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면 현남리] 월이산 기슭의 진주강씨 살았던 부촌으로 유명
[이원면 현남리] 월이산 기슭의 진주강씨 살았던 부촌으로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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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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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남리 전경

이원면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월이산(달이산)은 주민들의 지향점이다. 산기슭으로 현남, 현리, 두암리 등 3개 마을을 이루는 이원리, 원동1,2리, 대동리, 구미리까지도 모두 포함하는 이 산의 정기는 이원면의 많은 주민들에게 미친다.

현남리 또한 월이산 산기슭의 대표적인 마을로 어느 마을보다 번성함을 누렸던 옛 마을터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한때는 소재지 역할까지 한 마을이다.  1739년 여지도서(與地圖書)의 기록에 의하면 이원리는 이내면(利內面)에 속해 있었고 현재의 현리인 현리와 현남리인 역리(驛里)를 함께 관장했다.

당시 기록에 역리에는 41호가 살았던 것으로 전하고 있는데 그후 1890년 신유장적에는 61호가 살았다고 전한다.  이내면(利內)은 1914년 행정구역 조정시 한자 표기를 바꿔 이내면(伊內面)으로 고쳤으며 1929년에 이원면(伊院面)으로 조정해 이원리를 면소재로 삼았다.

기록에 의하면 옛부터 현남리를 역리 또는 역말로 불렸던 것은 이곳에 토파역(土坡驛)이 있었기 때문이다. 토파역은 증약 찰방역의 속역으로 한양에서 동래를 잇는 중간 길목에 위치한 요충지였다. 이 역에는 역장과 역리 등 51명에 근무했으며 남자종 5명이 있었던 것으로 전하고 있는데 마을 뒷산인 월이산 봉수대와 연관지어 볼 때 통신의 요충지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역이 고려때부터 본격 실시된 제도로 공문서의 전달이나 관리들의 왕래와 숙박을 도모하고 관물이나 공물의 수송을 돕기 위한 기관임을 감안할 때 현남리를 빠져나가 원동리까지 이어진 도로는 옛부터 중요한 교통로였음을 알 수 있다.  현남리는 현리와는 불과 냇물을 하나 사이에 두고 이루어진 마을로 현재는 마을에 거주하는 가구수가 36호에 불과하다.

주민들의 수도 1백20여명에 달해 옛날 역리라고 불렸던 시절의 61호에도 훨씬 못미치는 마을로 변모되었다. 마을은 이원면 신흥리에서 건널목을 건너 바로 좌측의 1차선 도로를 따라 들어간다.  법정리동인 이원리의 하나인 두암리를 지나 현리교를 건너면서 오른쪽으로 돌아서기만하면 현남이다. 불과 1백년전까지만 해도 부촌으로 이름있는 갑부들이 거주했다고 전해지는 이곳은 어느해인가 대홍수를 만나 왜소해지고 평범한 마을로 변했다.

신흥리 철도 건널목 건너 남방의 주민들은 대부분 대홍수를 피해 높은 지대로 이주한 주민들로 현남리가 고향이다.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이 마을의 노령화는 급격히 진행돼 65세 이상 노인의 수만 27∼28명에 달한다.  주민들은 2∼3년 내에 당장 거주인구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염려하지만 현재로서는 뚜렷한 방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인력난 때문에 큰 일이라는 주민들의 우려는 여러가지 현실 여건 하에서는 걱정하는 모습에 불과하다.

26농가가 모여 결성한 과수조합(회장 김정만)이 있듯이 현남리의 주요 농산물은 복숭아였다. 새로 포도 재배를 시작한 농가가 1가구 있기는 하지만 현재 주민들의 분위기로 봐서 더이상 포도 재배는 늘어날 기미는 없다. 포도 과잉재배라는 주민의식 때문이다. 다만 강해형 이장, 강관형 새마을지도자 등 3명이 묘목재배농가로 꼽히는데 이들의 농가소득이 마을내에서는 가장 높은 것으로 꼽힌다. 

현남리는 진주강씨 집성촌으로 현재 8가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유명농원을 운영하는 강기영씨는 아버지 강영목씨 때부터 3대째 복숭아를 재배하고 있다.  현재 출향인들과의 별다른 관계가 없는 것이 주민들로는 아쉬운 점인데 출향인과의 연계를 시도해 보았으나 대홍수 등의 영향으로 가족 단위의 농가 이농이 많았던 탓에 별다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마을 앞에 순수한 주민들의 힘으로 개설한 과수집하장이 마을을 통과하는 도로에 개설되어 있는 관계로 출하기에는 화물차량에 가려 노선버스 등 차량통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에 주민들은 집하장 근처의 부지를 더 확보해 출하기때에도 차량통행이 원활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숙원으로 제시한다.  출향인들과의 연계를 통한 마을 발전도모는 현재 주민들이 안고 있는 여러가지 마을 사업을 해결할 계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한 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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