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면 백운리] 수백마리 백학이 석양빛 받으며 내려앉는 '백운귀학'의 절경 간직
[청산면 백운리] 수백마리 백학이 석양빛 받으며 내려앉는 '백운귀학'의 절경 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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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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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운리 전경

"그분은 정말로 마을의 보물입니다. 어디 마을 뿐이겠습니까? 청산면내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어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예요." 

백운리에는 주민들이 면내에서 자랑할 만한 '보물'이 분명 있다.  '페스탈로치'라고 불릴 만큼 교사 생활 당시에도 청렴했던 사람. 지난 93년 8월 청산초교를 정년퇴직한 후 날이면 날마다 아침이면 백운천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게 주민들의 얘기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비옷을 입고, 눈이 오면 눈이 오는대로 눈을 맞으며 쓰레기를 줍고 청소해오기를 이제 2년이 넘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구시우(67)씨에게 서슴치 않고 '청산의 보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청산의 보물을 보유하고 있는 백운리 주민들은 몇몇 마을 일꾼을 갖고 있는 점을 큰 자랑거리로 느끼고 있다.  그 일꾼은 바로 임창규(62)씨와 새마을지도자 유선회(40)씨다. 임창규씨는 지난 92년 주민들의 숙원이었던 마을회관 건립 당시 기금 마련을 위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주소 하나만을 들고 찾아다니며 출향인들의 관심을 이끌어낸 마을회관 건립을 이끌어낸 공로자로 꼽힌다.

지도자이면서 마을 청년회 주요 구성원인 유선회(청산현대경리학원 운영)씨는 '약방의 감초'이다. 마을내는 물론 청성면내의 애경사 일이 있는 곳에서는 팔뚝 걷어 부치고 앞장서 일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은 주민들뿐만 아니라 면내 주민들도 한결같은 목소리로 하는 얘기다.  "우리 마을에서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는 주민들의 얘기는 마을을 이끄는 일꾼들의 얘기가 나오는 대목에 가서야  '참! 백운리 일꾼들은 자랑할 만 하다.'라는 소리로 변한다.

백운리 자랑은 물론 몇몇 사람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1백65가구 5백19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백운리는 면내에서도 소재지 중심지인 지전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이면서도 기존의 조직된 마을 청장년회(회장 김금환), 부녀회(회장 신복순), 노인회(회장 이원봉) 등 조직들이 활성화 돼 제각각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살아 있는 마을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점이 가장 크게 눈에 띄는 점이다.

청장년회는 젊은이들이 줄어들면서 55세의 주민 50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로 마을의 애경사를 도맡아 처리한다. 애경사를 통해 모아지는 기금으로는 노인들의 경로잔치나 효도관광을 위해 돈을 쓰고 있는데 젊은이의 수가 줄어 청년회가 아예 없어진 마을이 대부분인 현실을 감안하면 백운리 만큼은 특별한 예에 속한다.

부녀회는 올해 새로 조직을 정비, 마을 일을 적극 거들면서 기금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 올해부터는 일을 도와준 후 개인적으로 받던 작은 선물 대신 마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동 물품을 기증받아 일을 치르는 주민들의 부담을 적게 했다.  부녀회는 특히 그동안에도 마을내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앞장서 왔을 뿐만 아니라 12월부터는 한글을 모르는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한글 익히기 교실도 개설하고 있다.  노인회 또한 빠지지 않는다. 그동안에도 '짚신 만들기', '상주용 지팡이 만들기' 등의 농한기 소일거리를 찾아 일을 해 기금을 조성했던 노인회도 마을을 활기차게 움직여 나가고 있다.

백운리(白雲里)로 부르게 된 것은 1460년께 조선 세조 때 청산현감이 마을의 경치가 좋은 점을 이용, 동헌 위쪽에 정자를 짓고 당대의 문장가인 김수온에게 정자 이름을 지어달라고 한 바 '백운정'이라고 이름지은 데서 유래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백운리의 절경은 백운리 뒷산인 덕의산에 수백마리의 백학(白鶴)이 무리를 지어 석양빛을 받으며 내려 앉는 장관을 '백운귀학(白雲歸鶴)'이라 하여 '청산팔경' 중 제2경으로 노래한 옛 사람들의 정취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본래 고씨와 박씨가 일찍부터 자리잡아온 터전으로 '고백이'라고 불렀던 백운리는 청산면 소재지를 감싸안은 덕의산과 도덕봉 사이로 들어 앉은 천혜의 집자리이다.  옛부터 덕의산, 도덕봉을 넘는 큰재, 작은재가 있어 각각 보은과 만월리로 통하는 통로 역할을 했으며, 덕의산 중턱쯤에는 '배골재'라고 하는 지명과 함께 배를 잡아매어 놓은 듯한 바위가 있어 전설 한 토막을 전하고 있다.

'배맨 바위'라는 이 바위는 그 옛날 대홍수로 인해 온 천지가 물에 잠겼을 당시 배를 붙들어 맸다는 곳이다.  주민들 중 90호 가량은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이다. 70여호가 비농가이며 현재 포도재배가 20호로 가장 많다. 포도작목반(회장 김수일)이 구성되어 있으며 기타로는 벼농사를 비롯한 고추 등 일반적인 농사이다.  마을내에는 교육기관으로 청산중,고교가 위치해 있으며 천주교 청산본당(신부 박용근)과 백운사(주지 황법명)등 종교기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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