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주민간 `싸움구경' 그리 재미있나?
[기자의 눈] 주민간 `싸움구경' 그리 재미있나?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3.04.11 00:00
  • 호수 66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년 충북도에서 열리는 전국체전 기간 중 우리 군에서 열릴 계획인 남자배구경기가 무산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군배구협회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군배구협회와 군이 힘들게 배구를 유치한 상황에서 그런 위기감을 느꼈다면 문제제기는 당연하다.

그러나 `관심'을 끈 것은 그 화살 방향이 군 수영장건립추진위원회(이하 건추위), 그 중에서도 이진영 대표에게 향했다는 것이다.  조정구 군배구협회장에게 확인한 결과 협회가 위기위식을 느낀 것은 지난 3일 있었던 도지사의 군 순방중 이 대표의 질문에 대한 이원종 지사의 답변때문이었다.

문제가 된 이 지사의 답변 내용은 이렇다.

"그런데 아마 여기에서(옥천군에서) 배구 안 하겠다고 하면 다른 곳에서 우리 달라고 하는 곳이 제법 있을 거예요"

배구유치를 열망하는 입장에서 듣기엔, 더구나 권력의 약자입장에서 듣기엔 협박(?)수준으로 들리는 답변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배구협회의 반발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지사의 위 발언은 수영장건추위 이진영 대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내년에 있는 전국체전에 배구 대회를 치르기 위한 그러한 측면에서 도에서 너무 압박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여기에 게재한 질문과 답변만 놓고 볼 때 배구협회의 항의가 이 대표를 향해있는 것 역시 이해된다. 그런데 문제는 위에 게재한 질답은 전체 질답 내용의 1/10 수준이라는 것이다. 또 체육회 이사회 당일 참석자들에게 나눠준 대화 녹취록 역시 질문·답변 원문의 1/3 수준도 채 안 된다. 자칫 녹취록만 가지고 상황을 파악할 때는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녹취록 전문을 읽을 경우, 이 대표의 발언을 `내년 배구의 옥천 유치가 도의 압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라는 항의의 의미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꽤 길었던 이 대표 질문의 핵심은 `△수영장 제외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설명이 없었다 △도에서 투융자심사(군민체육관 건립 관련)를 할 때 타당성 조사서를 정확하게 읽어 봤는지 묻고 싶다. △문화체육센터에 수영장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있다'다.  바로 이어 문제가 된 내용이 등장하고 이는 군 체육센터 건립 과정 중 하나인 도의 투융자 심사 과정이 `전국체전의 시기로 인해 졸속하게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배구유치 자체가 도의 압력이었다는 의미로 보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분명한 것은 `하기 싫으면 딴 데서 하라 그래도 여러 군데서 달려들텐데..'라는 협박(?) 수준의 답변을 끌어낼 만한 질문은 분명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지사의 답변은 민감한 사안을 건드려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려는 정치적 발언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강 건너 불 보듯' 의도가 뭔가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사회가 있었던 9일, 도 체육청소년과와 전국체전팀 관계자들에게 `남자배구 개최지 재검토 여부'에 대해 확인했지만 재검토를 하고 있다는 답변은 없었다.

오히려 전국체전팀 관계자는 "최종확정이라고 단언하긴 힘들지만 지난 3월 설명회를 통해 거의 확정된 걸로 봐야 한다"라며 "지역이 연결돼 있어 한 곳의 계획을 바꾸면 여러 곳이 함께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라고 친절히 설명했다.

또 체육청소년과 담당자는 도지사 순방후 답변이 필요한 내용에 대해 지시를 받았는데 △당초 설계에 들어간 수영장이 삭제된 부분 △체육센터 건립과정에서 군민의 합의와 동의를 얻도록 공청회 개최를 요망한다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의 질문 내용과 일치한다.

도에 확인하기 직전에 군 관계자에 전화를 걸어 "내년 전국체전 배구대회는 어디서 개최하냐"라고 물었을 때 "옥천"이라고 답했다. 혹시 "도에서 남자배구 개최지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지느냐?"라는 질문에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심각한 의구심을 갖는다. 체육청소년 민성기 담당에 따르면 배구협회의 반발을 군 관계 공무원들도 도지사 순방이 끝난 4일 알 수 있었다.(몰랐다면 더 이상하다) 그리고 8일 이사회에 이와 관련한 논의가 있을 것도 알고 있었다. 물론, 이재하 문화공보실장과 민성기 체육청소년담당도 회의에 참석했다. 하지만 격렬한 토론과정에서 두 관계 공무원 모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배구협회의 이런 우려에 대해 그 진위를 확인하고 나서야 할 부서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다. 자칫 두 민간단체의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 논의를 `강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본 것이다. 배구협회의 우려를 알았다면 당연히 도 관련 부서에 적극적으로 진위를 파악하고, 도에서 오해를 하고 있다면 해명하는데 앞장서야 할 담당 공무원들이 말이다. 더군다나 시기와 해당 단체가 미묘하다.

대규모 사업비가 투자되는 정책의 집행과정에서 제대로 된 주민합의 없이 사업을 군 독단적으로 추진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선 시민단체(수영장건추위)가 연루됐다는 점이다. 물론 시민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는 해당부서는 문화 공보실이다. 제시한 정황 등을 놓고 볼 때 `민대 관'의 문제가 핵심에서 벗어나 `민대 민의 문제'로 전환될 경우 이득(?)을 볼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한 번 명확히 해야 한다. 군 수영장건립추진위에서 제기하고 나선 문제의 핵심은 `군의 대규모 정책입안과 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주민합의 절차 무시'에 대한 부분이라는 것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