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역에 내린 정지용, 고향집에 가다
옥천역에 내린 정지용, 고향집에 가다
시인의 고향집 가는 길에 옥천 근대문화역사 흔적 확인 탐방

옛 우체국, 경찰서, 읍사무소, 교량, 신사참배 터 들러 지용 생가로

고향집 가는길 동행한 도호쿠대학 가타오카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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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70.01.0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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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1회 지용제' 기념 정지용 고향집 가는 길

매달 셋째 주 '정수병과 함께 걷는 금강여울길'을 걷습니다. 우리는 여울이 닿은 마을을 지나며 우리 선조들이 일구어놓은 풀뿌리 문화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5월 여울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지용제와 열리는 주말 진행되는 터라, 지난해에 이어 정지용 시인의 흔적을 따라가는 길을 걸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우리는 5월12일 제31회 지용제가 개막한 셋째 날 그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시인이 청년 시절 걸었던 길을 따라 가노라니 옥천의 근현대 역사문화 흔적이 보였습니다. 옥천읍 금구리 오성택, 삼양리 이태기 어르신께 들은 증언을 토대로 청년 정지용이 걸었던 과거 옥천읍의 일부를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정지용이 걸었던 길을 따라 아침부터 때로는 거셌고, 때로는 부슬부슬 비가 내렸습니다. 내리는 비를 뚫고 그 흔적을 새겨가며 천천히 고향집을 향했습니다.



■ 작은제목

비가 온다. 하필 정지용의 발자취를 따라 걷기로 한 날에 이렇게 비가 오다니.

비가 오는 데도 옥천역에는 여울길 탐방객들이 모여들었다.

정지용 고향집 가는 길이 지용제 행사의 하나로 진행하는 것이기에 김영만 군수가 일찍부터 나서서 일행들에게 인사를 한다. 김영만 군수의 인사가 우리가 걷는 길이 지용제 행사의 하나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운다.

옥천역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역 광장 가운데에 세워져 있는 정지용 시비를 볼 수 있다. 왜 '정지용 고향집 가는 길'을 기획했는지 설명하고는 동행한 정지용 시인 연구가 김묘순(옥천문인협회 전 회장) 수필가가 정지용 시인을 소개한다.

"정지용 시인은 휘문고등학교에 다닐 때 그의 첫 작품이라고 할 소설인 '삼인'을 쓰게 됩니다. 삼인은 정지용의 자전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인에 나오는 인물은 최, 이, 조 이 세 사람이죠. 이 중 조라는 사람이 정지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이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옥천역에 도착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들 가족이다, 하인이다 해서 마중을 나와 있는데 조는 혼자밖에 없죠. 그런데 집으로 가는 길에 여동생 경희가 마중을 나오고 오빠에게서 가방을 받아 걷다가 무거워서 다시 오빠에게 주기도 하는 등 정겨운 풍경을 그립니다. 옥천의 부잣집인 최의 집에서는 마침 그의 형 생일잔치를 성대하게 열고 신세한탄도 하면서 셋은 복숭아를 따서 식물채집을 가는 내용입니다."

정지용 시인이 태어난 지 100주년을 맞은 2002년 새해를 맞아 1월2일 옥천역 앞에 세워진 정지용 시비에는 '고향'과 '할아버지'가 새겨졌다. 누구든 옥천역에 내린 사람이라면 지용 시비를 마주할 수 있다.

오늘 일행 중 반가운 손님들이 보인다. 일본에서 지용제를 찾아온 사람들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쓰나미로 인해 폐허가 되었던 일본 동북지역의 대학인 도후쿠대학(동북대학) 가타오카류 교수와 그 일행이다. 역시 정지용 시인 연구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김영미씨와의 인연으로 옥천을 찾은 사람들이다. 반갑고 진지하다.

옥천역에서 길을 건너자마자 현재의 우체국이 있다. 그 건너편은 옛 경찰서 터였다. 옛 우체국 터는 지금의 박덕흠 국회의원 사무실이 있는 건물이었다. 그 터를 지나 옥천읍내로 들어서려면 건너야 하는 금구천. 금구천을 건너려면 옥천교를 건너는데, 본래 1917년에 건설했다. 옥천읍 시내 하천을 잇는 또 하나의 다리 삼금교는 1926년에 세운 다리다. 옥천교는 옛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삼금교는 1926년에 건설했다는 연대 표기가 교명석에 남아 있다. 삼금교라는 다리 이름을 쓴 교명석은 언젠가 없어진 후 찾지 못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옥천 최초의 병원인 삼산의원(현 국민은행 자리)과 옛 옥천읍사무소(옛 대가식당, 현 공영주차장) 터와 옥천여중 자리에 이르러 연못이었던 설명과 천주교 성당 자리에 있던 일본 신사도 빼놓을 수 없는 흔적이다.

옛 읍사무소 터에서 충북도립대 학생들과 합류하는 바람에 탐방 인원이 훨씬 많아졌다.

이윽고 청년 정지용은 그의 모교인 죽향초등학교를 거쳐 그가 태어난 생가에 도착한다. 그리고는 시인 정지용을 기리는 지용제 행사장에서 여장을 풀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있는 근대역사문화가 읍내 거리에 널려 있다. 정지용 역시 그 흔적들을 보면서 집으로 걸었을 것이다.

이안재 ajlee@o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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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문학축제, 그것도 시인의 축제가 열린다고 해서 참여하게 됐다. 일본에서는 이런 사례가 거의 없다. 옥천에 두 번째로 왔는데 지용제는 이번에 처음 참여했다. 작년 8월 김영미씨가 지용제를 알려주었다.

오늘 길을 걷게 된 것은, 옥천이란 지역을 알아야 정지용을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맨 처음 옥천역에서 출발해, 다리를 건넜는데 그것이 근대에 건축되었다는 설명을 들을 때 와 닿았다. 더불어 건물들이 지닌 역사를 듣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옥천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는다는 사실이 가장 좋았다. 우산도 빌려주시고, 우비와 간식도 나눠주셔서 가족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어제 사실 늦게 잠을 자서, 오늘 오전에 걷는 게 무리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전혀 긴 시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정지용의 '향수'를 좋아하는데, 구읍의 좁은 골목길을 걸으면서 '향수' 작품에 나오는 정서를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살았던 일본 시골동네의 옛 풍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센다이라는 마을인데, 2011년 쓰나미로 떠내려간 마을이다. '그곳이 참아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시 속 구절과 함께 그 동네에 대한 향수가 샘솟았다.

지용제라는 축제는 일상과는 또 다른 영감을 만나게 하는 공간인 것 같다. 시라는 분야 자체가 운율에서 음악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음악과도 충분히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젯밤(5월11일)에 보았던 뮤직페스티벌이 좋았던 이유다. 지용제 안에서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가 계속해서 파생되었으면 좋겠다. 일본에 돌아가서도, 문학을 테마로 한 축제를 언젠가 꼭 만들고 싶은 마음이다.

<월간옥이네 임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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