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면 명티리] 옥천의 동쪽 땅끝마을, 한때는 흑연광산으로 흥청
[청산면 명티리] 옥천의 동쪽 땅끝마을, 한때는 흑연광산으로 흥청
  • 인터넷판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4.12.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명티리 전경

맑은 물줄기 하나가 계곡을 타고 마을 앞을 가로지른다. 사람의 발길이 뜸함, 깊은 산 속에서 오염이 안된 채로 흐르는 물은 계곡의 돌을 다듬으며 인간들이 많이 사는 마을을 지나 좀더 넓은 강물로 흐르기 마련.

아직 오염 안된 마을이 있다. 청산면 명티리. 물도 자연도 사람도 모두. 달밖골 깊은 골짜기에서 발원해 흐르는 물은 청산 사람들의 먹을 물이 되고, 청산 넓은 들을 적신다.  물좋고 골깊은 명티리의 자연환경은 한마디로 천혜의 효소이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거니와 자연이 보존되어 있다는 것 하나 만으로도 가능성을 품고 있는 미래의 보금자리이다.

이런 천혜의 자연조건과 환경을 간직한 미래의 가능성인 명티리는 물론 현재로선 사람들이 살기조차 팍팍한 모양을 보여준다.  이제 14가구 28명 가량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이곳은 누가 보아도 10년 안쪽이면 불과 몇 가구 안 남는 마을로 변해버릴 것이란 예측을 할만큼 생활조차 각박하다. 14가구의 면면을 살펴보면 더욱 그런 느낌을 강하게 갖도록 하는데 할머니나 할아버지 혼자 사는 단독세대가 14가구의 절반인 7가구에 달한다는 점이 그런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조건은 마을에 벼농사나 밭농사 등 일반적인 농사를 짓는 풍경을 거의 잊혀지게끔 히는 작용을 한다.  지난해 냉해피해로 인해 단 한포대의 벼도 수매에 응하지 못했을 뿐더러 올해 역시 1차분으로 할당된 57개가 마을 수매량의 전부다. 2차 할당에서 늘어나기는 하겠지만 주민들의 농사거리는 수매를 해 소득을 올리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우선 먹을 것만 짖는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경작되고 있는 농토보다는 놀리는 땅이 훨씬 많다. 경작되는 논의 면적을 모두 합해 보아야 1만평도 안된다.  본래 명티는 이처럼 작은 마을이 아니었다. 옛부터 청산현 북면 예곡리에 속해 있다가 명티리로 분리된 후 현재에 이르는데 1890년의 기록만 봐도 83호가 거주한 큰 마을이었다. 이 큰 마을은 일제 침략기 일본인들에 의해 월명광산(月明鑛山)이라는 흑연광산이 개발되면서 최성기를 맞게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흑연은 질이 좋기로 이름났으며 일제가 패망한 후에도 계속돼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광산촌에다 뜨네기들까지 들어와 3백호를 헤아리는 큰 마을을 이루었다.  흑연광산이 번성했을 당시 청산장은 명티리 광산에서 월급이 안나와 사람이 나가지 않으면 장이 제대로 서질 않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막강한 경제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흑연광산이 사양화 된 것은 7O년대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광산이 사양화의 길을 걸으면서 마을은 급속도로 줄었고 90년쯤 완전히 폐광되었을 때는 현재와 같은 수준에 달해 있었다.

청산 3.1만세 시위의 주동자로 천하장사라고 알려진 독립유공자 고한주 의사가 일본 관헌들을 피해 달아나다 맞아 죽은 곳이 바로 이 월명광산이라고 전하고 있으니 역사적으로도 유래가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광산으로, 향나무로 된 갱목을 깎아서 제사 때 향을 피웠다는 이곳이지만 지금 남은 것은 흉물스럽게 복구가 덜된 흑연덤이 뿐이다.

오히려 지금은 주민들이 큰 비가 오면 산사태가 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으며 장마철에는 흑연이 씻겨내려 맑은 냇물이 오염될까 걱정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맑은 물과 자연을 지켜내려는 주민들은 폐광된 흑연광산의 복구만은 지적하지는 않는다.  광산에서부터 명티 첫 마을인 자티입구까지 무성하게 자란 갈대 등 하천을 정비하는 일도 중요하게 부각된다. 하천을 정비해 물이 제대로 빠질 수 있도록 해놓아야만 맑은 물을 하류로 내려 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로 사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올해 명티리에는 수치상 따지면 엄청나게 큰 돈이 투자되었다. 팔음산 국유림으로 6km 가까이 이르는 국유림도로가 개설되어 명티-상주간 군도와 연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곡리에서 시작된 군도 확포장 공사가 시행되고 있는 까닭이다.  1개 단위마을에 투자되는 돈 치고는 어마어마하게 큰 액수이지만 실상 주민들의 직접적인 소득원과 연계시켜 생각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명티 첫 마을인 자티까지 포장이 되면 교통이야 편리해지겠으나 한편으로는 오염원을 끌어들이는 결과가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마을 젊은층이라 해봐야 설기용 이장이나 안동현 새마을지도자와 같은 두엇 남짓하지만 젊은이들은 흑염소 등을 방목해 명티리만의 특산물로 만들거나 한우 사육 등의 방법으로 마을의 소득원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한다.

전재일(영동 신일태권도 도장 운영)씨와 김은수(서울 금성교통 근무)씨 등이 이 마을 출신 출향인이다.  한편 옛 광산사택에 거주하는 3명의 노인 중, 이미 혜택을 받고 있는 1명 뿐만 아니라 2명도 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주민들의 바람이다.  자티, 새뜸, 구루미, 월명동, 달밖골 등 많은 자연마을 중 현재는 자티와 새뜸에만 주민들이 모여 살며, 경북 상주와 도 경계를 이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