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환하게 타오르고 싶어요"
"불꽃처럼 환하게 타오르고 싶어요"
[내고향 옥천]대전대 교내 미용실 「HAIR ZONE」 김재순씨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2.09.16 00:00
  • 호수 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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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서면 사양리 마랑골 출신 대전대 교내 미용실 `HAIR ZONE' 대표 김재순씨

“왜 몇 등 했냐고 안 물어봐” 물기가 아직 채가시지 않은 머릿결에 불쑥 들어와서 미용실 식구들에게 묻는다. “나 2등하고 3등도 했어” 대답을 채 기다리기도 전에 말하며 싱글 웃어버린다.

대전대학교 교내 미용실에서 만난 김재순(45)씨는 아침의 활기를 가득 안고 미용실 문을 두드렸다. 아침마다 수영을 한다는 김씨는 오자마자 던진 수수께끼 문답을 정리해줬다.  전날 청주시장배 일반 수영마스터즈대회에서 50m 2등, 100m 3등을 했다는 것. 제법 묵직한 메달까지 보여주며 아직도 메달을 딴 감흥에 사로잡힌 듯 하다.

“운동 참 좋아해요. 운동에서도 격렬한 운동 있잖아요. 숨막힐 듯한 정점까지 올라갔다가 목표지점에 도달해서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그런 운동 말이에요. 난 그 순간을 즐겨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거든요. 스킨스쿠버, 스노우보드, 수상스키, 테니스, 등산, 탁구... 초등학교(군서초 49회)때는 단거리 육상선수였고요. 안 해 본 운동이 없고 새로운 운동에 호기심도 많아요.”
 
그녀의 운동예찬론은 밤을 세워도 모자랄 것 같았다.

“군서면 사양리 마랑골 출신이에요. 지금도 산내를 통해서 가면 15분밖에 안 걸리는데요. 군 기획감사실의 박정옥이가 내 친한 친구에요. 가끔 옥천에 가서 점심도 먹고 자주 들락날락해요. 큰오빠도 고향에 살고요. 옥천여중(19회) 다닐 때, 학교 맞은편 성당 잔디밭에 올라가서 친구들과 인생이 허무하다는 둥, 슬픈 얘기하고 같이 눈물 흘리고.. 참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 때만 해도 그게 멋인 줄 알았거든요. 그리고 사양리에서 여중까지 9km를 두시간 남짓 걸어다녔어요. 월전리 말맹이 고개(말무덤재) 공동묘지에 귀신 나온다고 해서 거기 걸어갈 땐 정말 무서웠어요.”

묶어놓은 실타래 풀어놓듯 계속 이어지는 얘기, 눈을 반짝이며 호흡으로 끊어진 이음새를 다시 엮는다.

“중학교 1년 반쯤 다녔을 때, 15인승 마이크로버스가 생겼거든요. 그런데 거기 몇 명 탔는 줄 아세요. 자그마치 6-70명이 탔어요. 창문으로 타고 완전히 짐짝처럼 밀리고 쓰러지고. 버스에 화재도 몇 번 났었다니까요. 버스가 배겨나질 못하니까”

아무래도 옛 기억은 즐거운가 보다. 여름날 낮에는 물장구치고 저녁에는 동네 포도, 옥수수 서리를 했고, 20대 초반에는 친구들과 뭉쳐 반찬 서리를 한 짓궂은 기억들도 그녀의 잔잔한 미소에 맺힌다. 90년대 갑자기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시작한 미용실은 친절을 모토로 열심히 한 덕분에 지금은 한남대와 대전대 두 곳에서 제법 탄탄한 기반을 마련했단다.

“지금 그때 초등학교 친구들 다시 만나요. 한 달에 한 번 매 첫째 주 토요일에 모이는데, 2, 30명씩 나와요. 매달 모임이 삶의 커다란 활력소가 돼요.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정년 퇴직했을 때 그 얼굴을 닮고 싶어요. 그 얼굴 보셨어요? 65세가 넘었는데도 얼굴이 청순하고 아주 맑아요. 얼굴은 마음에 따라 변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나도 그런 인상을 갖고 싶어요. 그럴려면 선하게 살려고 노력해야겠죠.”

옥천 사람이면 선뜻 말을 걸어 반가움을 표시한다는 그녀는 고향과 친구들, 자신의 삶, 그리고 이 모두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든 자신의 몸과 마음을 누구보다 아끼고 있었다.

“오래 살고 싶은 맘은 없어요. 일찍 죽더라도 건강하고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운동을 하는 이유도, 친구와 고향을 찾는 이유도 내 주변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들을 만끽하고 싶어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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