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 찾아다니는 황건하·조일권씨
'산성' 찾아다니는 황건하·조일권씨
함께사는 세상 [103]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3.04.11 00:00
  • 호수 6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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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을 바라보며 조상의 애환과 숨결을 느낀다는 황건하(왼쪽)씨와 조일권씨.

황건하씨와 조일권씨는 자주 산에 오른다. 소문난 전국 곳곳의 명산보다는 우리 지역의, 혹은 경계를 이루는 지역의 산을 주로 찾는다. 그러나 둘의 산행은 산을 알기 위한 등산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 산이 고스란히 품고 있는 역사의 숨결을 찾기 위한 산행이다.
 
`산성'. 산에 오르는 그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주제가 바로 `산성'이다. 지역 곳곳에 퍼즐 조각처럼 퍼져있는 산성들을 찾아낸다. 그들을 조합하고 해체하면서 기록된 역사를 재확인하기도 하고, 기록된 역사의 간극에 놓여 있는 보이지  않는 역사의 숨결을 느낀다. 그 매력적인 작업에 푹 빠져 있는 둘은 산성을 찾기 위해 우거진 잡목을 헤치며 몇 번이라도 산에 오르내리기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런 수고로움을 감수할 정도의 가치를 `산성'은 담고 있기 때문이다.

조일권(48)씨와 황건하(46)씨는 직장동료다. 둘 모두 옥천읍 일유공업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한 사람은 전무, 한 사람은 부장이다. 하지만 일요일이 되면 둘의 직급 경계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산성'이라는 공통 주제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는 훌륭한 동행인이 된다.
 
둘 모두 본격적으로 산성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2000년이다. 우리 군의 향토사 연구 모임인 옥주문화동호회 회장을 맡은 황건하씨가 성지탐방을 사업으로 계획하면서부터다. 잘 알려진 군내 15개 산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나가는 작업을 할 생각으로 당시 우리 지역의 산을 잘 알고 있던 조일권씨에게 길 안내를 청했다.
 
그렇게 시작한 성지탐방을 통해 둘은 산성에 푹 빠지게 되었다. 지금 그들이 둘러본 산성은 처음 계획한 15곳을 훌쩍 넘어 50개 가까이 된다. 지역도 옥천만이 아닌 과거 경계를 이루었던 지역과 양산·학산 지역으로까지 확대됐다. 제대로 퍼즐 조각을 맞추기 위해서다.

산성 앞에서 느끼는 몇 가지 것들.
"실체가 잘 드러나는 원형이 남아있는 산성을 보면 보물을 만난 것 같이 기쁘죠. 군서면 은행리 성티산성의 과학적인 축조방식이나 안남면 화학산성 같은 곳의 미적인 감각은 경이롭죠. 산성마다 보여주는 것이 모두 틀려요."  황건하씨가 지금까지 본 산성 중 가장 큰 감흥이 일었다는 두 곳이다.
 
조일권씨는 군북면 항곡리 산성을 꼽는다.
"군북면 항곡리에 있는 산성의 경우에는 건축미가 있어요. 일부 흔적도 남아 있구요. 더군다나 주민들도 잘 모르고 있는 곳을 추정만으로 무작정 찾아 나섰다가 발견하게 되면 그 때 느끼는 감흥은 더하죠. 막지리 산성도 그렇구요. 산성을 발견하고 그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아!' 하는 탄성을 지를 때가 많아요. 산밑에서 저 봉우리에 산성이 있겠다 싶어 힘들게 올라가 산성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 양산지역에 있는 산성인데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린 산성이 있어요. 그걸 보고 있으려니 눈물이 나오더라구요. 그렇게 애처롭고 눈물이 나는 것이 있고, 예술미를 느낄 정도로 잘 쌓은 것도 있고, 그렇게 (다양한)산성을 자꾸 보다보면 점점 더 빠져들 수밖에 없지요."
 
조일권씨의 얘기를 받아 황건하씨도 산성에서 느껴지는 조상들의 숨결을 얘기한다.
 
