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의 산성 탐방기] 관산성(管山城)
[우리고장의 산성 탐방기] 관산성(管山城)
  • 조일권 choilguen@hanmail.net
  • 승인 2004.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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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치 : 옥천읍 양수리 와 군서면 월전리 사이의 삼성산(속칭 재건산정상) 
■ 높 이 : 해발 303M   
■ 형 태 : 삼태기형 석축(안쪽성벽) 및 토석혼축(바깥쪽성벽)산성  
■ 시 대 : 삼국시대(백제계성) 
■ 둘 레 : 약 900M  

▲ 북쪽 성벽의 무너진 돌
■ 현 황 : 성의 형태는 전형적인 삼태기형 산성으로 다른 산성과는 다르게 3겹의 성벽을 가졌으며 남쪽성벽은 산의 능선을 따라 동서로 길며 북쪽성벽은 산의 정상에서 아래쪽으로 처진 형태의 산성이다.(전체적인 형태는 서산성과 같이 南高北低이며 위에서 보면 반원의 모양이다)

남쪽성벽 석성의 길이는 약 280M 정도이며 능선에서 2-3M 정도 아래에 축성되었고 북쪽 성벽은 장대지에서 30M 아래에 석성으로된 1차 성벽이 있으며, 1차 성벽에서 약 50M 정도 아래쪽으로 2차 성벽이 석성으로 축성되었고 또한 이곳에서 약 70M 아래에 토석 혼축으로된 성벽이 외성을 이루고 있는데 군데군데 성벽이 무너져 있으나 토성으로서의 흔적이 뚜렷하며 빗물에 쓸려나간 곳에서는 축성의 방법을 알 수 있는 토성의 단면도 볼 수 있어 토석 혼축으로 축성한 바깥 성벽임을 보여준다.

바깥 성벽 토성의 길이는 480M 정도이며 동쪽 능선에 남쪽 석성과 북쪽 토성을 연결하는 성벽이 140M 가 별도로 존재한다. 한편 석성으로된 남쪽성벽과 북쪽사면의 1차 성벽과 2차 성벽은 완전히 무너져 원형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갖춘 곳이 한군데도 없으며 성벽의 높이는 일부에서 보이는 흔적과 무너진 성벽의 돌의 양으로 보아 5-6M 정도로 짐작된다.

능선의 동쪽과 서쪽에 망대지와 문지가 있고 중앙에는 장대지가 있으며 토성의 서쪽부분에는 출입로로 보이는 길이 구진벼루와 연결되어 있다. 한편 북쪽사면 2차 성벽의 가운데 부분에는 무너진 성벽의 돌이 대단히 많으며 또한 반원의 모양으로 30M 정도나 흘러내린 점으로 보아 약간 돌출 시킨 치성과 망루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 동쪽 성벽의 토성 모습

성안에는 건물지로 보이는 넓은 대지가 곳곳에 있으며 이곳에서 백제계 토기편이 발견된다고 하나 수 차례의 탐방에도 불구하고 탐방시 발견하지 못하였다. 한편 삼거리 검문소와 관산성을 연결하는 능선을 답사하던 중 검문소 남쪽의 낮은 산봉우리(해발154M) 정상에 둘레 약 300M 정도의 토성이 있음을 확인하였는데 관산성의 보루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짐작되며, 이곳에서는 몇 점의 토기 조각도 발견하였다.

한편 이곳 토성과 관산성을 연결하는 고개 부분에는 무덤처럼 보이는 이상한 지형 구조물이 나란히 있는데 전문가의 확인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관산성의 지형은 남쪽은 급경사면으로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며 동쪽은 검문소쪽으로 서쪽은 용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이며 북쪽은 구진벼루로 향하나 북쪽성벽의 절반 이상이 벼랑 위에 축성되어 부근에서 찾기 힘든 넓은 공간을 확보한 요새지의 산성이다.

관산성에서 사목재에 이르는 산줄기에는 관산성외에 용봉의 성터, 동평산성, 마성산성의 등의 산성이 있으며 관산성은 성의 남동쪽(옥천시내 방향)을 주로 방어하기 위하여 축성되었고 이웃 서산성과 함께 상주 - 옥천 - 부여(공주)로 통하는 길을 방어하는 주요한 성이며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대로 서로 이 성을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산성이다.

이곳에서의 전망은 북쪽으로는 노고성과 환산성이 동쪽으로는 서산성과 삼양리토성이 바로 보이며 남서쪽으로는 가깝게는 동평산성과 마성산성이 멀리는 마니산성이 보인다. 그러나 관산성의 백제쪽 서편 출입로인 군서면 일대가 용봉에 가려 보이지 않으니 이웃 동평산성등이 관산성의 망루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한편 이곳의 산 이름을 '삼성산'이라고 불리는 것은 북쪽사면에 3겹의 성벽이 존재하여 불리는 것으로 짐작되며, 관산성이 3겹의 성벽을 가진 축성 방법은 일본의 축성방법과 비슷한 것으로 보여 관산성의 축성술(築城術)이 바다건너 일본으로 건너가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짐작하여 본다.  
 
■ 역사현장 :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의 성왕이 서기 554년 7월(음력)에 대가야의 군사와 함께 신라의 관산성을 치다가 신주군주 김무력에게 패배하여 구천(狗川)에서 신라의 장수 고간도도에게 포로가 되어 좌평 4명과 함께 죽음을 당한 곳이다.  
 
■ 문 제 점 : 문화 유적지로서 중요한 곳이나 옥천군에서 설치한 안내판의 설명이 미흡하다고 보며 군부대 초소로 보이는 건물과 장대지에 설치된 시멘트 구조물 및 버려진 쓰레기통 등 불필요한 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정리가 요구되며 옥천군지에는 이웃 서산성과 함께 성의 둘레가 743M로 똑 같이 기록되어 혼동을 준다.  
 
■ 찾아가는길 : 가화리 현대 아파트 뒤편과, 양수리 국제 연수원 입구, 양수리와 월전리 사이의 고갯마루에서 성터로 가는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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