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북면 추소리 이의순씨
군북면 추소리 이의순씨
함께사는 세상 [82]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2.08.20 00:00
  • 호수 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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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순(67)씨의 고향은 보은군 삼승면이다. 스무 살 되던 해에 군북면 추소리 추동 마을의 문화 유씨 집안에 시집을 왔다. 농민문학가 유승규씨의 둘째 남동생인 유재구(75)씨에게다.
 
"오빠가 순경이었는데, 보고 와서는 `네 시아주버니가 너 굶기지는 않겠더라'면서 시집가라고 그래서 왔지 뭐. 그 때야 서로 얼굴이나 볼 수 있었나. 사진 한 장씩 주고받은 것이 전부지. 속았어."
 
"그래도 할아버지 젊었을 때는 인물 좋으셨겠는데요. 키도 크시구요."
"옷 차려 입고 밖에 나가면 빠지진 않았지…."
 
검게 그을린 얼굴로 깨를 털고 있는 손길을 멈추지 않는 할머니는 곁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할아버지를 쳐다본다. 그 짧은 순간 할머니의 표정은 많은 감정을 담는다. 함께 한 50여년 흔적이 모두 묻어난다. 할아버지는 오랜 지병으로 많이 쇠약해 있었고, 치매 기운도 있다. 할아버지 유재구씨는 깨를 베어 단으로 엮어 세우는 할머니 곁, 밭이랑에 가만히 앉아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다. 가끔 참견도 하고 미소도 짓는다.

할머니가 추동에 들어와 산 날은 보은에서 산 날보다 세 배는 더 길다. 그 긴 삶을 할머니는 `일만 태나게 했다'는 말로 정리한다. 돌이켜 생각하면 하루종일 일했던 생각만 난다. "고생 많이 했지. 일만 태난겨, 이적지 일만 태난겨. 내가 집에 돌아갈 길을 몰라서 안 갔지(웃음)"
 
할머니의 형제는 11남매. 그 중에 `천방지축 쫑말이'(할머니 표현)였다. 보리밥이라고는 모를 정도로 부유한 집안이었다. 이런 집안에서 `이의순'씨의 위치가 어디였는지 충분히 가늠할 만하다. 그렇게 귀여움에 치여 살았던 처녀 때에 비하면 추동에서의 삶은 `새로운 것에 대한 낯섦에서 오는 어려움' 이상이었나 보다.
 
"저녁만 먹으면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서 들어온 길 쳐다 보는겨. 집에 가고 싶어서. 시집 올 때 경찰차 타고 들어 왔거든(할머니는 손을 들어 당시 들어온 길을 가리킨다). 그러니 갈 길을 알아야지. 그러고 들어와 누우면 너구리 우는 소리가 어찌나 무섭던지." 이런 새댁을 다독여 준 것은 당시 남편의 당숙모였다. 당숙모말고는 왜 새댁이 설거지만 하면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는지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수몰되면서 마을 인심 다 버렸다니께, 추동에 살 적에는 을매나 재미있었는디. 니꺼 내꺼도 없었다니께. 점슴 먹으러 들어와서 솥 열어보고 밥 없으면 옆집 솥에서 밥 가져다 먹어도 암치도 않았지. 그 뿐이여? 밤이면 강가에 나와서 모두 놀다가 그냥 내처 잠자고 아침에 들어가서 아침밥 지어먹고 나왔다니께. 또래 친구들이랑 강가에 모여서 적 부쳐먹고, 노래부르고 놀았지. 또 비만 조금 내리면 소쿠쟁이 하나 들고 가서 강 한 번 긁으면 시커먼 도슬비가 하나가득 이었어. 모래무지도 잡아서 된장 넣고 지져서 밥 먹고 그랬지. 집에 가다가 넘의 집 담 너머로 자란 호박도 그냥 뚝 따다가 된장 지져 먹고, 그래도 누가 뭐라는 사람 하나도 없었어. 서로 그렇게 인심 있게 살았다니께."
 
수몰되기 전 추동마을의 기억을 풀어놓는 할머니의 얼굴에 신명이 난다. "그냥 일하고 힘든 기억밖에 없다면서요?"

"그래도 동네 사람들이랑 어울려 사는 것은 재미있었어. 지금도 친척 시동상들 만나면 그 때 얘기 헌다니께. 그때가 좋았지. 얼마나 좋았으면 꿈을 꿔도 꼭 수몰되기 전 추동마을이 나오지 지금 살고 있는데는 안 나와. 그 때가 대단했지. 문화 유씨 집성촌이어서 100여호 되는데 타성바지는 산지기 한 사람이었다니까. 체육대회 나가면 대단했지." 그렇게 힘든 삶을 살아온 할머니를 지탱해 준 것은 어쩌면 살가운 이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좋았던 추동마을에서 밀려나 추동과 부소무니라는 두 개의 마을 이름을 합해 지은 `추소리'에 산지 이제 햇수로 27년째다. 10년만 있으면 대청호를 바라보며 `저쯤에 뭐가 있었는데' 회상할 원주민들도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할머니는 말한다. 강 건너로 이사를 오면서 마을 부녀회에서 공동으로 운영했던 조그만 가게를 맡아 경영해온 이의순씨. 이제는 받아 놓은 음료수만 모두 팔면 그것도 그만 두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몸에 부치기도 하지만 더 이상 할머니의 가게를 찾는 사람들도 많지 않아서다. 그나마 동네 사람들이 담배만 잊지 않고 사갈 정도다.
 
"요즘? 농사일 하느라고 정신 없지. 겨울에는 경로당 가서 윷놀지. 돈내기도 안 하고, 그냥 말로 `내가 몇 번 이겼다'하는 건데. 서로들 뭔 그 야단을 떠는지. 그게 재밌고 우서 죽겄다니께…(웃음)." 봄, 여름, 가을까지는 자식들 거둬 먹일 밭농사를 짓고, 겨울이면 할머니도 그 틈바구니에 끼어 윷을 놀고, 또래 친구들과 모여 추동에 살던 시절 기억을 더듬는 것이 소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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