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읍 동안리] 특별농공단지 위치, 주민기대 못미쳐
[옥천읍 동안리] 특별농공단지 위치, 주민기대 못미쳐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4.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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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안리 전경 사진

옥천읍 동안리를 보려면 관성산에 올라라.  동안리가 옥천읍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관성산에 올라가면 된다는 것이 주민들의 얘기. 

자신들의 마을이 옥천읍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기 위한 얘기일 수도 있으나 오히려 주민들은 중심에 있으면서도 여러 가지로 낙후되어 있는 현실을 항변하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

주민들의 얘기처럼 동안리는 행정지도상에 옥천읍의 중심지인 장야리의 바로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터무니없는 거짓이 아님을 보여준다. 주민들이 자신들의 마을인 동안리가 낙후되고 개발에서 소외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지리적으로 옥천읍의 중앙지점에 있으면서도 교통편 이용을 비롯해 주민들이 생활하는데 따른 불편이 많다는 것이 그 첫째 요인이다.

일단 주민들은 시내버스를 이용하려 해도 1km 남짓 마을 진입로를 따라 걸어나가 수북리행 옛 국도에까지 나가야 한다. 

" 김칫거리나 생필품을 사기 위해 옥천읍까지 나가봐요. 실제 물건을 사오는 돈보다 차비가 더 들어요. 잘못해서 버스를 놓치게 되면 택시비가 더 드는걸요." 

마침 장에 나가 물건을 사오던 아주머니 한 분이 분풀이 하듯 말을 쏟아놓고는 휑하니 지나갔다. 많은 농촌마을이 그렇듯 동안리에도 상점이 없다. 옥천읍의 한 구석을 이루는 마을치고는 너무 빈약하다 싶다.

이러한 무개발의 서러움을 떨어낼 수 있는 계기로 주민들은 89년 동안리 옥천특별농공단지의 입주를 꼽았다. 처음에 부푼 기대를 안고 입주를 환영했던 주민들은 많은 부분에서 자신들의 기대가 허망하게 깨져나가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농공단지가 동안리에 입주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마을의 자랑으로 느끼는 주민은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많은 옥천군민들이 그랬듯이 동안리 사람들도 해태산업과 함께 쌍방울의 입주가 주민들의 농외소득을 더욱 높여줄 여건이라 생각했으나 결국은 무산되고 말았다.  입주 당시 농공단지 뒷편으로 후문을 개설, 주민들이 이용하기에 불편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주민들이 이의를 제기하자 농공단지 측에서는 농공단지 뒷편 울타리로 쪽문을 내주었다. 그러나 이 역시 외지인의 땅을 밟고 다니도록 후문이 개설되는 바람에 땅주인이 사용료를 요구하거나 반환을 요구할 경우 무용지물이 될 우려를 안고 있다.

본래 자전거나 리어카 등을 끌고도 왕래할 수 있도록 후문을 만들어 주겠다고 한 약속이 농공단지 입주업체가 입주한 몇 년 후에야 그것도 제대로 완전한 이용이 되지 못하게 만든 상황으로 바뀐 것에 대해 주민들은 배신감으로 느끼고 있다.  '농공단지를 별도의 행정구역으로 관리하도록 해달라'라는 말이 주민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나올 정도로 농공단지에 대한 주민들의 감정은 악화되어 있다.

또한 새벽녘으로 단지내 회사에서 태우는 쓰레기 악취는 물론 단지 울타리에 켜놓은 보안등으로 인한 인근 농작물의 웃자람 피해, 농경지와 농공단지 석축과의 높이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일조량 부족문제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는 부분이다. 

동안리에는 63가구가 거주한다. 옛날보다 가구수는 많이 늘어난 편으로 79년 대청댐이 수몰되면서 15가구의 수몰민이 동안리에 들어와 마을이 커졌다. 농공단지 조성공사 당시 기와장과 주춧돌 등이 많이 나왔다는 것으로 보아 그곳이 옛 마을터 였다는 것.

옛부터 '관아의 동쪽 언덕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동안리라고 했다는 이곳 지명을 뒷받침해주는 요인으로 마을 주민들은 언덕에 둘러싸인 분지인 '도가지'처럼 마을이 생겨 동안리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말하고 있다.  농경지가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주민들의 대부분 수입은 직장생활을 통해 얻어진다. 한낮에 동안리에 들어갔다가 마을이 텅빈 것처럼 사람들을 제대로 만날 수 없는 것은 이같은 요인에서이다.

마을형성은 맨처음 여흥민씨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얘기가 전하고 있으나 실제 마을주민들 중 '본토박이'는 3분의 1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18가구 정도가 농사를 짓고 있는 농가들로 소농이 대부분이며 먹을 양식만 짓는 벼농사가 주요작물이다.  후계자인 김영구씨가 30여두의 소를 키우는 한우를 사육하고 있으며 이곳이 고향으로 옥천축협 조합장을 지낸 서학규씨가 100여마리의 오소리를 키우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한 일이다.

동안리를 통해서는 옥천읍 매화리-동이면 평산리-이원으로 향하는 직통로가 옛부터 큰 길로 알려져 있다.  마을 구석구석에는 '쇠소기재'라 하여 말을 매달았다는 장소나 '서낭당터'등 과거를 보러 이곳을 거쳤던 선비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죽향초교에 다니는 매화리 어린이들이 넘어다니던 길도 이 길이었다. 

땅이 척박해 '녹두밭 욱머리'라고 불렸고 옥천읍에서는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다는 동안리 주민들은 도시계획에 나와 있는 대로 도로가 개설되어 나름대로 마을 발전의 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숙원이다.  현직 공무원들 중 이재하(공보계장)씨, 심종섭(지적과)씨, 김영수(산림과)씨 등이 이곳에 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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