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면 윤정리] 일찍이 묘목으로 작목 전환해 소득 높은 마을로 변모
[이원면 윤정리] 일찍이 묘목으로 작목 전환해 소득 높은 마을로 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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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2.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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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리 전경

이원면 윤정리 사람들은 부지런하며 농업소득증대에 관해 일찍부터 깨우쳤다. 세계가 모두 우루과이라운드의 영향으로 농촌마다 비상이 걸려 있는 가운데에서도 일찍부터 밭의 이용률을 극대화시켜 소득증대를 꾀해왔기 때문이다.

그 단적인 상징은 묘목의 재배. 각종 과수묘목 뿐 아니라 관상수 재배를 통해 깨끗한 마을, 소득이 높은 마을로 변모시켜왔다. 전국에서도 지명도가 높고 유명한 이원묘목이 나오기까지 윤정리 주민들의 기여한 공을 말하는 것은 결코 거짓이거나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벼농사야 1년에 한번 지어먹는 것 아닙니까. 거기에 비하면 밭작물은 꽤 소득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요. 1년이면 여러번 작물재배가 가능하거든요." 금영훈 이장이 지적한대로 토지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윤정리 사람들은 자신이 먹을 만큼의 벼농사를 제외하고는 많은 논을 개조, 묘포장을 만들거나 버섯포장으로 바꾸었다.

자금회전력이 높은 작물을 선호하는 현대 농민들의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모습이자 하나라도 새롭게 시도하는 농촌의 모습으로 기록될 만하다. 현재 봉화금씨 집성촌이자 가장 큰 마을인 부르니를 비롯, 양지말, 반정리, 수먹말, 평지말, 방아다리 등 6개 자연마을에 92가구가 모이거나 흩어져 살고 있다. 이 92가구 중 40호가 봉화금씨 문중 집성촌인 만큼 가장 큰 마을인 부르니에는 전체가구 중 1가구만이 다른 성씨일 뿐 전체가 일가관계를 형성하고 있을 정도.

이 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중봉 선생과 함께 왜병과 싸우다 금산전투에서 장렬히 순국한 금웅신 할아버지가 최초로 마을을 일군 후 13대째 살고 있으니 마을에 4백년의 긴세월이 묻혀 있는 셈이다. 금상수(70)씨가 말하는 마을의 명칭유래는 특이하다. 본래 윤정리의 潤자는 부르니 마을 양옆으로 물이 흐르고 있으므로 水변이 붙었고 그 속(門)에 금(琴)씨가 살았다는 해설이고 보면 기록상 보이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소정리와 윤동리를 `윤정리'라 부르게 된 사유를 재해석한 것이어서 흥미가 있다.

이 마을은 이원묘목의 시발로 92호의 가구중 80여호가 묘목재배에 참여하고 있을 만큼 묘목이 소득증대작목이며 최근들어 표고버섯이 재배농가가 13가구가 될 정도로 새로운 소득작목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중 금영목(55)씨는 관상수를 중심으로 6천여평의 묘포장을 가지고 매년 2천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데 금씨는 묘목을 시작한지 25년이나 된 베테랑으로 개나리 5만본, 플라타너스 5만본, 무궁화 5만본 등 10여종류의 관상수를 기르고 있는데 묘목사업에 뛰어들게 된 동기를 `나무 기르기에 흥미가 있어서'라고 말한다.

"묘목이나 버섯이 벼보다야 못해도 두 세배는 낫지"라고 말하는 한 주민의 혼자말처럼 적어도 30년 이상된 묘목재배는 이 마을이 부채없는 마을로 되게 하는데 크게 기여한 작목이다. 금영목씨 외 금영하씨의 유실수 묘목재배도 마을에서는 가장 크게 알려진 사실. "사실은 묘목이 이제는 수요가 많이 없어졌어요" 하는 비관론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마을 주민들은 이제 젊은이들이 마을에 남아있지 않음이 은근한 걱정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지난 78년부터 계속해온 노인들을 위한 관광여행은 마을에서 이제는 으례하는 것으로 자리잡았다. 그만큼 경로사상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이 마을에서 대전에 거주하는 금영묵씨나 부산에 거주하는 금선주씨는 출향인의 몫을 톡톡히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매년 경로잔치 때마다 한번도 거르지 않고 마을 어른들과 함께 놀아주는 금영묵씨 등은 충분히 후세에 귀감을 줄만한 행동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마을의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로는 뒷산의 대성산의 빼어난 절경. 수량은 많지 않으나 5개의 폭포가 계곡을 이루며 우뚝 솟아있는 대성산을 주민들 사이에 그 옛날 절을 지었으나 `산수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큰 절의 시기를 받아 헐렸을 정도'라는 절터가 남아 있다. 현재 마을진입로를 비롯해 안길 등 포장상태가 비교적 좋아 마을 이미지를 높여주고 있는데 복숭아를 비롯한 작물 집하장을 세우는 것이 숙원이라면 숙원.

이 마을에서는 공직계통으로 진출한 경우가 많은데 금문갑(안남 삼화초 교장)시와 강항오씨, 금영재씨가 군 토지관리계장으로 재임하고 있으며 박철순씨가 영동경찰서에 몸담고 있다.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금영훈, 설영자 부부.

각각 이장과 부녀회장으로 마을살림을 안팎으로 돌보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억척스러움 만큼이나 마을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양화 되고 있다는 묘목재배. 이 마을주민들이 내리고 있는 평가대로 묘목재배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면 이를 대체할만한 작목을 선택하는 것도 바로 마을주민들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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