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군수님 많이 섭섭하시죠'
[현장에서] `군수님 많이 섭섭하시죠'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3.05.16 00:00
  • 호수 6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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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가 현장에 있었다 할 지라도 9일 간담회에서 유봉열 군수의 심기가 그리 편하지 않았다는 것은 쉽게 눈치 챌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유 군수 스스로도 `섭섭하다', `불편하다' 등의 표현을 통해 자신의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그 중 하나는 생활체육협의회 김양곤 사무국장이 건립되는 체육센터를 주민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라는 문제제기를 한 부분이었다. 김 사무국장은 중간에 유 군수가 `어떻게 사무국장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얘기를 하느냐'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자신의 얘기를 끝까지 마무리하지는 못했다.

이 대목은 술자리에서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해프닝' 정도로 치부해버리기에는 숨어있는 의미가 적지 않다. 생활체육협의회 사무국장이기에 군에서 자칫 놓칠 수 있는 문제제기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위치다. 전문가라 할 수도 있다. 당연히 김 사무국장이 알아서 조심하기 전에 좀더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현명한 자치단체 수장의 모습일 것이다. 

`불편하다'라는 얘기를 굳은 표정으로 자식 혼내듯 던지는 유 군수와 김 사무국장의 관계는 더 이상 공식적인 관계라 할 수 없다. 지역의 선·후배 이상은 결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유 군수의 관계설정이 군 참모진들과의 사이에도 반영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이다. 이날 분위기로는 충분히 이런 점을 `우려'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가볍게 보이지 않았다.

■왜 자꾸 꼬투리를 잡느냐?
간담회 본연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자. 유 군수가 이날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던 두 번째 이유는 이렇다.

시민단체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서명을 받기 전에 관계자를 불러 `분명히 수영장을 짓겠다'라는 얘기를 했고, 이후 여러 차례 얘기한 바 있는데 왜 자꾸 꼬투리를 잡느냐'라는 부분이다. 유 군수가 정말 이렇게 생각한다면 섭섭해도 보통 섭섭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수영장 문제가 주민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불거진 지가 3개월이 지났지만 시민단체에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의 본질'에 정확히 접근하지 못한데서 온 섭섭함이다. 이 대목에서는 시민단체는 물론 본 기자도 분명히 다시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본질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반성을 하겠다는 얘기다.

유 군수의 말대로 `수영장 하나만 지어 달라'는 것이 수영장건립추진위원회의 요구였다면 이 문제는 벌써 끝나야 했다. 하지만 그 것이 아니다. 이번 체육센터 내에 들어가기로 했던 수영장이 없어지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 수렴이 얼마나 있었느냐 하는 부분이다. 이를 통해 군의 대형사업 전반과 중요 정책수립·추진 과정에서의 주민참여 대책 마련이 절실함을 지적했고, 이에 대한 제도적 틀, 소위 시스템 마련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이렇듯 시민단체에서 제기한 군의 정책 입안 방식과 추진방향에 대한 문제제기를 이해한다면 유봉열 군수의 `수영장을 짓겠다'라는 공언 또한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 시대의 역사는 더 이상 영웅 한 사람의 능력에 의해 방향을 잡는 시대는 아니다. 체육센터 내에 수영장을 포함시키는 것이 법적으로 기술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하다면 그 차선책을 어떻게 마련할지 역시 주민의 의견을 듣고 제대로 된 정책 설명회나 공청회를 통해 결정하자는 얘기다.

`내가 지을 테니 더 이상 얘기하지 말라'가 아니라 `이후 우리 군에 수영장을 어떻게 지었으면 좋겠느냐?'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간담회에서 유 군수 발언 태도에 대해서는 지역의 다른 시민단체에서 성명서까지 발표했으니 길게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간담회가 담았던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안 괜찮어', `서운하다구', `분명히 그 얘기를 해줬어' 등의 다양한 반말들 덕분에 더 이상 이날의 모임은 간담회가 아니었다.

물론, 나이로 치자면 이날 시민단체에서 참가한 사람들은 유 군수의 `아들 뻘'이라 해도 좋다. 그러나 공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의 구별능력은 공직자라면 전체의 삶에 관통해야 할 기본 자격조건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참여정부의 시대, 기본적인 논의의 틀에서 조차 수평적 구조가 아닌 이처럼 수직적 구조가 존재하는 한 주민이 참여하는 지방자치제는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수영장 공청회 다 했다(?)
이날 간담회 끝 부분에 유 군수는 `수영장과 관련해서 공청회 다 했다. 뒤에서 얘기하지 말고 공청회에 참가해서 얘기해달라'라는 간곡한 부탁(?)을 했다. 일단 논리자체는 맞는 말이다. 공청회를 여는 것이 군의 의무라면 참석하는 것 또한 당연한 시민의 권리며 의무다. 주요 정책을 추진하며 공청회를 열지 않는 군이 비판을 받는 그 크기만큼 참석하지 않는 주민역시 비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체육센터 건립과 관련해 제대로 된 공청회가 과연 있었는가의 부분이다. 간담회가 끝난 후 공청회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 기자는 실무담당 공무원에게 이 대목을 확인했다. 이 관계자로부터 "마침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있어 대규모의 공청회는 실시하지 못했지만 체육관계자들의 모임이 있을 때는 얘기했다"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 군수가 "왜 공청회에 참석하지 않고 뒤에서 얘기냐?"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또 하나 간담회에서 보여 준 유 군수의 `주민에 대한 기본 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어떤 공청회라도 제대로 된 논의구조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의회에 묻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영장 문제'관련해 비교적 자유로웠던(?) `옥천군의회'에 대한 얘기다. 지면의 한계 때문에 장황한 얘기는 생략한다. 단, 타 자치단체의 수영장 시설은 물론, 체육시설까지 둘러보는 성의를 보였고, 시민단체에 관련서류까지 요청해 검토한 것으로 알고 있는 옥천군의회가 이번 수영장 문제로 불거진 문제와 관련해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이번 수영장 문제가  `의회의 구실'에 대해 심도깊은 고민할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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