"옥천인의 애환의 역사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결국 성을 쌓은 선조들도 나제간에 변방에 살던 옥천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산성을 보고 있으면 `저 산성을 축조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하는 생각이 절로 들거든요. 적대국을 마주한 역사적인 상황에서 오죽 성을 많이 쌓았으면 당진까지 불려가서 성을 쌓고 오겠어요. 이제 그런 실체, 애환을 문화적인 가치로 승화시켜 옥천의 자부심을 높였으면 좋겠어요."
 
흔적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산성 앞에서 그들은 `발견했다'라는 원초적인 감흥을 넘어 축조된 성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선조들의 애환을 읽어내고 있었다.

 '관산성' 관심가져야
산성 얘기를 나누며 둘이 비중을 두고 거론한 산성이 우리군의 대표적인 산성이라 할 수 있는 `관산성'이다. 관산성이 갖고 있는 역사성을 생각할 때 복원과 보전·관리에 좀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옥천에서는 관산성이 상당히 중요하고, 역사성도 있는데... 단양의 온달산성에 비해서 더 중요한데 그 위치조차 정확하게 정립이 안되어 있어요. 우리 군에서 먼저 이에 대한 정립을 하고 일부라도 `복원'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외부인이 와서 `여기가 관산성입니다'라며 데리고 가면 아무 것도 없거든요. 예산과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일이지만 교육적 차원과 역사적 의미를 생각할 때 일부라도 복원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조일권씨의 이런 생각에는 황건하씨도 동의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충청일보에 `충주쪽에 관산이 있고, 옥천에 관산성이 아니고 충주에 있는 관산성이 역사에 나오는 관산성이다'라는 보도를 봤어요. 그런 경우 즉각 반박을 해야 하는데<&28137> 아쉽죠. 군에서도 좀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해요. 옛 국가의 국운을 가를 정도의 전투가 있었던 곳인데 명소화시켜 관광적인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꺼구요. 너무 등한시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도 할 일 많이 남아
황건하씨와 조일권씨의 산성탐방은 긴 과정의 첫 발을 내디딘 것에 지나지 않았다. 조각난 퍼즐들을 모았으면 이제 그 조각들을 갖고 그림을 그려 역사적 진실에 최대한 정확히 접근해야 하는 작업을 남겨두고 있다. 둘의 이후 계획도 역사의 실체에 접근하는 것과 방향이 일치한다.
 
"옥천을 비롯해, 영동의 양산·학산 지역의 산성까지 대략 50개 가까이 발견이 되고 있는데 그를 기본으로 해서 옥천지역의 나·제 경계를 규명하고 싶어요. 1경계, 2경계. 그리고 상주에서 옥천을 관통해 공주 부여로 가는 전장로의 실체를 확인하는 작업도 해야 하구요."-황건하씨
 
"옥천·양산지역의 산성 중 90% 정도는 답사를 한 것 같은데... 미진한 부분에 대한 답사도 마무리하고요. 옥천지역이 1500여년전 삼국시대에 어떤 구실을 했고, 각 산성은 또 무슨 구실을 했는지 좀더 내용을 파악해 보고 싶습니다. 말로 표현하기가 그런데 있을 곳에 성터가 없고, 없을 곳에 성터가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걸 보면 이 성터가 백제 쪽이냐 신라 쪽이냐. 또 어떤 구실을 했는지 조사·연구하고 싶습니다."
 
역사에 대한 전문성을 놓고 볼 때 둘은 분명 아마추어지만 그 열정만큼은 전문사학자의 그것 못지 않았다.

탐방기 책자와 홈페이지에 `정리'
"그래도 직장 상사인데, 같이 동행하는 게 껄끄러울 때는 없어요?"
질문을 던져 놓자마자 멍청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83년 지금은 없어진 은성산업에 근무하면서 옥천과 인연을 맺은 조일권씨를 스카웃(?) 한 사람이 일유공업사 황건하 전무였다.
 
"산성을 찾기 위해 산을 오르다보면 제대로 된 길로 갈 수가 없어요. 그러다 보면 어렵고 위험한 고비도 많이 넘죠. 그 길에 함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데요. 같은 직장에 있으니까 탐방계획 세우기도 좋구요. 오히려 편안하게 업무 얘기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공통관심사니까요."
 
둘의 산성탐방기록은 옥주문화동호회와 문화원에서 발간한 책자로 정리가 되어 있다. 또 조일권씨의 개인홈페이지 http://cigjs.hihome.com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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