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면 평계리] 마리산 산자락에 위치, 옛 군사적 요충지
[이원면 평계리] 마리산 산자락에 위치, 옛 군사적 요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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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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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계리 전경

흡사 지리산 산중의 높은 평탄면에 올라와 있는 듯 몇 개의 낮은 봉우리가 보이고 그 뒤로 근방에서는 가장 높은 산인 대성산이 우뚝하다.  마리산(마니산) 산자락에 자리잡은 이원면 평계리에서 보는 이 세상은 운무만 적당히 걸려 있으면 그야말로 신선들이 사는 곳인양 탁트인 경관이 시원하다.

마을로 찾아들어오는 길이 그리 멀거나 험하지는 않아도 이곳이 오지라고 불리는 것은 아마도 지방도에서 조금 더 들어간 곳에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영동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 그리고 마을로 들어오는 진입로가 깔끔하게 포장된 지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79가구에 이르는 주민 가구수가 오지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많다는 느낌을 준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면소재지를 제외하고는 이농이 많이 진행된 탓에 보통 마을의 경우 50∼60호 단위의 작은 규모가 대중을 이루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 점에서 군내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마을 평계리는 옛날부터 큰 마을로 이루어져 있었다.

평계리는 마리산 하나를 사이로 영동군 심천면 마곡리와 경계해 있고 지방도를 따라 양산면 누교리와 잇닿아 있는 군내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한때 가장 많았을 때가 1백40호까지 달했다고 하니 자연마을만도 12마을에 이르렀다는 말이 거짓은 아닐 듯 싶다.  대밭말, 공촌, 계촌, 새터, 야지말, 도래말, 살구정이 등이 옛 자연마을 지명인데 지금은 사람이 떠나가 살지 않는 곳도 있어 무상함을 더해준다.

마을은 곡부공씨가 공촌에 들어와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도 거주하는 15가구 모두가 1개 성씨인 공씨로 이루어진 곳이 공촌이다.  12, 13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완전하게 자연마을 하나를 씨족 중심으로 이끌어 온다는게 쉬운 일은 아닐텐데도 현재 공촌에는 공씨밖에 없다. 공씨 이외에 마을에서 많이 차지하는 성씨는 옥천육씨와 풍양조씨로 역시 15가구쯤 된다.

전전통적으로 벼농사와 밭곡식밖에 몰라 모내기철에는 수리시설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던 시절이 있었건만 이제 평계리 들녘을 뒤덮고 있는 것은 포도와 포도 묘목을 비롯한 묘목이다. 포도 재배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불과 5년전의 일이다.  역시 UR협상에 따르는 위기감으로 벼를 대체할 작물을 고르게 되었고 최근 시세가 좋은 포도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현재 30호 가량이 포도 재배에 참여하고 있는 것 외에 복숭아 재배농가도 15가구에 이른다.  최근 과수재배 붐과 아울러 또 하나 포도 묘목을 비롯한 묘목 재배도 평계리의 새로운 풍경이다.  논을 밭으로 변경해 심은 것은 영낙없이 포도나무와 묘목이다. 이는 주민들이 시대 변화에 따라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일 뿐만 아니라 평계리와 같이 급격히 변화되는 곳은 드물 정도로 급한 변화를 겪고 있다.

실제로 이 마을에 포도가 들어온 것은 80년 쯤으로 진복주(67) 노인회장이 처음 재배한 이후 5년여 전 집단으로 재배하기 이전까지는 마을에 포도 재배농가는 몇되지 않았다.  기술 보급이 제대로 안된 것이 고수 재배농가가 많지 않았던 점이거니와 과수 재배 이외에 묘목 재배에 참여하고 있는 농가는 얼추 따져도 60가구에 이른다.  평계리에 묘목이 들어온 지가 2∼3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묘목 재배는 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포도 파동에 대한 일반적인 위기감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마땅한 대체작물이 없어 심는다는 얘기에서 현재의 농촌 실정이 그대로 투영된다.

항상 식수 걱정에, 농업용수 걱정이 끊이지 않았던 이 마을이지만 다행이 지난해 대형관정을 굴착, 갈증해소에 크게 도움을 받고 있다.  물이 모자라 수리안전답률이 떨어지는 것은 아직까지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해마다 조금만 가물어도 상습적인 한 해 지역으로 꼽혀온 곳이 평계리이다. 93년에는 농작물 냉해가 심했던 경험도 있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가장 큰 마을 숙원은 물부족 해소이다.

농사짓기에 기후 조건이나 물 조건이 좋은 조건만은 아니라는 단적인 예이다. 마리산(마니산)에 얽힌 얘기는 널리 알려졌듯이 고려시대 공민왕이 난을 피해 피신해 왔던 곳이라는 전설이 내려온다. 마리산성이 위치해 있는 점으로 보아 평계리 지역은 인근 지역에서도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보여준다.  멧돼지, 야생토끼 등이 자주 내려오는 것은 마을이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는 증거이다.

현재 두 내외만 사는 70세 이상 노인만도 15가구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노령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아직까지 출향인들과의 관계정립은 없는 상태.  변화를 빨리 수용할 줄 아는 주민들이기에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도 미래가 반드시 어둡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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