인삼재배는 이제 10여호 남짓으로 줄었다. 연작이 불가능한 인삼으로 보아 주민들은 묘목재배에 더욱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  종미리에서는 이제 묘목 이외에 벼농사나 기타 고추 등은 먹을 만큼만 재배하는 농작물이 되었다.

종미리는 종배와 미산이란 두 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미산에는 용궁전씨 문종이 28대째 살고 있다. 용궁전씨가 적어도 8백년 이상 9백년 가까이 살아왔다는 얘기이고 보면 가히 세거지로 불릴만하다.  본래 40여호 가량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으나 대청댐 건설로 인한 수몰로 절반에 가까운 주민이 고향을 떠났고 이제는 25호가 남아 있다. 이중 용궁전씨는 20가구에 이른다. 미산 마을에 남아있는 '경율당'은 옛부터 서당의 기능을 했던 곳으로 용궁전씨 문중의 제실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종배 마을의 경우 전주이씨의 세거지이다. 13대가 살아왔으나 약 4백년에 걸쳐 이씨 문중이 살아온 것을 증명한다.  이밖에 이곳은 고령신씨, 파주염씨, 상주김씨, 경주이씨, 밀양박씨 등의 문중이 적어도 1백50년 이상 살아온 사람의 터전이었다. 다른 마을에 비해 비교적 일찍 마을을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문중들이 2백년 이상 살아온 문중들로 이루어져 있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두고 마을이 평온하고 안정돼 있어 한 번 거처를 정하면 오래 살게 되므로 가능하다는 주장을 편다.  마을에는 '수살맥이'라 해서 선돌이 위치, 선사시대부터 주민이 살고 있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 마을의 음력 7월13일은 호미세(일명 호무시)라고 해서 백중놀이가 펼쳐진다. 마을에는 아직까지 호무시나무라 하여 큰 느티나무가 보존되고 있으며 요즘도 노인들을 중심으로 정성껏 제사를 올리고 윷놀이 등을 통해 주민들끼리 친선을 다진다.

백중놀이가 바쁜 농사일 끝내고 잠시 쉴 틈을 이용해 치러지는 것을 감안하면 종미리에서는 아직도 그 전통이 계승 되고 있는 것이다.  옛부터 조용하게 살아온 이 마을이지만 마을꾸미기에는 단연 앞장서는 단합심을 발휘한다. 지난 71년 시멘트 지원사업 등으로 마을을 가꾸는데 앞장, 전국에서 3위를 한 기록으로 내무부장관 및 도지사, 군수 표창을 받은 바도 있다.

지난해 이 마을 출신 이상국씨가 행정고시를 합격했을 때는 온 주민이 나서 축하해주었다. 현재 전기식(군 문화공보실장)씨와 전화식(군 행정계장)씨가 종미리 출신이며 김영호(서울거주)씨, 신옹호(서울거주)씨, 이내홍(대전거주)씨 등의 출향인이 마을주민들과 깊은 연대를 맺고 있다.  옛부터 부촌이라 불리웠던 종미리. 종배는 옛부터 큰 배에 짐을 가득 싣고 들어오는 형국으로, 미산은 고사리산이 있어서 명칭이 정해졌다는 곳. 조용한 마을 안팎이 묘밭에서 김매는데 열중하는 일손들로 꽉 채워져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