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면 효림리] 효심 지극한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 효자 효부 많아
[청산면 효림리] 효심 지극한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 효자 효부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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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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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림리 전경

청산면 판수리 청산특별농공단지 앞 19번 국도상에서 효림리로 들어오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길은 청산면 내에서는 청산초교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본교로 남아 있는 청동초교 후문으로 통하는 길목일 뿐더러 외동, 덕지리로 향하는 진입로이기도 하다.

효림리는 판수리에서 넘는 고개를 지나 덕지리 가는 길 반대편으로 의동 마을 앞 삼거리에서 개천에 놓인 다리를 건너며 우회전하면 도달한다. 마을 앞 동산에 올라보면 마치 숲에 둘러싸인 마을의 전경이 해발 4백65m 의 천금산 자락에 포근히 안겨 있듯 평화롭다.

효림리(孝林里)는 마을 지명에서 보듯 마을이 전체적으로 마치 숲에 둘러싸인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효자가 많이 났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는 얘기가 전한다. 행정상으로 효림리지만 법정리동은 인근의 목동리와 합해서 효목리라 부른다.

사실 효림리는 옛부터 단일 마을로 형성된 마을로 목동리와는 1914년 행정개편 이후 통합되었다. 여지도서나 신유장적에서는 1739년 및 1890년에 각각 청산면 동면 효림리라 하여 85호, 1백5호가 거주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현재 가구수는 52가구, 주민수는 1백68명에 달한다. 조선 말기보다도 인구수가 줄어든 것으로 지난 74년도의 70호에도 못미친다.

마을의 형성은 조선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평윤씨 집성촌으로 이들 대부분이 마을에 터를 잡아 내려오면서 14대 손까지 마을에 거주한다.  집성촌을 이룬 군내 다른 여느 마을보다도 시실 이 마을의 집성촌은 고스란히 보존되어 왔다. 조선시대 병자호란 당시인 1656년 병조참판까지 지냈던 파평윤씨 탕거 할아버지가 피난처로 이 마을을 택해 낙향한 후 14대 손까지 배출된 지금 타 성씨와 비교할 경우 86.5%가 파평윤씨일 정도로 군내 유일의 파평윤씨 집성촌으로 이름나있다.

지금도 탕거 할아버지가 심었다는 4그루의 느티나무 중 2그루가 살아남아 마을의 정취를 한껏 돋구워준다. 주민들은 이를 보호수로 지정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충북도내에서도 파평윤씨 집성촌은 효림리와 더불어 청원군 미원면과 남이면 등지의 몇개 마을에 불과할 정도로 이 마을은 귀한 전통을 자랑한다.

사실 이 마을은 파평윤씨가 자리잡기 이전에 배씨, 조씨, 김씨 등 3개 성씨가 먼저 거주하고 있었으나 이들 문중이 불과 몇가구만 남기고 빠져나감으로써 윤씨 집성촌으로 더욱 굳어졌다.  이를 두고 이 마을의 형세나 기운이 파평윤씨에 맞기 때문에 그렇다고 얘기가 되고 있거니와 실제로 지금까지 역임한 10명의 이장 가운데 타 성씨는 김씨 한명이라는 사실에서도 마을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마을의 가장 큰 소득원은 담배 경작에서 나온다. 올해 참여하고 있는 농가만도 1농가당 평균 12-13단보 가량을 짓는다. 또한 단보당 평균 생산량도 2백60kg 이상으로 일반적인 경작농가보다 훨씬 많은 수량을 수확하는 축에 속한다.  한때 인삼, 고추, 깨 등 재배 작목이 많았으나 인삼은 1회성인데다 고추, 깨는 소득작물이라기 보다는 자가소비용 위주로 하기 때문에 그리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다만 5∼6년전 느타리버섯 재배 붐이 일었을 당시 버섯 재배막사가 23동에 달할 정도로 컸었으나 여러가지 여건으로 인해 실패하고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는 농가가 남아 당시의 실패가 뼈아픈 기억으로 남는다.  그후 벼농사 위주의 이곳 작물재배 형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주민들로서는 현재 앞재, 뒷재 뜰이라고 불리는 발기반정비사업을 첫째 숙원으로 삼고 있다.

5∼6만평의 낮은 구릉에 형성된 이 밭들은 면내에서도 만월리를 제외하고는 가장 넓은 들로 추정되고 있어 기반정비를 통해 토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경우 2모작 등 좀더 나은 소득원 개발이 기대되고 있다.  1백68명의 주민등록상 인구 가운데 90세 이상 노인만도 윤석성 이장의 할머니인 이봉선(92) 할머니를 비롯, 3명에 달하는 것을 비롯, 80세이상 노인수가 16명에 달하는 장수마을 중의 하나다.  전체 인구의 10%가 80세 이상인 이곳 마을의 비결은 천금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느 맑고 좋은 물이란다. 

83년, 84년에 연이어 범죄없는 마을에 선정되기도 한 효림리는 한 마을에 살면서는 20가구 이상이 부모님을 꼭 모시는 등 효심이 지극한 마을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94년 마을 공동목욕탕을 건축, 주민들이 유용하게 사용하는데 도움을 준 윤석인씨가 주민들의 칭찬을 받고 있으며, 윤여식(충북도청 근무)씨와 윤여석(의료보험조합 근무)씨 등이 대표적인 출향인이다.  윤석관 지도자와 윤우중씨는 대규모 담배경작농가로 무애무덕하지만 효심 지극한 효림리의 독농가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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