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면 삼방리] 고향의 끈끈함 이어져 출향인과 단합 잘되는 마을
[청산면 삼방리] 고향의 끈끈함 이어져 출향인과 단합 잘되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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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2.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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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방리 전경

여기저기서 예취기 돌리는 소리와 함께 오랜만에 볼 수 있는 아들, 손자들이 검게 그을린 얼굴을 한 할아버지와 함께 어울려 점심상을 받아놓고 있는 정겨운 모습. 이제 처서를 지나 유난히 빨리 찾아든 한가위를 대비한 벌초의 새로운 풍속도이자 우리의 명절맞이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모습이다.

"나도 금방 아들들하고 벌초 끝내고 오는 길이예요" 하며 최병헌(58) 이장이 굳이 방안으로 들어오라며 자리를 권한다.  "자랑할만한 것도 없는디 어떡해요"  "자랑할 것 없어도 지금 그대로의 마을 소개를 해주시면 돼요"

몇마디 인사말이 끝난후 이렇게 시작된 대화속에서 청산면 삼방리의 모습이 하나하나 그려진다.  청산면을 떠나 깨끗이 포장된 보은 관기까지의 지방도를 따라 가다보면 교평리 평상목 고개에서 오른쪽 길을 택해 예곡리 다리를 건넌다. 예곡리를 지나 2km여를 더 들어가면 삼방리 아랫 가사목에 이르며 여기에서 왼쪽으로 가면 웃 가사목 마을, 법화, 명티리, 오른쪽으로 가면 옥천의 끝동네 삼방리 장로골에 다다른다.

삼방리 자연마을인 가사목과 장로골에는 그럴싸한 마을유래가 전해내려온다. 이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은 마을 명칭이 장로골 청량산에 있었다는 청량사라는 큰절과 연관되어 있음이다.  청량사는 주민들에 따르면 매우 큰 절이었는데 지금은 절터만 남아 그 흔적을 얘기해주고 있으며 여기에 있던 부도는 청산면 백운리 백운사로 옮겨졌다 하고 이 절을 본떠 속리산 법주사를 청건하는 한편 목재로는 옛 청산면 청사를 짓는데 사용했다는 말이 전해내려올 정도로 크게 번창했던 절이었다는 것.

당시만 해도 이 절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인가가 없던 장로골 긴 골짜기를 지나야 했는데 수풀이 우거져 스님들이 가사(장삼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는 법의)를 벗고 가야했다는 데서 가사목 마을의 유래가 있다고 주민 최극선씨가 전한다.  장로골 또한 본래 이름은 장록곡이라하여 깊고 푸른 골짜기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따라서 삼방이란 마을이 세방향으로 이루어졌다 하여 붙은 명칭이며 장로골 19호, 웃가사목 11호, 아랫가사목 6호 등 36가구 110여명이 살고 있다.

역시 산간지역인지라 논보다 밭의 면적이 많으며 그중 참깨와 담배, 팥 등 밭작물이 대부분의 소득원을 이루고 있다. 참깨농사만 해도 7~8ha에 이르고 있어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고 잎담배와 잎담배 후작으로 재배되는 들깨, 팥 등 면적이 그 뒤를 잇는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3~4년전까지 장로골에서 생산되었던 삼방리 문종이를 빼놓을 수 없다. 닥나무로만 만들었던 문종이는 많을 때는 20여가구가 참여할 정도로 유명한 주소득원이었으나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노동력이 주는 등의 원인으로 이제는 지나간 얘기가 되어 버렸다.

또한가지, 청량산 청량사와 함께 일춘암이라는 암자에는 용날이라는 바위가 있어 마을 뿐만 아니라 청산면 지역의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는데 효험이 좋아 기우제를 지내고 나면 영낙없이 3일안에 비가 왔었다는 얘기. 옛부터 산좋고 물맑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이곳 삼방리 주민들의 추억어린 얘깃거리이기도 하다.  충북도와 경북도의 도 경계 마을이기에 현재 상주군 모서면으로 통하는 6m 도로를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가장 큰 주민숙원이다.

몇번씩 건의를 해도 번번이 예산부족 등의 답변만 들어야 했던 주민들은 이 도로가 포장되기만 한다면 삼방리 뿐만 아니라 청산지역의 경제 및 상권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상주군 모서면 주민들은 인근 모서면장은 너무 작고 상주장과 영동 황간장은 너무 멀어 지리적으로 청산장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가깝다는 것. 따라서 지금도 상주 주민들이 쌀을 찧으러 이 고개를 넘어 다니는데 이 도로가 포장되기만 하면 삼방리 소득증대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출향인과의 밀접한 유대는 마을의 역사를 바꿔놓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정도로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  91년 2km에 달하는 장로골 진입로를 군비 4백만원의 출향인 성금과 마을기금을 동원, 1.2km를 포장함으로써 여느 마을에 부럽지 않은 든든한 후원자를 가졌다는 믿음이 싹트게 했다. 물론 마을 젊은이를 비롯 열일 제쳐두고 공사에 참여했던 주민들의 협동심도 이 잘 닦인 진입로가 있게 한 큰 원동력이 되었다.

안양에 거주하는 박영호씨와 부산 최종기씨, 파주의 최대용씨, 대구의 최학기씨 등이 주축이 된 출향인 모임은 강릉최씨, 상산박씨 문중 등을 중심으로 한 고향방문계의 형태로 다져지고 있어 고향의 끈끈함을 잇는 연결고리로 맺어졌다.  산간지역인지라 농작물 수확철이면 멧돼지 쫓기에도 나서야 하는 마을.

시내버스 노선이 가사목까지만 닿아 하루 한번씩만이라도 장로골까지 연장운행 및 경북 상주군과 영동 황간까지를 잇는 노선을 개발 운행했으면 한다는 제안 등이 있는 이 마을. 역시 교통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마을에 유일하게 남아 효자로도 소문난 새마을지도자 김용수(35)씨의 말에서 농촌젊은이의 현주소를 느끼게 한다. 

"젊은이들이 다 나가고 없으니 어른들께 무엇을 하자고도 못하겠어요. 젊은이들이 앞장서서 일을 추진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니 어른들께 죄송할 따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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