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읍 중삼리] 선산곽씨 집성촌, 포도.복숭아 재배
[옥천읍 중삼리] 선산곽씨 집성촌, 포도.복숭아 재배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6.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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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삼리 전경 사진

조선 중기 탄암 곽 시 선생 등 대유학자 등이 배출되었던 삼청리 3개 마을 중 타 성씨가 가장 많은 곳 중삼리.   물론 다른 성씨가 많다고 해야 9개 성씨 밖에는 되지 않지만 어찌 되었든 석산곽씨 문중의 집중률이 떨어지는 곳이 이곳이다.

현재 마을이 위치한 곳은 상삼리를 거쳐 용암사에 이르는 도로변에 자연스럽게 위치해 있지만 마을의 원래 위치는 삼청리 들 한복판 쯤이었다는 것이 마을에 전해지는 얘기다.

마을에 거주하는 육창균씨의 할아버지가 옛날 마을 위치에서 현 위치로 집을 옮긴 마지막 주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마을이 완전히 형성된 것은 100여년 전으로 추정된다. 들판 한가운데는 옛날로 말하자면 가풍리-이원을 잇는 큰 길가에 위치해 있었으며 군수 선덕비를 비롯, 비석거리도 있었으나 경지정리로 집터와 기타 옛 전경이 땅 속에 묻히고 말았다.

현재 위치해 있는 마을터는 사실 장령산 줄기가 뻗어 작은 구릉지로 형성되어 있었는데 집들이 들어서고 농사를 짓기 위해 농경지로 개간되어 주민들의 생활터전이 되었다.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포도와 복숭아 등 과수소득. 각각 15호, 30호 가량의 농가가 과수를 경작하고 있는데 복숭아는 곽정철씨가 20여년 전에 첫 재배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타는 벼농사와 일반적인 밭농사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마을의 어른들인 노인층과 주민들의 화합, 단결로 분위기 좋은 마을을 이끌고 있다.

마을의 지붕처럼 축조되어 있는 삼청저수지의 오염문제가 최근들어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어 상류 오염원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는게 주민들의 한결같은 얘기. 특히 일반적으로 오염원이 별로 없는 상류지역에 조성된 다른 저수지에 비해 삼청저수지는 상삼리의 생활하수를 비롯하여 사회복지시설 등 오염원이 많은 것이 우려되는 점이다.

상삼리, 용암사, 청산원, 영생원으로 향하는 차량 외에 가풍리로 들어가는 차량들로 차량 통행량이 급격히 증가한 마을 진입로 변에는 마땅한 주차공간이 없어 주민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데 삼청저수지 용수로를 복개해 다용도로 활용하게끔 해야 하는 점도 숙원의 하나다.   마을에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어 주민들에게 그늘을 제공하고 있는데 그중 경로당 옆 느티나무는 군 내무과에 근무하는 곽시영씨의 증조부인 한학자 노루목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꼽아놓은 것이 자라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일제 강점기 당시 장령산에서 뱀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인 언고개와 덕고개에 두 개의 쇠말뚝을 박아 놓았다는 얘기가 전해오는 것으로 보아 주변 형세가 좋다는 말의 반증으로 들린다.  옛날 서울에 한 양반이  살고 있었는데 자식이 너무 많아 생활이 어려워지던 차에 편지 심부름을 받고 부산에 다녀오던 길에 어느 부잣집에서 하룻밤을 의지하게 되었다.   이 양반은 부잣집 주인에게 때아닌 융숭한 대접을 받고 후손이 없으니 대신 대를 잇게 해달라는 기이한 부탁을 받게 된다.

이 부잣집 주인의 청이 하도 간곡해 이 서울 양반은 청을 들어주고 부자가 준 귀금속과 보물을 이용, 서울에서 잘 살았다는데 20여년의 세월이 지난 후 옷을 잘 입은 삼형제가 찾아왔다.   이들 3형제의 얘기를 들은 바 이 양반이 옛날에 머물렀던 부잣집 주인의 아들들로 길러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낳아준 아버지를 시골로 모셔가기 위해 왔다는 것이었다. 3형제의 권유에 이 서울 양반은 낙향을 결심하고 장장 10리를 뻗는 대가족 행렬이 닿은 곳이 바로 옥천땅 삼청리였다.

이 서울 양반은 이렇게 해서 세 아들과 세 부인을 얻고 행복하게 지냈다 하는데 이러한 유래로 이 마을은 '삼형제골'로 불리우다 삼청리로 불려왔다.   삼청리에는 '삼형제골'에 얽힌 전설 이외에도 많은 얘기가 전한다.  본래 군남면에 속해있다가 1949년 옥천읍이 된 후 현재에 이르며 삼청리(三靑里 )라 부르게 된 것은 소나무, 대나무, 잣나무 등 세가지가 항상 푸르게 있다 하여 유래된 것이라 한다.

이 마을은 행정 편의에 따라 상삼(上三), 중삼(中三), 하삼(下三) 등 3개 행정리로 나뉘어져 있으며, 중삼리에는 62가구 168명이 산다.   삼청리 하면 특히 선산곽씨들이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온 곳으로 중삼리 또한 예외는 아니지만 현재는 62가구 가운데 35호 가량이 곽씨 문중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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