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면 지정리] 옛 선조들의 풍류 살아숨쉬는 '세심정'
[이원면 지정리] 옛 선조들의 풍류 살아숨쉬는 '세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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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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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리 전경

이원면 신흥리 철도 건널목을 건너 지방도를 따라 개심저수지까지 이르는 도로와 도로변은 글로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주민들에게 잘 알려진 길이다. 이 도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8개의 마을이 제각각의 모양을 갖추고 이루어져 있다.

지정리(池亭里)도 그중의 하나. 도로를 따라 개심리에 거의 다다를 지점인 대성초교 앞에서 마을 이정표를 찾을 수 있으나 정작 지나치기 쉬운 이정표에도 불구하고 멀리서도 확연히 볼 수 있는 조선 소나무(재래종 소나무)는 이 마을의 단정한 품격을 나타내주는 표상이라 해도 무방할 듯 하다.

일제 침탈기를 지내며 그 혹독한 수탈을 감내하면서도 아름답게 가꾸어온 소나무숲은 일부 외지인들이 양산 송호리 솔밭으로 오해하고 찾아올 정도의 모양새를 갖춰 인근 뿐만 아니라 군내 어느 마을에서 찾기 힘든 명물로 간직할 만하다.  마을 어귀에 주로 형성된 이 소나무 숲은 그 지형상 옛부터 개심리 노루목 마을과 연관해 재미있는 얘기가 전해오는 곳이기도 하다.

노루목은 말그대로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지명인 바 지정리 마을 앞 야산에서 보면 마을 뒷산의 지형은 영낙없이 사자가 잔뜩 웅크리고 누워있는 형상이다.  이와 관련해 이원면 개심리 조종상(66)씨는 노루목의 노루가 개심리에서 흘러내린 이원천에 물을 먹으러 내려왔는데 물 건너편에서 사자가 노루를 노리는 형상이라고 전한다.

야산을 올라가지 않고 도로쪽에서 보더라도 이 소나무 숲은 사자의 갈기를 연상하게 하고 마을 중심부 뒷산의 소나무숲이 형성되지 않은 부분은 사자의 배와 다리 부분을 연상하게 한다.  마을 뒷산의 형상이 사자 형상을 하고 있는 한편 길쭉하게 늘어선 마을은 대한민국 지도를 꼭 닮았다. 전라도.경상도 남부의 펑퍼짐함과 충청도. 경기도 서해안의 잘록한 허리, 북부지방에 이르기까지 일부러 지형에 맞춰 집을 지어놓은 듯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지정리란 마을 지명은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분명한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본래 개심리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의평리와 지정리로 분할되었으며 마을에 큰 연못이 있었기 때문에 못지(池)자가 붙었다. 지금도 마을의 땅을 파보면 자갈과 모래가 출토 되는 것으로 보아 강바닥 또는 연못이 마을에 위치해 있었던 점을 보여주고 있다.

지정리는 특히 연못에 정자를 지어 놓으면서 '지정'이란 이름을 얻었는데 이원면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될 당시인 1929년까지 이남면의 소재지로 이 부근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남면 소재지였던 관계로 이 마을에 위치했던 면청사는 현재의 마을창고 자리에 있었다. 소재지에 있었던 시장터도 이 마을에 있다.

마을 이범설씨 집이 옛 장터로 인근 개심, 의평, 구미, 수묵리 등지에서 주민들이 모여들어 장을 이루었던 곳이다. 이남면 소재지와 장터가 있었던 만큼 마을에는 제법 고가(古家)의 형태를 갖춘 집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우봉이씨와 의성김씨의 집성촌이었던 관계로 마을 곳곳에는 옛 선조들의 풍류와 흥취를 느낄 수 있는 흔적들도 있다.

'세심담(洗心潭)'과 '세심대(洗心臺)'가 바로 그것. 이는 우봉이씨 문중 가운데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 살았던 '이 무' 공이 마을 앞 연못에 정자를 짓고 세심대라 하고 연못을 세심담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지금은 세심담과 세심대에 흙이 채이고 물길이 바뀌어 바위에 새겨진 글귀로만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바 옛 선조들의 유유자적한 생활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유적이 되고 있다.  이 마을에 사는 50∼60대 장년층의 기억속에 세심담에서 물고기를 잡았던 추억이 살아 있는 만큼 세심담과 세심대의 흔적은 불과 수십년 전만 해도 분명히 살아 있었던 현실이었다.

가구수 58가구, 인구수 1백80여명. 이 마을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인구 변동이 그리 많지 않은 점. 이농 현상이 컸던 시절을 보냈음에도 마을을 빠져나간 주민들은 별로 없어 다른 마을에 비해 빈 집이 없다는 것이 특이하다. 본래 60여호에 달했던 이 마을. 가구수가 줄었다 해도 단지 몇 가구에 불과했다.

58가구 가운데 우봉이씨는 23가구, 의성김씨는 11가구로 옛부터 집성촌을 이루었는데 주요 마을 소득원으로는 복숭아가 주종을 이루었으나 현재는 포도가 주요 소득원이다.  포도는 40여호, 복숭아는 10여호가 재배하고 있으며 과수작목반(회장 이범채)이 형성된 한 해 평균 5억원 가까운 과수 소득을 올린다. 포도 재배에 있어서 지정리의 특징은 일반 품종인 캠벨과 늦품종인 세레단이 5대 5를 이룰 정도로 늦품종 재배가 많다는 것. 과수 재배 외에 묘목 재배 농가도 많아진 것이 현실.

마을회관 겸 경로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의 재건축 문제와 더불어 현재 개인적으로 지하수를 먹고 있는 현실을 마을 전체 상수도로 개설하는 문제, 마을 한켠에 위치한 축사로 인한 축산폐수 및 냄새공해가 주민들의 민원으로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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