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친구들에게 애정 깊은 '의리의 사나이'
고향 친구들에게 애정 깊은 '의리의 사나이'
[내고향 옥천] 금융투자개발 대표 김준식씨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3.02.14 00:00
  • 호수 6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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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읍 금구리 출신 김준식 금융투수개발 대표
주섬주섬 명함 한 뭉텅이를 꺼내 들더니 하나하나 사람에 대한 코멘트를 달며 친근하게 이야기를 건넨다.

이야기는 그의 굵은 손가락 마디처럼 투박하게 다가왔지만, 오히려 서투른 그의 표현에서 깊은 정이 느껴졌다. 늘 그렇지만 학교와 숫자, 그리고 그의 흔적이 담긴 공간적 장소로 테두리를 그어봤다.
 
김준식(50). 삼양초 21회, 옥천중 18회 졸업생, 옥천읍 금구리 출신, 현재 금융투수개발 사장. 이 몇 가지 객관적인 키워드로 기둥을 세우고 차근차근 그 벽면을 메우기 시작했다.
 
김준식이란 이름에서는 그의 가족에 대한 자잘한 일상이 드러났다. 4남 1녀 중 막내, 군 문화공보실장을 역임한 큰 형 김철희씨는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둘째형 김덕희씨는 44년간 교직생활을 하고 군서초등학교에서 정년퇴임한 교사, 셋째형 김재희씨는 충남지방경찰청 장비보급계 경사로 재직했었다. 그리고 누이 김숙희씨는 대전여고 선생님을 했었다.
 
그러고 보니 모두 국가의 녹을 먹었던 공무원 집안이란다. 자신만 도드라지게 사업을 시작했단다. 이름 항렬도 틀리다. ‘석희’란 이름보다 더 운이 좋다는 ‘준식’이란 이름으로 초등학교때 개명을 했단다. 이래저래 그는 형제 자매와 다른 운명을 타고 난 것 같았다.
 
옥천중 18회. 여기서 그의 얘기 절반이 풀어 나왔다. 고향에 대한 애정을 현재까지 느끼는 것도 일팔회라 불리는 고향 친구들을 매달 만나기 때문일 것이다.

보령 교육청의 유영식, 현대상사의 오경균, 옥천의 박성룡, 청양에서 전기사업하는 염태대, 충남지방경찰청 조영수 감사계장, 대전매일 남부 본부장 하는 전재구, 지난해 심장마비로 명을 달리한 유지범 이비인후과 원장, 대전시청 도로과 정현욱, 건설회사 하는 태근봉..... 그가 매월 셋째주 월요일에 어김없이 만난다는 그 친구들을 명함을 하나씩 들추며 되뇌인다. 이것이 앞의 구체적인 장면이다.

“만나면 욕만 하죠. 그래도 오래 정이 붙었는지 참 편하고 좋아요.”
옥천읍 금구리. 아버지는 읍에서도 가장 잘 나간다는 ‘문화 양복젼을 했었다. 옥천을 떠나온 계기도 아버지가 대전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대전의 양복점 이름은 GQ양복점. 젠틀맨 퀄러티란 뜻이었단다. 현재 옥천읍에서 진흥종묘를 하는 김융희씨와는 사촌간이다. 그 때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곤 군서면 서화천에서 멱감던 일, 참외서리 하던 일등이 떠오른단다.
 
금융투수개발. 몇년전에 하던 건설 사업을 부도내고 98년도에 다시 시작한 사업이다. 물과 소음을 스미게 하는 아스팔트라는 ‘에코팔트’의 충청북도 영업을 맡아 옥천 지역 옥천대교에서 옥천역까지 약 2km 구간을 깔기도 했다. 다른 아스팔트랑 달리는 기분이 틀릴 거라며 다시 한 번 가보란다. 그는 역시 사업가 적 기질이 다분했다.
 
또 자체적으로 칼라투수성 콘크리트를 특허내 대전 중구 예술의 거리, 여의도 공원 산책로, 충남대 교정 등을 울긋불긋 수놓았다. 앞으로 자연을 생각해서라도 일반 콘크리트를 다 투수성 콘크리트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자신의 사업의 당위성에 대해 설명했고, 그 설명은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고향. 그에게서 고향은 언제나 기대고 싶은 언덕이었다.
 
“뭐 두 말 할 것 있나요. 누구나 다 마찬가지일 거에요. 자신을 키워준 곳인데, 굳이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감성적으로 저절로 끌리게 되는 곳이 바로 고향이에요. 고향 사람 만나면 누구보다 반갑고, 고향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 누구나 다 간절하잖아요.”
 
향수와 격세지감을 느끼면서 그 간극을 메워가고, 또 그 위에 새로운 추억을 덧칠하면서 고향에 대한 이미지를 발전시킨다는 김준식씨는 ‘영원한 옥천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벌써 나이 오십이라고, 앞에서 뛸 나이는 지났다며 짐짓 너스레를 떤다. 그런데 그의 모습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그의 의지가 몸짓에서 불쑥 튕겨져 나왔다. 활기에 찬 고향사람이 가까운 곳 대전에서 기지개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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