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읍 귀화리] 마을전체가 포도향기에 취해
[옥천읍 귀화리] 마을전체가 포도향기에 취해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2.10.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귀화리 전경 사진

옥천읍 중심가를 벗어나 영동간 국도를 따라가다보면 좌측으로 구일리라고 쓴 마을이름 안내바위가 보인다. 이곳 진입로를 따라 서대리가 위치해 있고 서대리를 지나면 귀현.귀죽리의 갈림길이 나오며 여기를 지나면 바로 귀화리로 들어서게 된다.

읍 중심가에서 매화리 앞으로 지나는 501 지방도로 가면 바로 동이면과의 경계에 자구티라는 자연마을이 있다. 이 자구티에는 17가구가 살고 있으며, 41가구가 살고 있는 화정골과 함께 귀화리를 이룬다.

지난 67년에 포도작목반이 구성된 후 마을의 주소득원으로 부상한 당도 높고 품질좋은 포도가 이곳 주민들의 자랑거리이다.  67년 당시 황하섭씨, 황견주씨, 유재길씨, 황한지씨, 황장섭씨, 황의권씨, 이학종씨, 성종호씨 등 8명이 당시 돈 200만원씩을 조합비로 내고 포도작목반을 구성한 이후 황돈주씨가 회장으로 있는 현재는 39명이 회원으로 있으며 92년의 경우 약 2억원 가량의 소득을 올린 것으로 추정할 정도로 역사깊고 든든한 작목반으로 성장했다.

25년의 세월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세월인지라 한푼 두푼 모은 기금도 1천2백만원에 이르는 등 옥천읍 일대에서는 가장 깊은 역사를 갖고 있는 포도 재배지의 한 곳이 바로 귀화리이다.  이 마을에서의 첫 포도재배는 황하섭 원로회장이 이장을 맡고 있었던 지난 58년께, 현재도 포도재배를 하고 있는 황한지씨에 의해서였다. 그뒤 황하섭씨 등 7명이 바로 이듬해인 59년에 포도를 재배해 귀현리의 박희준(작고)씨에 이어 드넓은 포도재배단지를 이루었다.

해방 후까지 메마르고 가난에 허덕였던 빈촌 귀화리가 부자마을로 올라서게 된 계기가 이 포도재배로부터 형성되었다.  과일나무 한그루 없던 귀화리에 60년을 전후해 포도재배가 시작되니 임희수 전 이장의 "콩 심은데 하나없이 포도밭이 늘어났다"는 말과 같이 60년대 7년간은 남부3군 포도생산량의 1/3을 귀화에서 생산해냈을 것이라는 설명을 주민들이 할 정도이다.  현재 41가구에서 6~7만평의 땅에 포도재배를 하고 있으며, 연간소득이 포도만도 1천만원이 넘는 농가가 10여가구를 넘고 있다면서 귀화포도의 우수성이 화제에 오른다.

실제로 군내에서 '포도'하면 동이면 세산리를 떠올리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옥천읍에서 생산되는 포도가 동이면의 생산량보다 더 많다. 그 중심적인 재배지가 귀화를 비롯한 귀현.귀죽리라는 얘기이다.

이 마을 특히 화정골에는 장수황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41가구 중 27가구를 차지하고 있다.  맨처음 황계우 할아버지가 이곳에 터전을 잡은 이후 18대째를 살고 있으니 마을 유래가 꽤 깊은 셈. 마을의 역사가 오래된만큼 그동안 마을의 형성도 여러번의 변화가 있었다.

현재의 화정골은 첫번째 마을인 `안구일'로부터 남서쪽으로 옮겨와 있고 두번째 마을로부터는 북쪽 위치한 가운데 쯤에 있다. 언제부턴가는 모르나 안구일이 산사태를 당해 두번째 터전인 화정골로 옮겨갔다가 다시 현 위치에 와서는 그 명칭을 그대로 쓰고 있다. 따라서 옛 마을터에 가보면 샘터와 기타 집터가 심심찮게 발견된다고 한 주민이 전한다. 

이와 함께 비육우 기르기를 통해 부자마을로 발돋움 시켰다. 17년전쯤 시작된 이 비육우 사업은 현재 일반농가 외 13가구가 참여, 포도와 함께 자식들 대학보내고 잘 입히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이외에도 일반 마을에는 경로당이 없었던 78년, 의도야 어떻든 군내 최초로 할머니방을 만들어 할머니들의 놀이공간을 제공하는 등 노인복지에 진작부터 노력해온 것도 이채롭다. 또한 92년 3월부터 2천만원을 지원받아 번듯한 현대식 마을회관 및 경로당 등 다용도 회관을 건축, 마을의 활기를 더 살려주었다.

이 마을회관 부지는 80평을 원로회장인 황하섭씨가 기증하는 등 주민들의 귀감이 되었고 '마을을 들어와서는 흙 밟을 곳이 없다'는 주민의 말처럼 자구티 일부를 제외하고는 안길포장 등이 잘 되어 있어 이들의 삶을 더욱 여유있게 해주고 있다.

옛날의 메마른 마을풍경과 함께 나무 하나없던 마을 뒷산에도 마을의 윤택함을 가져다준 포도의 성장과 함께 꽉 들어찬 숲으로 변했다. 주민들 중에서는 새로운 작목인 땅두릅을 재배해 각 언론은 물론 타 농가의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 송용식씨가 있다. 송씨는 땅두릅 재배를 통해 질좋고 상품성이 뛰어난 소득작물로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장본인.

한편 마을 고샅에 6년째나 아름다운 꽃길 가꾸기에 힘써온 50대 아주머니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주민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다. 전 부녀회장을 지낸 성광용(55)씨. 성씨는 바쁜 틈을 타 자신의 집 앞길 등에 꽃길을 조성, 보는 이를 흐뭇하게 하고 있다.  물론 이 마을에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자구티 마을안길 포장을 비롯, 청소년을 위한 독서실 및 마을문고 운영이 그것. 이외 하루에 6번씩 마을 앞길로 다니고 있는 옥천시내버스의 1~2회 증회운행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현재 이 마을 출신으로 황봉주(충남대)씨와 서울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는 정정덕씨가 있으며, 대전에서 성남목재라는 목재상을 운영하고 있는 황찬주씨가 마을일에 적극 후원해주고 있다.  앞으로 주산물인 포도의 신품종개발과 아울러 시설재배 등을 확대, 소득을 더욱 높여나갈 계획으로 주민들은 이제 농촌인구가 주는 시대가 아니라 도시인구를 농촌으로 끌여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아! 입식부엌 해놓고 도시 못지않게 잘 가꿔놓고 잘 사는데 공연히 도시나가 고생할 필요 있습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