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119 구조대 정성우 소방교
옥천 119 구조대 정성우 소방교
함께사는 세상 [85]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2.09.11 00:00
  • 호수 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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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 둘, 만능 총각 구조대원인 정성우 소방교. 좌측부터 김기흥, 박병호, 정성우, 박동수, 유병오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특전사에 지원 입대했다. 특전 하사관들의 베레모와 제복이 너무 멋졌기 때문이다. 기본 훈련이 끝난 뒤에야 이등병이 아닌 하사관 계급장을 달아준다는 것을 알 정도로 특전하사관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었다.
 
자신의 선택에 후회 없이 의무복무기간인 4년6개월을 마치고 94년 겨울에 다시 사회에 복귀했다. 서울에서 선배가 경영하던 `경호회사'에 잠시 근무하며 시험준비를 했다. 당시 충청북도에서 실시한 소방공무원 시험에 응시, 합격했고 95년 6월 영동소방서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소방공무원의 업무 영역은 경방(화재진압), 기관(차량 운전), 구조, 구급 등 4가지 분야로 나뉜다. 이 중 정성우 소방교의 임무는 `구조'다. 올해 서른 세 살인 그는 큰 키에 운동으로 단련된 다부진 체격을 가졌다. 또 큰 웃음소리에 대화를 거침없이 풀어갈 줄 아는 청년이다.
 
옥천읍 대천리가 고향이고 삼양초등학교와 옥천중학교, 옥천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태권도 4단으로 몇 해전 도민체육대회에 우리 군 대표로 출전한 경력도 있다. 올해는 스킨스쿠버 자격증도 땄다. 그리고 아직미혼이다.

■형제같은 동료들
정성우 소방교가 근무하고 있는 `옥천 119 구조대'는 올 2월에 발대식을 갖고 공식 출범했다. 영동에서 근무하던 그도 옥천구조대의 출범과 함께 고향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옥천 구조대가 올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건수는 모두 192회(8월까지). 한 달 평균 24회다. 수난사고, 교통사고, 산악사고 현장 등이 옥천구조대가 출동하는 주요 현장이지만 이외에 `119'로 들어오는 각종 신고에 대응하는 곳도 `구조대'다.
 
최근에는 벌집 제거를 요청하는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 간혹 집안에 들어온 뱀도 처리를 해 준다. 간혹 차안에 열쇠를 꽂아 넣고 문을 닫았다는 다급한(?) 전화도 받아야 한다. 불을 끄고 화재를 예방하는 소방파출소와는 별도의 기관이지만 별다른 일이 없다면 화재 현장에도 출동해 수관을 잡는다. 적은 인원이 근무하고 있는 작은 소방파출소와 구조대에서 업무 분담을 정확히 하다가는 `일하기 어렵다'.
 
주민들의 삶 곁에 바짝 붙어 있는 `옥천 119 구조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성우 소방교는 박병호 구조대장을 비롯한 8명의 동료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에게 동료들은 직장에서는 한 팀이지만 퇴근 후에는 가족과도 같은 형이며 동생이다. `구조'라는 업무 특성상 직원들 간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일을 하기가 쉽지 않다. 팀원간의 호흡이 얼마나 맞느냐가 시각을 다투는 구조현장에서의 업무처리 능력을 좌우한다. 이런 팀웍은 일상적인 훈련을 통해 다져진다. 옥천소방파출소 3층 구조대 사무실의 벽에는 훈련과 토론, 비상대기로 꽉 짜여진 일과표가 붙어 있었다.

■나의 선택 후회 없어
"재작년이었던 것 같은데요. 안내면 야산에 구조 상황이 벌어졌어요. 두 분이 도라지 캐러 올라갔다가 한 분이 실족을 했다는 신고를 접수했죠. 당시는 영동소방서 구조대가 옥천군을 같이 관할할 때여서 출동을 했어요. 한 분이 산밑에 내려와서 우리를 안내했는데 조금 올라가다가 길을 잃어버렸어요. 오후 2∼3시쯤 도착했는데 온 산을 다 헤집고 다녀 간신히 구조해 산밑으로 내려오니까 밤 12시가 다 되었더라구요. 구조대원들도 거의 탈진하기 일보직전이었죠."
 
정성우 대원의 이런 얘기는 구조대원이라면 밤을 세워도 다 못할 정도로 갖고 있는 일상적인 경험 중 한 부분이다. 그런데도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사건 발생 이후 때문이다.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로 구조되었던 한 분이 당시 산행 동료와 함께 몇 개월이 지난 후 건강한 몸으로 대원들을 찾아 온 것이다. 승용차에는 라면을 잔뜩 싣고 와서는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돌아갔다.
 
"그런 일이 1년에 한 번씩만 있어도 누적된 피로가 싹 가시죠. 그 순간에는 정말 내 일에 대한 보람을 느껴요." 2교대 근무. 그나마 출근한 다음날 아침 9시에 퇴근을 해서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비상소집이 있으면 다시 복장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서야 한다. 요즘도 영동과 옥천 지역의 수해현장을 정리하기 위해 근무가 아닌 날에는 현장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이런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선택에 후회를 하지 않는 것은 `보람' 때문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도 물에서 아들의 시신을 건져준 구조대원을 찾아와 고마움을 전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한참만에 만난 자신을 알아보고 고맙다는 말을 건네는 이웃들의 모습에서 정 대원은 그런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때로는 섭섭함을 느낄 때도 있다. 위기의 순간에 급한 마음이 드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출동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욕설을 듣는 경우도 간혹 있다. 그러나 구조대의 업무 자체가 단속이 아닌 `봉사 행정'이기 때문에 많은 주민들이 호의를 갖고 있다고 정성우씨는 설명한다.

"정성우 대원이요. 최고죠. 흠잡을 데가 없어요. 두 사람 몫은 할 껄요. 결혼을 안 한 것 빼고는 단점이 없는 친구죠." 박병호 구조대장의 평가다. 결혼 얘기가 나오면서 정성우씨는 `아직 만으로 서른 두 살밖에 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만으로 서른 두 살인 구조대원 정성우씨는 "지금의 삶에 충실하고 싶다"는 바람을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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