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잃은 것이 더 많은 설명회
[기자의 눈] 잃은 것이 더 많은 설명회
  • 류영우 기자 ywryu@okinews.com
  • 승인 2003.06.20 00:00
  • 호수 6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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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열린 장례예식장 건립을 위한 주민설명회는 결국 고성과 욕설을 얼룩지며 한 시간만에 끝이 났다. 장례예식장을 추진하는 옥천농협의 입장에선 "한 번쯤은 겪어야 할 주민설명회를 이 수준에서 마친 것이 어떻게 보면 더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설명회였다.  이희순 조합장은 이날 설명회에 앞서 "지금은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아 주민들에게 답할 수 없다. 설계안이 나오면 주민들을 만나 장례식장 건립의 필요성을 설득해 나가겠다"라고 밝혔었다.
 
하지만 이날의 설명회는 주민들을 설득하는 자리가 아닌, 오히려 주민들의 반대 의지를 더욱 확고히 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다. 우선 점심시간을 30분밖에 남겨 놓지 않은 시각인 11시30분에 시작한 주민설명회는 주민들의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사회를 마치고 설명회를 개최하는 바람에 시간이 늦춰졌다는 농협 관계자의 설명이었지만 주민들로부터 "30분 정도 설명회를 갖고 주민들에게 점심 한 끼 사고 끝내면 될 것이다"라는 얕은 꾀를 썼다는 문제제기를 낳고 말았다. 결국 설명회는 주민들의 예상시간보다 30분을 넘겨 한 시간만에 끝이 났다.
 
"인신 공격성 발언 때문이다"라는 이유를 달았지만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다"라는 주민들을 뒤로 한 채 서둘러 돌아서는 농협 관계자들의 모습을 보며 "결국 이날의 설명회는 장례 예식장 건립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또한 설명회에 앞서 농협과 주민들이 토론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조율했더라면 이날의 설명회는 이처럼 파행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장례예식장 건립 장소를 바꿀 수 없다면 주민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주민들에게 양보와 희생을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날 주민설명회를 본 사람이라면 서로 같은 내용의 말만 되풀이하며 한 시간을 허비한 채 끝낸 절차가 안타깝게 느껴졌을 것이다.
 
주민들의 감정이 격앙된 상황에서 설명회를 잘 이끌기가 어려웠겠으나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노력도 없이 설명회를 파해버리는 자세로는 이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주민들과 맞선 상태에서 농협장례예식장 건립의 길은 더욱 멀고 험할 것임을 보여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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