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획-옥천고등학교 문학동아리 `할'
청소년기획-옥천고등학교 문학동아리 `할'
  • 이용원 yolee@okinews.com
  • 승인 1999.06.12 00:00
  • 호수 4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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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고등학교에는 문학동아리 할(회장 유병록)이 있다.

95년부터 출발해 이제 옥천고 1학년생인 7기 회원들을 모집하게 된 할의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매년 대학과 문화재단 등에서 주최하는 고교생 문학공모에서 많은 입상기록을 내고 있다.

물론 수상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아이도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은 지독한 노력파라고 할 수 있죠."

동아리 창립부터 지속적인 지도와 관심을 보였고 지금은 할의 지도교사로 있는 신동인 교사의 얘기다.

정말 문학을 사랑하는 할의 동아리방은 교지 편집위원들과 함께 쓰는 넓지만 창고같이 정리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곳이었다. 군데군데 벗겨진 페인트 이외에는 가운데 둥글게 놓여진 의자만이 사람이 사용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초라한 곳이었다.

'할' 1.선승들이 말로는 나타낼 수 없는 도리를 나타내 보일 때 내는 소리. 2. 수행자의 망상이나 사견을 꾸짖어 반성하게 할 때 내는 소리'

그들이 내뱉는 '할'이라는 단발마는 어떤 의미일까? 스스로의 망상을 꾸짖는 자기성찰의 소리일까? 아니면 그들에게는 그릇된 가치관과 비뚤어진 사고만이 가득 찬 것으로 보이는 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소리없는 외침일까?

"내가 겪는 고통을 글로 표현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읽는다고 생각하면 쉽게 정리 할 수 있어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 느낀 것을 글로 표현하고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좋아요."

시와 소설을 왜 쓰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회원들은 대답하기 곤혹스럽다는 표정과 함께 신중하게 몇 마디 던진다.

시와 소설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진지했다. 아껴 먹던 사탕을 빼앗으려하는 이방인에 대한 본능적 경계처럼 느껴진 것은 과잉반응일까?

그들에게 규정과 틀에 짜 맞추어진 일상의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이기에 쉽게 정의하고 쉽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벽에 옥천 우시장을 간 아저씨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새보르 고개를 넘어왔다/ 어둠을 파낸 초생달/ 겨울을 써레질하며/ 빛을 언쳐대고/ 구씨 아저씨는 여울을 건너는지/ 그림자가 흔들렸다/ 비닐값, 비료값, 도회지로 나간 자식 하숙비 걱정을 강물에 엮어 보내려 하지만/ 떠내려가지 않고 가라앉는 것은 무엇일까/ 아저씨는 이기에 미끄러져/ 다리가 펴지지 않았다

-4기 박효용 강을 건너 中-

그들의 시는 아직 세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풋내기들의 상념에 가득 찬 추상적 언어의 나열도 아니었고 성인의 시를 흉내낸 어설픈 감상의 나열은 아니었다.

옥천에서 보고자란 농촌의 현실과 등.하교 길에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의 풍경과 현실에 대한 그들의 통찰을 표현한다.

그들의 시나 소설은 문학적 가치로 평가되어지기 이전에 삶에 대한 진지함만으로도 충분히 인정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글쎄요, 아직까지 직업으로서의 작가나 시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지는 못했어요, 내 자신의 실력에 대한 문제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작가나 시인이 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돈을 벌기가 쉽지는 않잖아요."

의외로 미래의 직업으로 시인이나 작가를 생각하는 친구들은 많지 않았다.

그들은 벌써 이 사회에서 '돈 없음'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알아 버린 것일까?

「언젠가 본 일이 있는, 또는 기억에 남아있는 시와 비슷하게 흉내내서 응모한 작품이 있어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이러한 응모작은 창조의 기쁨을 모르고 오직 결과만 탐했기 때문이다. 상투적이겠지만, 좋은 시란 결과에 욕심을 두지 않는, 아는 체 하거나 흉내내지 않는, 거짓 없이 쓴 글에서 나온다는 점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위의 내용은 할 문학회에서 주관한 제1회 할 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중의 일부분이다.

할은 자신들이 각 종 문학대회에서 받은 상금 중 일부를 적립해 할 문학상을 공모하고 있다. 올 7월이면 제 2회 할 문학상 공모가 마감된다.

어디서 지원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서 지시를 받은 것도 아닌데, 그들은 그렇게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그것을 풀어나가는 활동성은 우리가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청소년들의 수동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MT도 가지요?"

"아저씨 우리는 MT라고 안 하고 모꼬지라고 그래요, 그게 우리말이잖아요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는 아이의 눈망울이 한없이 맑고 깊다.

이 사회에서 자기들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고 항상 어른들의 도움과 지도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청소년. 그러나 문학동아리의 청소년들은 자유로운 모임도 훌륭한 공간이 제공되지 않는 곳에서도 바위틈에서 자라는 잡초처럼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쓰레기를 버리듯이 모두 버려라. 이제 더 이상 검은 색은 안 된다. 알겠지?"

달이 떠 있었다. 잠시 구름에 가려졌지만 달은 더욱 환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제 검은 점이 모두 없어지면, 나도 저렇게 조금씩 어둠 속에서 몸을 동그랗게 만들 수 있을까?」

-종이 위로 뜬 달 中 4기 천재강-

이제 청소년들의 몸을 감싸고 있는 어둠의 족쇄들을 풀어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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