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스 걸치고 놀던 그리운 '고향 냇가'
빤스 걸치고 놀던 그리운 '고향 냇가'
[내고향 옥천] 충남대학교 공과대학 주혁종 학장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3.02.21 00:00
  • 호수 6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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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남면 연주리 출신, 충남대학교 공과대학 학장 주혁종씨
희끗희끗한 머릿결에 캐주얼 복장으로 들어선 그의 첫 인상은 ‘활력’이었다. 쉰 일곱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백발이 성성했지만, 나이와 흰머리가 무안할 정도로 경쾌한 모습을 보여줬다.
 
아니나 다를까,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어제 아들과 함께 ‘스노우 보드’를 타고 왔단다. 실례를 무릅쓰고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 같다’고 말했더니 ‘허허’하고 웃는다. 주혁종(57)씨와의 만남은 그런 첫인상을 가지고 이뤄졌다.
 
충남대 공과대학장을 맡고 있는 주혁종씨는 안남면 연주리 출신이다. 대전시 교육청 천영만 총무과장과는 안남초등학교 23회 동창이라고 했다. 환갑이 다 되어가지만 그는 인생을 즐기고 사는 듯 했다. 철저하게 자신의 몸관리를 하며, 여전히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에는 이 모든 것이 고향에서 단련된 것이라고 고백하긴 했지만, 그의 고향에 대한 추억은 짧고도 강렬한 것이었다.
 
“독락정 근처 강가 모래밭이 내 놀이터였어요. 여름만 되면 완전 검둥이가 됐어요. 빤스하나 걸쳐 입고, 막 뛰어 댕겼으니. 손가락으로 등에 글씨가 하얗게 써질 정도였죠. 냇가에서 고기잡아 냄비에 끓여먹고. 참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는데. 지금 수영 실력이 다 그 때 다져진 거에요. 88올림픽 당시, 아마추어 마스터즈 수영대회가 있었는데 40대 부문에서 동메달을 따기도 했거든요.”
 
축구동호회도 만들고, 수영, 스킨 스쿠버, 스키, 스노우 보드 등 평소에도 운동을 많이 즐긴단다.  활기찬 인생을 사는 것도 다져진 몸도 고향 덕으로 돌렸지만, 그에게 고향과 함께 떠오르는 것은 ‘어머니’다.
 
아버지가 6.25 전쟁으로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머니는 홀로 5남매를 키우셨단다. 더구나 5남매 중 독자이자 막내인 자신에게 어머니의 애정은 하늘과 같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치고 대전으로 전학을 왔어요. 대전 대동에서 14살부터 자취를 시작했죠. 우리 집은 빈농이었고, 어머니는 내가 집안을 다시 일으킬 거라는 기대를 하셨죠. 꼭 대전 자취집까지 걸어오셨어요. 피실 고개를 넘어 교동에서 용운동 고개를 거쳐 대동까지. 아들 따뜻하게 지내라고 식장산 고개에서 나무를 해다 주기도 하셨고요. 10여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련합니다.”
 
어머니의 그 정성이 자신이 딴 생각을 먹지 않고 올곧게 공부에 정진할 수 있었던 큰 지줏대 구실을 해줬다고 주 학장은 말했다.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과 정성 때문이었는지 그는 순탄하게 지금의 위치까지 왔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유학을 거쳐 현재 고분자공학과 교수까지. 지금 맡고 있는 공대 학장은 올 2월 말이면 임기가 만료된다.
 
“77년부터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나름대로 아쉬움이 많습니다. 당시에는 교수가 교육보다는 연구위주였거든요. 그래서 가르침에 소홀함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학생들에게 세심하게 신경 쓰는 멋진 교수가 되려고 합니다. 강의 방법도 바꿔보고 많이 노력할 겁니다.”
 
그의 앞으로 또 한가지 소원은 시골에서 노년을 보내는 것이다. 비록 고향 땅은 아니지만, 공주시 반포면에 조그만 땅을 마련했단다.

“자연에 귀의하며, 내 삶을 다시 돌아보고 싶어요. 안남은 영원한 내 마음의 고향입니다. 어디가든 안남만 하겠습니까? 어릴 적 추억, 보물로 간직하며 살아갈 겁니다.”
 
속이 빈 오동나무에 호롱불과 명주실로 동그랗게 오려낸 유리를 끼어 수경을 만들어 대꼬챙이 작살로 물고기를 잡았다는 주혁종 학장은 독락정 강가가 아직도 그립다면서 망중한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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