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읍 대천2리] 해마다 정월초사흘 공동샘에서 산신제 올려
[옥천읍 대천2리] 해마다 정월초사흘 공동샘에서 산신제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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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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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천2리 전경 사진

옥천읍에서 이원 방면으로 가다가 마암리에 이르러 과선교를 건너면 옥천읍의 남서부를 이루고 있는 마을들과 만날 수 있다. 그중 한 마을이 대천2리. 대천리를 호칭하던 지명은 옛부터 많았었다. 기록에 나타난 것으로는 대야동리, 맹동리, 솔미 등이 있으며 마을에 전해지는 자연지명으로는 대골, 맹골, 솔미, 배터 등으로 다양하다.

그중 마을의 지반을 이루고 있는 지명이 바로 '배터'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대천2리 어느 곳을 막론하고 땅속 1.5m만 파고 들어가면 모래와 자갈로 형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먹을 물을 해결하기 위해 샘을 파야했던 주민들은 그만큼 힘을 덜 들였다는 얘기인데 이처럼 물이 많고 자갈, 모래층이 있다 하여 배터라는 지명을 붙였다.

배터에는 샘을 많이 파면 안된다고 하여 이 마을에 인위적으로 판 샘은 마을 공동샘 두 군데에 불과하다. 지금이야 각 가정마다 지하수를 뚫어 식수를 해결하고 있지만, 마을 공동샘 두 군데로 식수와 생활용수를 해결해야 했던 그 시기이기에 마을에 살고 있는 55세 이상의 주민들은 모두 마을 어귀에 있는 공동샘물을 먹고 자랐다는게 마을 어른들의 설명이다.

배터는 배터대로 마을에서 흔히 쓰이는 지명이지만 외부에는 '대골'이란 자연지명이 더 잘 알려져 있다.  보통 '골이 큰 마을'이란 뜻에서 '한골', '황골' 등과 함께 쓰인 대골이라 불린 대천리는 본래 군남면 대야동리(大也洞里)와 맹동리(孟洞里)로 나뉘어 있었다.  1890년의 기록에는 대야동리에 32호, 맹동리에는 8호가 살았다고 전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맹동리는 이제는 논밭터로 변한 대천리 본래의 터전 '맹골'을 지칭하는 것이다.

주민들 사이에 전하는 바로는 대천리는 본래 현재의 마을보다 더 산기슭에 가까운 맹골에 살다가 차츰 이전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옛 맹골 마을에 살 당시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도 이어져온다. 다른 마을에 비해 부자로 살았던 이 마을에 하루는 도둑이 들어왔다. 그 도둑은 마을 일꾼들에게 들켰고 쫓겨 달아나다 농경지 한 켠에 있던 '샘자리'라는 샘에 빠져 죽었다. 그 샘은 옛부터 물이 나오던 곳으로 경지정리 후 샘은 없어졌지만 도둑이 빠져죽은 후로 물빛이 흐려지거나 변하게 되면 비가 온다는 전설이 생겼다.

또 하나 알려진 샘으로 '조백이샘'이 있다. 바로 옆에 시냇물이 있는데도 사시사철 물이 잘 나온다는 이 샘을 여름이면 차갑기로 유명해 5분을 못 버틴다는 곳으로 땀띠가 없어지고 문둥병까지 나았다는 약수이다.  대천리가 1.2리로 분리된 이후 2리에는 54가구 270여명의 주민들이 거주한다. 옥천읍의 한켠에 위치해 있지만 주민들의 대부분은 농사를 짓는다.

일제 강점기만 해도 맹골에는 목화를 많이 심었건만 지금은 포도, 복숭아 등 과수 소득과 축산 소득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포도 20가구, 복숭아 20가구 정도로 과수조합이 구성돼 서로간의 영농을 돕는다.  마을에서는 남의 집 살이를 하던 어려운 처지에서 이제는 1년이면 3∼4천만원의 부농으로 발돋움한 이국환(39)씨를 비롯해 김동철 지도자가 수입이 높은 농가로 꼽힌다.

특히 마을의 발전 가능성이 가장 높고 주민들간의 인화단결이 잘 되고 있는 점은 마을에 30∼40대 젊은층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약 30명의 젊은이들이 마을일이나 발전을 이끌고 있는데 현재 청년회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방승춘 이장을 중심으로 일고 있어 사뭇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2월 돌풍으로 인해 쓰러진 700평에 가까운 김흥원씨의 포도 하우스를 원상복구 하는데 별다른 인원 동원없이 너도 나도 동참해 화합심을 보여주기도 했거니와 노인층에서는 노인층대로, 젊은층에서는 젊은층대로 서로 공를 추켜주는 미덕이 남아 있는 곳이다. 집하장 옆 마을 한가운데 서있는 느티나무는 처음에는 한 농가에서 울타리를 대신해 심었으나 이제는 어엿한 아름드리가 되었고, 그리 멀지 않은 6.25 전쟁 후까지도 단오날이면 그네를 매달아 그네를 뛰었던 그런 정취가 서린 군 보호수이다.

마을에서는 옥천읍지역에선 드물게 아직도 산제를 모시는 전통이 남아있다. 해마다 정월 초사흘이면 마을어귀 공동샘에서 깨끗한 물을 떠서 떡을 하고 제를 올린다.  인근 진입도로보다 1.5m가량 낮아 빗물 등으로 오염될 우려가 있다며, 주민들이 이 샘의 높이를 올려달라는 숙원을 갖고 있는 것도 모두 신성한 산제를 올릴 샘물을 정갈하게 보존해야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출향인 모임도 구성하고 있는데 주민 출향인 가운데는 마을 일을 솔선해 돕는 손광규(브릴리앙스호텔 대표)씨와 수해복구에 중장비를 투입, 복구를 도운 이정상(정상건설 대표)씨, 이장을 역임했던 이영부씨 등이 꼽힌다.  맹골로 향하는 농로 중 교량 보수, 마을 안 하수구 복개 등이 대표적인 숙원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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