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옛친구들은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예요"
"고향의 옛친구들은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예요"
[내고향 옥천] 정부종합청사 통계청 전산서기관 류제정씨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2.09.24 00:00
  • 호수 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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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정부청사 13층에 위치한 통계청 전산계발과의 류제정씨.

잘 짜여진 구획정리, 각진 도형들이 네모 반듯하게 현대 도시의 미관을 그대로 드러낸 대전 정부청사는 네 개의 윷가락이 서로 다른 방향을 보며 가지런히 의지하고 있는 듯하다. 삼엄한 검문 과정을 지나 정부청사 13층에 위치한 통계청 전산계발과의 류제정(44)씨를 만나봤다. 

정부청사 통계청 4급 전산 서기관, 고등학교 1학년인 딸과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을 둔 두 아이의 엄마, 옥천여중 29회 졸업생, 고향은 옥천읍 금구리, 옥천고등학교 교장을 지낸 류부현(옥천읍 가화현대아파트)씨의 8남매 중 둘째 딸이라는 것이 그녀가 조신하고 차분하게 말한 삶의 대략적인 이력이었다. 

“어떡하죠. 저는 고향에 대한 많은 기억이 없는데... 그냥 친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질 뿐이지, 세세하게 말할 만한 기억이 없어 미안하네요.”

친구인 군 기획감사실 박정옥씨가 말한 것처럼 그녀는 말을 많이 아꼈고, 들뜨고 부산한 아침을 그녀 나름의 분위기로 평정하고 있었다. 

“제가 워낙 조용해서도 그렇고, 학교 다닐 때 아버지가 선생님을 하셔서 여기저기 많이 옮겨 다녔거든요. 그래서 동네 친구들과 쉽게 정을 붙이지 못했어요. 그리고 중학교 때까지만 옥천에서 학교를 다녔구요. 기억이라면 중학교 친구들과 선생님들이죠. 이번에도 동창회를 나갔었는데, 다들 열심히 살더라구요. 나야 뭐 지금 아이들 때문에, 직장 때문에 정신 없이 바쁘지만, 친구들 이제 조금씩 여유를 찾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는 것을 보면 참 부럽더라구요.”

옥천에는 부모님과 막내 동생이 있지만, 자주 찾아뵙지는 못한단다. 

“자주 못 가요. 일 년에 한 자리 숫자 정도 밖에.. 틈이 안 나네요.” 그나마 지난해부터 매년 열리는 동창회에서 친구들을 만나 학창시절 얘기하며 옛 추억을 떠올리며 지나온 삶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힘을 얻었단다. 

“나의 옛 모습에 대해 많이 잊고 살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무던했었는데,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자극을 받아요. 내가 이랬었구나,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한남대 전산통계학과를 졸업하고 조교 생활을 거쳐 지난해에는 한남대에서 컴퓨터 공학석사 학위를 받았다는 그녀는 올해 4급 서기관으로 승진했고 현재 통계정보시스템 개발과 관리업무를 맡고 있다. 

“86년에 통계청에 들어왔어요. 참 적성에 맞고 잘 들어왔다는 생각을 해요. 컴퓨터 관련 분야가 늘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결과가 확실하고 계속 발전하는 분야라 꾸준히 공부를 해야 한다는 특성이 나의 성격과도 잘 맞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이쪽 분야에 시간을 내서 더 공부를 하고 싶어요.”

학창시절에 대한 얘기를 자꾸 묻자 수줍게 웃으며 말한다. 마치 시간의 두레박을 기억의 우물에서 길어 올리며 하나씩 꺼내어 퍼즐 맞추기를 하는 것 같다. 

“그때 젊은 선생님들이 참 의욕적으로 가르쳤던 것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특히 영어선생님이었던 이상진 선생님이 많이 생각났는데, 얼마전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구요. 유치원 하던 선순(전선순)이, 좀머씨 이야기를 번역한 혜자(유혜자)라는 친구도 생각나고.. 옛 친구들 다시 만나보면 참 치열하게 삶을 살았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삶을 꾸려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녀는 고향 얘기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며 자신이 인터뷰 대상이 된 것이 부담스럽다고 했지만, 거의 매일 옥천과 관련한 사이트를 둘러보며 옥천 소식을 보고, 동창회에 꾸준히 참석하며 친구들에 대해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바쁜 일상도 고향에 대한 추억까지 침범할 수 없구나 하는 느낌이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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