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읍 교동리] 육여사 생가, 지용생가 이웃해 문화공원 조성 최적지
[옥천읍 교동리] 육여사 생가, 지용생가 이웃해 문화공원 조성 최적지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4.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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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동리 전경 사진

교동과 섭바탱이로 나뉘어 이루어진 마을이 옥천읍 교동리이다. 37번 국도를 따라서는 옥천읍의 가장 끝마을을 이루고 있는 교동리는 구읍지역 6개 리단위 마을 중 면적이 가장 넓다.  대청호 쪽으로는 군북면 보오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구읍 저수지를 낀 1개 마을로서는 꽤 면적에 103가구의 주민들이 화합하며 살아간다. 

일단 교동리는 향교를 내세우지 않고는 얘기가 안되는 마을이다. 또 하나 있다. 육영수 여사와 생가, 그리고 육인수 전 의원 등. 교동리를 특징 짓는 몇가지 특성 중 주요 부문을 차지하고 있는 이러한 사항은 먼저 교동리에 향교가 위치함으로써 시작되었다.  81년 12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97호로 지정된 옥천향교는 1398년 조선 태조 7년에 창건한 뒤 임진왜란 당시 불탔던 것을 다시 세운 것이다. 

옥천향교의 건물 배치는 성균관의 축소판 식으로 명륜당이 맨 앞에 있고 서쪽에 서재와 동편에 고직사가 있으며 삼문(三門)을 통해 들어가면 양 옆에 동서무가 있다. 교육시설과 제사를 드리는 문묘를 갖추고 있는 향교는 600년 역사를 지닌 채 해마다 춘계, 추계 석전대제가 봉행돼 유림들의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다.  향교는 속리산에서 이어진 마성산 기슭에 세워진 명당 자리로 불리우고 있으며 명륜당 앞에 하마비와 홍살문이 위치, 향교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향교 옆에는 3공화국의 대통령 부인으로, 그리고 옥천의 인물인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위치해 있다. 비록 지금의 생가는 곳곳이 무너져 내려 흉가같이 방치되어 있지만 군민들의 여론을 쫓아 생가를 복원하자는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도 육씨 문중에서 활발한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권력이 막강하던 시절, 육여사의 생가는 이런 저런 소문이 겹쳐 이곳을 지나는 이들의 단골 관광코스가 되다시피 했다.

생가를 방문해 기원하면 득남할 수 있다는 소문 때문에도 찾는 이가 많았던 생가는 요즘도 예전같지는 않지만 종종 보러오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이와 관련해 이 마을 노인회장이자 생가 관리인인 육남수(69)씨는 마을에 살면서 생가를 20여년 관리해온 산 증인으로 하루빨리 생가가 복원돼 군민들의 관광휴식처로 조성되길 바라고 있다.

흉가처럼 변해 버린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처럼 되어 있는 생가. 평상시에는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있지만 주민들의 숙원대로 생가가 복원되는 날부터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대문을 활짝 열고 일반 관광객들을 맞을 날이 있으리라.  향교가 있음으로 해서 향교리라 했던 마을. 주민들은 비록 옥천읍 지역이긴 하나 90%이상이 농업에 종사한다.

섭바탱이 마을 김달성, 박옥정, 박영래씨 등 마을 원로들이 20여년전 재배를 시작한 포도는 마을 주민들을 살찌우게 했다.  현재 10여가구가 포도를 재배하고 있어 교동 마을의 벼농사 중심 농업과는 비교된다. 마을에서는 조용길 이장 등 4가구가 30두 이상의 한우를 사육하는 축가에 속한다.  교동의 대부분은 농사를 짓는다.

벼농사이기에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은 섭바탱이 보다는 떨어지는게 사실. 최근들어 교동저수지와 37호 국도를 끼고 교동리에도 가든이 많이 생겼다.  장군가든 등 6개 업소가 현재 영업하고 있는데 관광도로변이라 지나던 차량들이 자주 발길을 멈춘다.  마을 복지시설에 관한 한 섭바탱이는 회관이 없어 숙원으로 대두되었으나 올해 김동신 새마을지도자가 자신의 땅 40평을 희사하고 군으로부터 보조를 받는 한편 주민들의 힘을 보태 작으나마 회관을 마련했다.

부지를 희사한 김동신 지도자에게 주민들은 준공식 때 감사패를 전달할 예정이란다.  현재 마을 주민들로서는 생가복원 문제 외의 두가지 큰 숙원을 갖고 있다. 그 한가지가 옛부터 마을 동유리었던 33정보의 임야에 대한 소유권을 넘겨받는 일.  마을 재산이지만 육종관, 강명을, 정완영씨 등 3명의 명의로 등기를 낸 이후 종합토지세가 부과돼 92년 이후, 매년 96만원, 159만원, 223만원의 세금을 주민들이 납부해온 사실에서도 인정되듯 마을 소유가 분명하나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아 숙원으로 남겨져 있다. 

지금까지는 여러가지로 얽힌 문제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으나 주민들은 마을 공동소유로 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또 하나는 79년 당시 취락구조개선 사업을 행한 후 육인수 전 의원의 대지에 주택을 지은 18가구의 주민들이 육 전의원 명의의 대지를 이왕이면 개개인에게 저렴하게 불하되었으며 하는 염원.  이 두가지 숙원에 대해 주민들은 좋은 해결방안이 도출될 것을 호소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이범용씨, 유영설씨, 이남기씨, 전종식씨, 서명옥씨, 조보연씨 등이 주민들에게 인정받고 있으며 조경호(서예가, 벽해서실 운영)씨는 현재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옥천읍에는 조성재(중원설비 대표)씨와 조한영(한영설비 대표)씨가 이 마을 출신이며 서정국(국제종합기계)씨, 임성호(충남 도경찰청)씨, 한봉수(대전경찰서)씨, 김용봉(옥천읍사무소 근무)씨 등이 알려진 출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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