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신문사 공모 시부문 최우수-유병록군
원광대 신문사 공모 시부문 최우수-유병록군
  • 이용원 yolee@okinews.com
  • 승인 1999.05.29 00:00
  • 호수 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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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를 쓰기에 앞서 내 주변의 것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기 시작했다.

"「시를 쓰려 펜을 들었을 때 내 주위에 것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벚꽃이 어떤 향기를 내는지, 소쩍새가 어떤 소리로 우는지, 고인 빗물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19일 원광대학교 주최한 전국 고교생 문예공모 시 부문에 당선된 옥천고등학교 2학년 유병록(17)군의 수상소감 중 처음 부분이다.  4백명이 넘는 응모자가 보낸 1천편이 넘는 시중에서 '풍치를 앓는 사람들'로 당당히 당선(최우수)을 차지한 유 군은 시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의를 갖고 있다.

당선작인 '풍치를 앓는 사람들'을 통해 피폐화된 농촌현실을 그리고 싶었다는 유 군.  더 이상 대보름이 되어도 밥을 훔쳐먹으러 들어오는 아이들이 없는 농촌, 더 이상 쥐불놀이를 할 아이들이 없어 '산불조심 하라'는 이장의 방송도 필요 없는 농촌의 현실을 예리한 감수성으로 형상화한 유 군은 원광대 이경수 심호택씨의 심사평에서도 '개성적인 감각과 섬짓한 감수성의 소유자'라는 극찬을 받았다.

옥천고등학교 문학동아리인 '할'의 회장을 맡고 있는 유 군이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할'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라고 한다.
"커서도 국어선생님을 하면서 시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유명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작고 소중한 삶을 살면서 사람들이 느끼고 감동할 수 있는 시를 계속 쓰고 싶다는 것이 유 군의 장래 희망이다. 「나도 고추모처럼 붉고 실한 열매를 맺기 위해 뿌리 뻗어 나가는 일을 늦추지 않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유 군의 당선소감 끝 부분이다.

시를 쓰면서 주변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는 깊은 고민,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유 군의 당선소감에 깊게 배어 있다.

<당선작>
< BR> 풍치를 앓는 사람들

귀밝이술 한 모금 마셔도
밥 훔치러 다니는 아이들
정지문 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뒤안으로 올까 싶어 뒷문 빗장도 풀어 놓았건만
고양이만 들락거렸다
시금치 콩나물에 비벼 놓은 밥은
이미 허공에 들기름 내음을 죄 날려보냈고
나는 신작로를 내다보았다
덥수룩한 흰머리에 젊은이라 불리는 이장이
쥐불놀이 할 때 산불 나지 않게 조심하라는
방송을 하지 않은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서낭당에 모인 사람들은 돌을 쌓으며
늙은 느티나무 깊이 패인 줄기가 채워지길 손모아 빌었지만
쉽사리 그리 될거라 믿는 이는 없었다
시루떡에 꽂아놓은 초는
더이상 촛농이 흘러내리지 않았고
속이 꽉찬 호두가 먹고 싶다고 말한 사람들은
빈집처럼 숭숭 뚫린 잇몸사이로 들어온 찬바람에
얼마 남지 않은 이마저도 풍치를 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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