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면 덕곡리] 막걸리 마시는 소나무가 명물, 충북도 최고의 범죄없는 마을 이뤄
[청산면 덕곡리] 막걸리 마시는 소나무가 명물, 충북도 최고의 범죄없는 마을 이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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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6.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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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곡리 전경

청산면 한곡리 문바위골로 향하는 길로 들어선 후 오른쪽으로 불과 10m 길이도 되지 않을 작은 다리를 지나 언덕을 올라서도 덕곡리라는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내려가 왼쪽으로 눈을 돌리니 마을의 윤곽이 들어온다.

마을로 들어서며 인상깊게 보이는 것 하나. 마을 진입로 오른쪽 옆에 세 갈래로 뻗은 소나무 한 그루이다. '동서남북'이란 별명이 붙은 이 소나무는 본래 나무는 한 나무이지만 가지가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네 방향으로 뻗어 있었단다. 그렇게만 보존되어 있었다면 더없는 명물이 되었을 터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어느 누군가에 의해 애꿎은 가지 하나가 잘려 팔을 하나 잃은 꼴이 되고 말았지만 여전히 주민들로부터 사랑받고 한창 더울 때는 들녘 한가운데 휴식처 역할도 톡톡히 한다.  정확한 나무의 수령은 모르나 일부 주민들은 3백여년 되었을 것이라고 하고 일부에서는 2백년 안쪽이라고도 얘기한다.

다만 이 소나무가 주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더욱 잘 알 수 있는 것은 1년이면 3~4말의 막걸리를 이 소나무가 마시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과 같이 막걸리를 마시며 사는 나무, 막걸리의 영양분이 이 소나무의 잎파리를 더욱 새파랗게 해주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덕곡리는 더할 나위없이 평온하다. 마을 뒤로 어등봉(漁騰峰)이라는 산이 있고 그 산을 정점으로 마을 뒤로 용혈이 흘러 좌청룡 우백호의 지형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노인들의 자랑.  바깥에서 보기에는 마을이 있는지조차 잘 모르는 상황이 된다는 것인데 어등봉은 옛부터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용이 올라갔다는 산에 호랑이굴이 있으니 일단 구색은 갖추어진 셈이다.

하지만 마을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범죄없는 마을과의 인연 때문이다. '청산면 덕곡리' 하면 범죄없는 마을을 떠올리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얘기가 아니다.  올해 덕곡리는 6연속 범죄없는 마을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충북도내에선 올해 현재 가장 많은 연속 수상기록이다.  지난해까지 10년 연속 수상했던 마을이 탈락했기 때문에 안게 된 영광이다. 6년 연속이지만 범죄없는 마을로 선정된 것은 올해로 9번째.

이 마을에서는 연속 6년을 비롯해 9년 동안 각종 사고와 사건, 주민들간 싸움에 의한 고소 등 하다못해 예비군 훈련이나 민방위 불참도 없었다. 작은 사건 하나라도 범죄없는 마을로 선정되는 데에는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20호 50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일치단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조금 언짢은 일이 생겨도 큰 일로 번지기 전에 중재에 나섰고 서로 이해하는 속에 그렇게 지냈다.

그 덕분에 지금은 온 마을 주민들이 모두 한 집안, 친척들 같이 지낸다. 요즘같은 농사철이야 어쩔 수 없지만 겨울만 되면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과 저녁까지 해결하는 주민들이 태반이다.  지난해만 해도 마을회관에서 이들 주민들이 먹은 양식만 해도 보리쌀이 한 가마에, 쌀이 두 가마였단다. 거의 공동생활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이렇듯 아홉번이나 범죄없는 마을이 가능했던 이면에는 이 마을 고유의 성씨 구성에서도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이 마을에서 가장 먼저 터를 잡은 성씨는 태안박씨이다. 박진선 노인회장의 11대조인 박기남 공이 이 마을에 터를 잡은 후 밖씨 문중은 약 4백년 가까이를 살았고 지금도 6집이 살고 있다.

현재 11가구가 살고 있는 구례장씨도 이 마을에서 산 지 2백년이 넘었다. 박씨, 장씨 외의 성씨는 김씨 1집과 민씨 2집 뿐이다. 4개 성씨 만이 이 마을 주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덕곡리는 범죄없는 마을로 선정되면서 규모 작은 마을로서의 한을 여러가지 풀었다. 두드러지게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각종 주민숙원사업의 해결이다.

마을 진입로 포장에 마을회관 건립, 안길 포장, 공동 빨래터 조성 등의 크고 작은 숙원을 범죄없는 마을로 선정된 지원금으로 마련한 것이다.  60세 이상의 주민들이 18명에 달하지만 논밭 포함해서 평균 3천5백평의 비교적 넓은 경지 규모를 가지고 있다. 12년전부터 재배해온 인삼이 가장 소득높은 작목으로 꼽히고 있으며 그외로 고추농사와 벼농사가 대부분이다.

특히 노령화가 많이 진행된 요즘 마을에는 소득을 올린다기보다 먹을 것과 도회지에 사는 자식들에게 주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 되어 버렸다.  현재 마을에 남아 있는 인원으로는 애경사를 당해도 치러낼 수 없는 형편이지만 출향인과의 연계를 위한 상여계 조직이 활성화되어 있다.

출향인 모임으로는 서울에 거주하는 출향인들로 이루어진 너구리회(회장 장재주)를 비롯한 여러 모임이 있다.  처서였던 지난 23일 주민들은 기자가 방문한다는 구실로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을 함께 해결했다. 오랜만에 별미인 보리밥을 한 그릇 해치우고 돌아오는 길, 주민들의 온정에 새삼 고마움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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