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면 판수리] 각성바지로 23개 성씨 구성하여 마을 형성
[청산면 판수리] 각성바지로 23개 성씨 구성하여 마을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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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7.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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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수리 전경

판수리는 청산면 소재지에서부터 찾아가려면 쉽게 갈 수 있는 마을이다. 면소재지에서 청산대교를 건너 영동쪽으로 향하는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도로변에 형성되어 있는 첫 마을이 판수리이기 때문이다.

모두 93가구가 살고 있는 판수리는 면소재지에서 얼마간 떨어진 마을치고는 꽤 큰 규모이다. 1914년 전까지는 판수리는 인정리에 속한 마을에 불과했었다. 청산현 동면 인정리였던 행정구역은 1914년 군.읍.면 통폐합에 따라 판수리와 인정리로 구분되었는데 옛 기록에는 65호가 인정리에 살았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판수리의 자연마을로는 음지말, 양지말, 불로동으로 나뉜다. 옛 마을 지명은 `대개'라고 했는데 이는 보청천으로 흐르는 긴 개울이 있다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전해지며 한자화되는 과정에서 이 개울을 따라 늪이 있다 해서 `널판'(板) `큰늪수'(數) 자를 써서 판수리가 되었다.

옛부터 전해지는 유래나 전설은 특별한 것이 없다. 다만 보청천변 둑의 대나무 많은 곳을 주민들은 '봉황대'라고 부르고 있는데 봉황새가 앉는 곳이라 해서 이 명칭이 붙여졌단다. 불로동, 부르실로 불리우는 마을에는 말무덤이 있다고 전해져 무덤과 같은 흔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에 관해 전해지는 유래는 없다.

이 마을의 형태상 가장 큰 특징은 마을 한가운데로 국도가 관통한다는 것. 인도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국도이기에 주민들은 항상 교통사고의 위험을 피부로 느끼며 살고 있다. 특히 목동 샘티로부터 판수리 쪽으로는 완만한 내리막길로 이루어져 통과차량들이 과속을 하기가 십상인데다 마을 앞 국도 구간이 커브로 되어 있어 더욱 사고위험을 가중시킨다는 주민들의 말이다.

올해만 해도 마을 앞에서 4건 이상 교통사고가 나서 안인숙 부녀회장이 다친 것을 비롯, 5명이 다쳤다. 주민들은 사고줄이기의 일환으로 현재 설치되어 있는 시내버스 승강장을 도로 반대편으로 옮겨 시야를 확보하는 방안이라도 강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주민들의 공통적인 숙원사항으로 대두되어 있는 교통사고 방지대책은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현재 마을에서 가장 큰 소득원을 들라면 역시 인삼이다. 인삼은 현재 20가구 이상의 농가에서 재배하고 있는 작물이며 13농가가 참여하고 있는 수박재배도 마을의 큰 소득원에 속한다. 주민들 중 새마을지도자를 맡고 있는 최충환씨는 마을에서 농사박사로 통한다. 청주농고를 나와 바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던 최씨는 특히 과채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 보통 5~6백만원의 농가평균소득을 올리던 당시부터 1천만원을 넘게 올리는 등 선진농가로 자리잡았다.

주민들은 봄만 되면 최씨에게 올해는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하느냐고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농약 치는 것에서부터 자질구레한 영농상담을 해온다. 104세로 군내 최장수 노인이었던 이 마을 윤산성 할머니는 지난해 마을주민들의 애도 속에 세상을 떠났고 현재 마을에서는 남한우씨의 어머니인 박흠금(93)씨가 최장수 노인이다.

이 마을의 성씨구성은 특이한 면이 있다. 옛날부터 각성바지로 살아왔던 이곳에는 현재 23개 성씨가 모여산다. 한때 26개 성씨까지 있었으나 지금은 줄어든 상태이다. 따라서 마을에는 손씨, 염씨, 우씨, 차씨, 정씨 등과 같이 1가구 1성을 이루는 집이 많다. 그 흔한 이씨도 2집 밖에는 없는 걸 보면 성씨 구성은 묘하게 되어 왔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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