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면 가수 최창호씨
청산면 가수 최창호씨
함께사는 세상 [83]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2.08.29 00:00
  • 호수 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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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간직한 청산면 가수 최창호 할아버지. 제7회 여성주간을 맞아 지난 7월5일 실버가요제에서 1등을 차지했다.

지난 26일 옥천읍 국일식당에서는 작은 잔치가 벌어졌다. 옥천군노인대학 수업을 마치고 식당을 찾은 대학생들이 점심식사를 같이 하는 것이야 늘 있는 일이지만 이날 식사 자리에는 기분 좋은 맥주를 곁들였다.
 
제7회 여성주간을 맞아 지난 7월5일 관성회관에서 열린 `실버가요제'에서 1등을 한 이 대학교 학생인 최창호(72)씨가 낸 술이다.  할아버지에게는 친구들에게 술 한잔 낼 정도로 기쁜 일이지만 그렇다고 예사로운 일은 또 아니다. 이미 할아버지에게는 무대와 상을 받는 일이 낯설지 않다.
 
"내가 취미로다가 노래는 많이 불렀지, 지방 무대는 거의 안 빼먹고 나갔을 걸"  공설운동장에서 지난 95년도에 있었던 전국노래자랑에 나가서는 인기상을 받았고 지난해 노인의 달 행사로 충청북도에서 열린 노래자랑에서는 군 대표로 나가 커피포트도 들고 돌아왔다.
 
"어디 나가면 나 혼자 잘난 척 하지. 젊었을 때부터 노는데는 나 빠지면 재미없다고 그랬으니까. 관광버스나 마을 잔치에서도 내가 마이크를 잡아야지." 태어날 때부터 신명을 타고 난 할아버지. 할아버지와 막 얘기를 시작하고 있을 때 할머니 한 분이 슬그머니 다가와 눈짓을 한다.
 
먼저 나가 있겠다는 눈짓이었다. 그런 할머니를 할아버지가 손짓을 하며 불러 앉힌다. 주위에서도 옷자락을 잡자 마지못해 자리에 앉는 할아버지의 반려자 이정여(67)씨다. "별로 고생 안 하신 것처럼 고우시네요. 할아버지가 평소에 잘 해주시나 봐요?"
 
"아이구 오늘은 (얼굴에)뺑키칠 해서 그렇지 어제도 깨 터느라고 죽을 뻔 봤어.(웃음)" 할아버지는 어디를 가도 꼭 그렇게 할머니와 함께 한다고 한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무대에 오른 모습은 한 번도 빼 놓지 않고 모두 지켜본 할머니다.
 
지금 노인대학도 함께 다닌다. 말하자면 캠퍼스 커플이다. 흔하지 않은 경우라고 한다. 같이 학교에 다니는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고 말하는 순간 할머니가 비밀을 털어놓는다. "아저씨는 재 입학생이야. 원래 2년이면 졸업인데 4년째 다니고 있다니까."
 
"맞아. 원래 안 되는데. 좋은 걸 어떡해 대학에 나오면 역사, 교양, 세상사는 이치, 건강, 두루두루 배우니까 좋지. 안 된다는 걸 사무장 막 졸랐지. 동성교회노인대학에도 다녀. 거긴 1학년이야." 할아버지의 직업을 `대학생'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한 달에 두 번씩 대한노인회 옥천군지회에서 운영하는 노인대학에 나오고 매 주 목요일에는 동성교회로 등교한다. 청산농협에서 한 차례 운영했던 노인대학도 당연히 수료했다. 특히 지금 1학년인 동성교회노인대학에는 절대로 안 빠진다. 어쩌다 대한노인회 옥천군지회에서 운영하는 노인대학과 동성경로대학의 수업이 겹쳐도 동성노인대학을 선택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거긴 개근상을 주거든 그 거 받아야지. 또 올해 1학년이기 때문에 빠지면 안 돼" 지금도 논 2천평, 밭 2천평에 농사를 짓고 있지만 조금만 부지런하면 대학에 다니는 것은 아무 문제도 안 된다.  "참 멋지게 사는 양반이여, 열심히도 살고. 아마 봉사활동도 할 걸."
 
할아버지가 노인대학에 나오면서 사귄 형님 이문수(75·노인대학 학생장)씨가 곁에서 가만히 듣다가 한마디 거든다. 한참 대화가 끝나갈 때쯤 국일식당 조현순 사장도 음료수를 내오며 `노래를 그렇게 잘 하세요. 한 번 해보세요'라며 부추긴다. "아 밴드마스타 불러와, 그러면 내가 한 곡 하지 뭐."  정중하게(?) 청을 거절한 할아버지는 내처 한 마디 더 보탠다.


"앞으로는 자발적으로 노래자랑에 못 나갈 거 같아. 누가 나가서 해 보라고 그러면 모를까. 이젠 내가 먼저 못하겠어." 분명 무대에 서지 않겠다는 선언은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청산면 백운리가 고향이고 지금도 그 곳에 살고 있다.   2년8개월 동안 부산에서 군대생활 한 것 빼고는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 부모가 있었고 농토가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아. 노인대학 있으면 다녀야지. 즐겁게 살자, 명랑하게 살자, 건강하게 살자가 신조라니까."  또 한 번 할머니를 설득하느라 진을 뺀 후 부부의 모습을 간신히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사진을 찍은 후 뜨거운 햇살 아래 나란히 걸어가는 노부부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이의 웃음만큼이나 환한 웃음을 갖고 있는 최창호씨가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는 `일편단심 민들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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