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면 포동리] 지탄이라 불리기도, '수박' 주요 소득원
[이원면 포동리] 지탄이라 불리기도, '수박' 주요 소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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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6.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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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동리 전경


요즘 이원면 포동리 주민들은 마을 중앙에 들어서는 문화생활관 신축공사 때문에 바쁘다. 군이 주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한 예산 5천만원을 지원했고 이에 주민들이 추가 부담하는 부분까지를 포함해 마무리를 해야 할 시점에 와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항상 이용할 수 있는 운동기구가 배치될 건강관리실과 논밭에서 일하다가도 잠깐이나마 짬을 내서 쉴 수 있는 공간인 쉼터 조성공사가 한창이다.  군에서 5천만원을 지원해 준다고는 하지만 주민들의 부담 또한 여간 큰 게 아니다.

문화생활관을 신축하는 사업비가 8천여만원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군 지원예산 5천만원을 제외한 3천여만원은 마을에서 주민들이나 출향인들이 부담해야 할 몫으로 남겨졌다.  그래도 현재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이 2천1백여만원을 넘었다. 그리고 나머지 더 필요로 하는 공사예산 1천5백여만원도 비교적 수월하게 마련될 것이라는게 김영복 이장을 비롯한 마을 일을 맡은 지도급 인사들의 예측이다.

문화생활관 공사로 인해 주민들이 통행하는데 약간의 불편은 있으나 크게 문제되지 않는 것은 문화생활관 신축과 아울러 그동안 숙원이었던 50평 규모의 집하장도 함께 만들기 때문이다. 집하장은 이제 점차 그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마을내 과수생산농가에는 희소식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마을 숙원을 풀어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더불어 마을자랑비 건립도 이제 추진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마을을 알리고 주민들이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들이 갖춰지는 셈이 되었다. 모두 1백2세대, 3백12명의 주민 거주하는 포동리.  포동(浦洞)리란 지명은 이 마을의 지형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옛 지명이 '갯골'이었고, 이는 '강가에 있는 마을'이란 뜻을 갖고 있기 때문.

'갯골'이 한자화되어 포동이 되었다. 포동리에서 경부선 철로를 따라 개설된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옆으로 금강이 흐르고 있음이 이 마을을 갯골이라 불렀던 요인이다.  포동이란 지명 이외에 '지동(池洞)'이란 지명도 있다. 이는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저수지와 관련해 저수지가 생긴 60여년 전부터 마을에 작은 연못이 있다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오늘날 포동리와 금강변 쪽의 기탄리(岐灘)을 합해 지탄리(池灘)라고 부르는 계기가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오늘날 이 인근을 합해 지탄리라고 부르는 것은 지동리의 '지'자와 기탄리의 '탄'자를 딴 것으로 법정리를 말할 때를 제외하고는 지동 또는 포동과 기탄이라고 구별해 부르는 것이 옳다.  포동리는 옛부터 못골, 갯골, 도래 말 등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못골은 옛부터 작은 연못이 있어서, 갯골은 강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도래말은 한자로는 회촌(回村)이라하여 마을을 비껴 돌아가는 곳에 위치해 있다는 각각의 지명 유래를 갖는다.

마을에는 창녕조씨가 먼저 자리를 잡았다는 얘기가 전하며 밀양박씨가 11대까지 살아온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뚜렷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온 성씨는 눈에 띄지 않는다.  예로부터 물사정이 좋아 넓은 지탄들을 배경으로 벼농사가 발달했던 이곳은 최근들어 포도 재배농가가 20여 가구에 달할 정도로 늘었는데 실제로는 포동마을은 이원면내에서는 백지리와 함께 수박의 주요 생산지이다.

20여년 전 마을의 이상일(53)씨가 처음 재배했던 수박은 10여 가구에 불과하지만 1억원의 자금이 지원될 정도로 주요 소득원의 하나이다. 현재 마을에서의 가장 큰 숙원사업은 갯골, 도래말의 소하천 정비사업이다.  지탄들 경지정리 당시 소하천을 잡지 않아 매년 장마철이면 침수피해를 당하는 원인의 하나로 분석되고 있다.

30∼40대 14명으로 구성된 부녀회(회장 신시영)회원들은 경로잔치는 물론 버스정류장 쉼터를 마련하고 각종 행사나 마을 일에 노력봉사 외에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며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주민들중 남편은 새마을지도자로, 부인은 부녀회장으로 마을 일을 분담하고 있는 박광범, 신시영 부부가 젊은 일꾼 노릇을 하고 있으며, 수박, 축산을 중심으로 복합영농을 하는 김재홍(이원면 농어민후계자협의회장)씨는 독농가로 소문나 있다.

출향인들과의 관계도 원만해 재대 전향우회(회장 조봉춘), 재서울,경기 향우회(회장 강경구) 등 회원들이 주민들과 유대를 갖고 있다.  거택보호자이면서도 마을 청소 등에 열심인 김대영(35)씨가 주민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고, 남창희(청성초 교장)씨, 송종구(서울 거주)씨, 김영길(재경 이원향우회장)씨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심천으로 나가는 도로 한켠에 세워진 박 인 효자문과 그의 손자 박동룔 충신문은 이곳에 살아온 선조들이 효와 충을 행한 교육자료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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