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동반자 고향 친구 만나 `든든'
인생의 동반자 고향 친구 만나 `든든'
[내고향 옥천] 대전 신흥동 '또또치킨' 운영 조금숙씨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3.04.18 00:00
  • 호수 6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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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면 의평리 출신 조금숙씨

한 컷의 사진이 궁금증을 유발했다. 지지난 주 신문사 카메라에 포착된 옥천읍 양수리에서 나물캐는 아줌마의 일상이 몹시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대전 신흥동에서 통닭집을 한다고 했다. 무의식중에 노릇노릇한 통닭 한 마리가 구미를 당겼는지도 모르겠다. 

포근한 고향산천에 안겨 나물캐는 아줌마의 풍경은 밀레의 ‘이삭줍기’보다 훨씬 전원적이고 맘을 편안하게 했다. 순간의 인연을 좀 더 잇기 위해, 막연한 상상력의 헛헛함을 좀 더 채우기 위해 ‘노크’를 했다. ‘고향’이라는 마력적인 단어는 주저하면서도 역시 쉽게 허물어지게 했다. 토요일 이른 저녁, 조금숙(49)씨는 ‘고향사람’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다.

이원의 푸르고 작은 학교, 대성초등학교 17회 졸업생이란다. 바로 50대를 코앞에 둔 그녀는 30년 만에 만난 국민(초등)학교 동창들과의 추억나누기가 삶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자글자글 통닭이 익어가는 소리에 고향에 대한 정담도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대진아! 어디냐? 옥천신문에서 왔는데, 난 초등학교 졸업하고 나와서 고향에 대해 잘 모르잖아. 선생님도 잘 기억이 안 나고. 빨리 와라. 술도 먹으려면 차 놓고 오고. 그래, 알았어. 내일 동현이 딸 결혼식 때 봐야지. 내일은 꼭 와라”

동창이라는 강대진씨와 전화통화를 들어보니 정말 스스럼없는 옛 친구같다. 그들은 잃어버린 옛날의 순수성을 다시 찾는 듯 했고, 그 속에서 뛰어 놀던 시절의 그리움에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고 있었다. 

“이렇게 반말하면서 통화해요. 처음 30년 만에 만났는데도 불쑥 이름이 튀어나오더라구요. 친구들 그리웠나 봐요.”

이제 두 달에 한 번씩 꼭 모인단다. 

“저 13년 전에 남편이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떴어요.”

툭 던지는 한 마디에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이미지가 모두 새로워보였다. 당시 국민학교 1학년, 4학년, 6학년이었던 완희, 강희, 진희 3형제는 지금 훌륭히 자라 직장인, 대학생이 되었단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고단했고 억척스러워야 했던 그녀의 지나온 날들이 눈에 그려졌다. 대우전자 주부실장부터 해서 식당, 갈비집, 그리고 3년 전에 다시 통닭집을 내기까지 삶이 그리 녹록치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 가운데 만난 고향친구들은 감로수 같았나 보다.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대전에만 한 20여명 되는데, 가끔 여기 모여서 회포도 풀고 그래요. 서울에 있는 친구들하고 같이 놀러가기도 하고요. 얼마 전엔 영동 영국사로 소풍을 갔었어요.” 개심저수지로 놀러갔던 기억, 솔방울 주워와 난로 피웠던 기억들 새록새록 피어나나 보다. “지금 대전 지하상가에서 ‘정석당’이라고 금은방 하는 친구 범식이도 만났고, 담임선생님이었던 김청진 선생님도 만났고요. 대진이, 동현이 등 잃어버린 친구 다시 찾아서 얼마나 좋은 지 몰라요. 그리고 옥천에서 상포사하는 조흥식씨가 먼 집안 동생이에요”

의평리가 고향인 조씨는 선산이 거기 있고, 아직 큰 집이 남아있어 고향에는 자주 들르는 편이라고 했다. “그나마 고향가까이서 살려고 이쪽 대전 동구 신흥동에 자리잡았어요. 여기 사는 사람들 옥천 사람 참 많아요. 다 하나같이 성실하고 따뜻한 사람들이에요.”

조씨에게 고향 친구들은 아들 셋을 홀로 키우며 고군분투했던 삶에 큰 힘이 된 듯 싶었다. 이제 다 큰 아들도 어머니의 고생을 아는지 다 지극한 효자란다. 군복을 입고 경례를 하는 완희의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한다.

“참 착해요. 엄마일도 열심히 도와주고.”

그녀는 스스로 시간을 역행하고 있었다. 성능좋고 기분좋은 타임머신을 타고 옛 친구들과 더불어 아득하고 엄마 품 같은 고향으로 내 달리고 있었다. 모든 것들이 많이 변해있었지만, 변하지 않는 친구들의 우정과 남아있는 고향산천에 아련한 그리움을 표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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