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면 신매리] 경로사상 가슴에 품고 사는 마을
[청산면 신매리] 경로사상 가슴에 품고 사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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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3.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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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매리 전경

설을 앞둔 신매리 젊은이들의 손길들이 바쁘기만 하다. 이 마을에서 매년 되풀이되어 치러지고 있는 마을어른 모시기준비에 바쁜 까닭이다. 

근대화와 함께 우리의 미풍양속이 변해버린 것은 도시, 농촌 할 것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비록 아직까지 농촌이 옛 전통을 조금 더 간직하고 있다고는 하나 집집마다 찾아뵈며 어른들께 올렸던 세배의 모습은 웬만해서 찾아보기 힘든 정경이 된 것은 사실.

이런 세태 속에서도 신매리 마을 사람들의 '어른 모시기'는 더욱 빛이 난다. 집집마다 도는 세배는 못할지라도 음력세밑, 한자리에 어른들을 모셔놓고 기름진 음식을 준비, 대접해드리는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것.

그래서 만나는 마을주민들마다 자신들의 '경로사상'을 뿌듯하게 여기는 한편 노인들은 이를 가장 큰 자랑거리로 내세울 수 있는 것 같다.  주민들의 경로사상은 비단 마을 내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마을을 떠나 외지에서 살고 있는 많은 출향인들의 경우에도 고향에 오게되면 가장 먼저 경로당을 방문, 전통적인 어른 섬기기를 확인하곤 한다.

서울에 거주하는 박범수씨를 비롯, 김명수(천안 거주)씨, 김상복(서울 거주)씨, 김덕중,경중(서울 거주)씨, 곽상철(청주 거주)씨, 박상은(대구 거주)씨, 김학철(대전 거주)씨, 손대식씨 등의 출향인들이 내부모 모시듯 겨울이면 경로당에 유류를 지원하는 등 정성을 다해 남아 있는 마을주민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해준다.

취재차 들렀던 8일에도 부녀회원들이 마련한 칼국수가 경로당에 배달(?)되어 따끈함을 더해주었다는 한 노인회원의 귀띔이 있었다. 경로당이 마을을 들어서는 관문에 위치한 것도 주민들의 경로심을 높이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는 설명이고 보면 89년 건립, 두 칸의 방 가운데 한 칸은 할아버지, 한 칸은 할머니들이 각각 사용하는 경로당은 이 마을 노인들을 항상 따뜻하게 지켜주는 보금자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듯 '마을어른 모시기'분위기가 주민들 사이에 뿌리내리자 노인들 또한 후손들에게 모범을 보인다는 생각에서 조를 편성, 스스로 경로당 청소에 앞장서 명실공히 상하간 맡은 바 제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득산, 신평, 자매, 학촌, 모단 등 5개 자연마을에 52가구 2백10여명이 화합하며 살고 있는 이 마을은 신평의 '신'자와 자매의 '매'자가 합성되어 '신매'가 되었다고. 넓은 들과 마을 앞에는 보청천이 흘러 농사에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 그러나 주민들은 이제까지 해왔던 벼농사 위주의 농사가 더 이상 농촌 소득원이 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특용작물의 개발이 급선무로 떠오르고 있다.

주요 소득작물로는 인삼(15가구 경작)과 담배(10여 가구)를 들 수 있는데 인근인 청성면 산계리에 시설포도 연구소가 들어선 이점을 살리려는 탓인지 3∼4명의 젊은이들이 포도재배를 시작했다.  포도 외에 수박.오이 등의 원예작물도 시도되고 있다. 이들의 성공여부에 따라 마을 전체 소득원으로 확산될 기미를 보이고 있는 한편, 마을 지도급 인사들은 노령화로 인해 소득작목 입식이 어렵다는 점이 가장 난제로 부각되고 있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소득작목을 개발하는 데에 어려움으로 교통여건이 나쁜 점도 한 몫 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곳 신매리가 보청천 변으로 옛 선사시대에는 강이 흘렀다 하며 그 증거로 돌칼을 비롯한 선사유적과 함께 신라.백제의 접경지였음을 확인해주는 토기 등이 자주 출토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중 김옥성(64)씨가 발굴해 청산초교에 기증한 삼국시대 토기 등의 유물은 대표적인 예로 꼽히고 있다.

현재 거주하는 52가구 가운데는 태안박씨, 광산김씨, 경주김씨 등 3 성씨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는 각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중 지난해 사법고시에 합격한 김찬중(중앙대 졸업)씨는 이곳 농어민후계자인 김시형씨의 할아버지인 김한주 열사가 청산면 3.1만세운동을 주도한 중심인물이라는데 큰 자긍심을 갖고 있다.

물론 이들 주민들에게도 숙원은 있다. 보은버스에서 하루 세 번 운행하고 있는 시내버스 운행을 한 번이라도 더 늘려달라는 것.  "그리구 지방자치시대인데 왜 보은버스여. 기왕이면 옥천버스가 다녔으면 더 좋겠고." 하는데서 주민들의 일단의 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고향을 떠난 이들 가운데 곽구연씨가 군청에서 건설과 관리계장을 맡고 있는 것을 비롯, 김상열씨가 충북도에, 김상랑씨는 국세청에, 김상복씨는 서울 서초경찰서에, 김번성씨가 토지개발공사에 근무하고 있는 출향인들이다.  신매리 주민들은 오늘도 우스개 소리마냥 말한다.  "우리는 자질구레한 일로 면소재지까지 않나가."

보건진료소를 비롯해 약방이 있어 주민건강을 돌봐주고 있고 이발소에다 경운기 수리센터까지 리단위로는 드물게 갖추어져 있어 실기가 좋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8월이면 마을 저수지에 그득하게 피어 올라오는 연꽃의 아름다움이 도시 같으면 뭇 연인들의 발길을 끄는 장소로 이용되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고향, 신매리의 정경이 어느새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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