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읍 상계리] 옥주사마소 전통과 주민의 화합이 돋보이는 마을
[옥천읍 상계리] 옥주사마소 전통과 주민의 화합이 돋보이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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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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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계리 전경 사진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이야기 지줄대는 /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 뭇사람들이 고향에 대한 향수를 문득 생각하게 만드는 정지용 시인의 아름다운 시 중에서도 유독 가슴에 와닿는 '실개천'이란 낱말은 옥천읍 상계리(上桂里)가 있기 때문에 더욱 빛난다.

구읍의 교동저수지가 없었던 당시, 정지용 시인이 보았던 실개천을 지금은 상상해볼 수 없지만 시인이 '향수'에서 표현했던 실개천의 모양을 가만히 읊조려 보노라면 아름다운 조경이 머리속에 펼쳐진다. 그런 아름다운 정경이 그려지는 곳이 바로 상계리이다.

마성산 기슭이 교동 저수지 바로 아래쪽에 위치한 마을. 이 마을에는 모두 77가구, 321명의 주민들이 산다.  옥천읍의 마을 규모 치고는 비교적 작지만 옛부터 전통있는 마을로 알려진 마을이다. 기록에 따르면 읍내면 향청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1739년에는 77호, 1890년 기록에는 97호가 살았다고 전하며 고려 때부터 1919년까지 군의 관청이 위치했던 곳이다.

향청리란 지명은 1910년 이후 행정구역 개편시 군내면 상계리와 하계리로 분리되었고 오늘날의 마을 지명으로 이어져왔다. 상계와 하계로 불리기 이전의 본래 지명은 마을 한가운데 세그루의 큰 나무가 있다 하여 상괴(上槐), 하괴(下槐)라고 했으나 이름이 좋지 않다는 말에 따라 계수나무계(桂) 자를 썼다고 전해진다.  관아가 있었던 만큼이나 상계리에 보존, 관리되고 있는 '옥주사마소'는 마을의 전통을 더욱 빛나게 한다.

조선시대 중기에서부터 사마시(진사와 생원을 뽑는 과거시험)에 합격한 지방의 생원과 진사들이 조직한 사마소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57호로 관리되고 있으며, 우리 고장 유생들의 전통이 뿌리  깊다는 점을 잘 알려주고 있다.  옥주라 함은 옥천군을 고려 충선왕때 (1313)부터 조선 태종 13년(1413)까지 옥주로 불러왔기 때문이며, 지금도 후손들과 유림들이 1년에 두차례씩 모여 사마계를 운영하고 있다.

1658년 우암 송시열 선생의 친필로 기록한 사마안에는 백촌 김문기 선생으로부터 165명의 명단이 기록되어 이 사마소를 중심으로 역대 유명한 인물들이 활발하게 활동했음을 증명해준다.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74년에 중수한 사실을 우암 선생이 남긴 중수기(重修記)로 알 수 있다.  실개천이 마을의 한가운데로 흐르고 있는 정경은 영낙없이 '향수'에서 노래하는 '휘돌아 나가고'라는 구절과 딱 맞아 떨어진다.

마을은 주로 주택지로만 이루어져 면적이라야 겨우 1만여평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주민들의 말이다.  농업에 종사하는 농가가 대략 44호 가량에 달하고 있지만 전업적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경우는 많이 잡아야 30호 가량이다. 농사를 짓고 있다 해도 직장을 다니는 겸업농이 많아 농외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 벼농사 위주의 식량농업이 대부분이며 기타 포도와 복숭아 등의 과수 일부와 참깨, 고추 등 일반적인 밭작물이 재배된다.

마을 면적이 대부분 주택지인 관계로 이들의 농경지는 문정들에 있다.  도심의 확대와 함께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줄고 있는 전형적인 마을에 속한다. 마을 면적이 좁고 주택이 밀집 되어 있다 보니 사실 소방도로를 낼 공간이 없었다.  지금까지 방역 차량이 제대로 들어와 본 적이 없으며 화장실 청소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은 주민들이다.

석유 넣기도 힘든 곳이라는 주민들의 불평이 극에 달한 요즘 다행히 올해 청석교를 공사 시점으로 해서 실개천 양쪽으로 200m의 소방도로 개설이 착수될 예정이다.  현재 대부분의 토지주에 대한 토지사용 승낙을 받은 상태로 올해는 일부 주민숙원이 해결되는 역사적인 해로 기록될 것이다. 

마을 주민들의 숙원사업은 이외에 또 있다. 현재 경로당으로 사용하는 회관이 너무 낡아 재건축이 시급하나 육영수 여사의 부친인 육종관씨 명의로 되어있어 주민들이 어쩌지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8평 가량의 건물을 다시 건축해 할머니방까지 포함한 근사한 회관을 짓고 싶은 것이 주민들의 꿈이다.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부지를 희사받아야 하는 어려운 문제가 남아있다. 

실개천이 방치되어 있다가 생가터로 옮겨진 옛 청석교 돌은 옛날 황장군이라는 장군이 고리산에서 들고 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60년대 대전에 주둔하던 3관구 사령부에서 시멘트 50포대와 바꾸자고 했으나 주민들이 반대해 보존하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구읍지역 뜻있는 주민들의 자생체인 실개천 지용회에는 이 마을에 정순임 회장, 송명석 총무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가입해 있으며 이들은 실개천 정비사업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행정동우회 김창식 회장, 정년퇴임 교장인 송재호, 장재달씨와 안남초교 노한성 교장이 이곳에 산다. 송재호씨 부인 윤소숙씨는 효부로, 구문섭(에덴슈퍼 대표)씨는 효자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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