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대로 종주하고 돌아온 세친구 - 유정길, 전솔민, 홍덤의
호남대로 종주하고 돌아온 세친구 - 유정길, 전솔민, 홍덤의
함께사는 세상 [81]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2.08.16 00:00
  • 호수 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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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부터 홍덤의, 전솔민, 유정길군

"그리고 솔직히 엄마, 아빠가 나를 이런 곳에 보낸 것이 정말로 원망스럽기만 하였다.

하지만 나는 고생을 너무 하지 않고 편하게 자라서 이렇게 걷기만 해도 온몸이 다 쑤시고 아픈 것 같다. 이제부터는 집에서나 밖에서나 내 생각만 하지말고 모든 사람을 생각하고 배려하면서 고생은 피해 다니는 사람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집에 가면 많은 일을 도와드릴께요." -7월26일 금요일. 정길이의 일지 `첫걸음' 중에서-

아직도 방학이다. 의지만 있다면 학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전혀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이 주어짐을 의미한다. 방학동안 우리 지역의 초등학교 6학년 세 친구가 `한국탐험여행'(연맹장 강석우)에서 주최한 `호남대로 탐사대'로 국토를 한 걸음 한 걸음 밟고 돌아왔다.
 
지난 7월25일부터 8월8일까지 있었던 `호남대로 종주탐사'에 참가했던 유정길, 전솔민, 홍덤의 세 학생은 모두 삼양초등학교 6학년이다. 유치원부터 함께 학교를 다닌 셋은 이번 탐사에도 함께 했다.
 
천안에서 시작해 공주를 거쳐, 논산, 왕궁, 완주로 이어졌고, 정읍과 광주, 나주, 강진, 이진포, 제주, 마라도, 다시 제주, 인천, 수원, 경북궁에서 14박15일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위험한 구간이거나 부득이한 경우 배와 버스를 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배낭을 짊어지고 두 발로 걸었다. 어머니의 따듯한 보살핌도, 편안한 잠자리도, 재미있는 텔레비전과 게임도 모두 팽개치고 떠난 길이었다.

물과 가족의 소중함 알게 된 `정길'
"물을 조금 밖에 못 먹은 것이 가장 힘들었어요. 물의 소중함을 배웠어요. 물 때문에 싸움도 일어났거든요. 형들이랑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어요. 장배형이 제일 생각 많이 나요 저한테 잘 해 주었거든요." 정길이는 첫날을 제외하고는 걷는 것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물을 마시는 것이 엄격하게 통제돼 마음껏 마시지 못한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지금은 다시 안 가구요. 어른되면 갈 거예요. 그러면 차도 태워 주고 밥도 혼자 먹을 수 있구요."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아이들을 인솔한 각 대장들(어른)은 가끔 차도 타고 밥도 혼자 먹었다고 한다. 특별히 혼자만 차를 탈수도 없었고 밥도 네 명이 한팀이 되어서 먹어야 했던 정길이는 그 것이 제일 부러웠던 모양이다.
 
"아깝지 않아요. 형들도 많이 사귀었구요." 14박15일의 탐사로 방학의 절반을 보내 버린 것이 후회되지는 않는다고. 위로 누나들 밖에 없는 정길이에게는 형들을 사귄 것이 소중한 경험인가 보다. 이메일 주소도 받아왔다면서 연락도 할 것이라고 자랑이다.

가족의 소중함 느낀 `덤의'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어요. 엄마 아빠가 제일 보고 싶었거든요." 덤의는 가족의 소중함과 함께 이번 탐사를 통해 자신의 변한 점도 얘기한다. "예전에는 금구리에 있는 가게에서 집이 있는 장야리까지도 걸어가기 싫었는데 이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노령고개하고 차령고개 넘어갈 때가 정말 힘들었어요." 덤의의 입에서 각 지명이며 고개 이름들이 막힘 없이 술술 풀려 나온다. 지도책을 펴놓고 공부하는 것보다 자신의 발로 직접 밟으며 걸었던 그 곳들이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가 보다. 고개를 넘는 것이 힘들긴 했지만 각 도의 경계를 넘어갈 때는 `기분이 좋았다'며 나름의 느낌도 설명한다. "시간을 많이 보낸 것이 조금 아깝기도 한데 유적지들을 둘러본 것이 좋아서 괜찮아요." 동생이 없는 막내 덤의는 이번 탐사에서 동생들을 사귄 것도 좋은 기억이라고.

친구들과의 협동심 배운 `솔민'
"물의 소중함하고 친구들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협동심도 배웠어요. 어깨 걸고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벌을 받으면서요." 느낀 것도 있고 탐사에 나선 것이 후회되지는 않지만 또 갈 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망설였다. 대신 친구들끼리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단다. 그러더니 곧 `길을 잘 아는 어른 한 명이 따라 가야 된다'는 조건을 붙인다.
 
솔민이의 탐사 얘기에서는 유독 초코파이 얘기가 많이 나왔다. 평소에 그리 좋아하던 과자도 아닌데. 이번 탐사에서 `배도 부르고 맛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 솔민이의 설명이다. 집에 사다 놓고 잘 때면 머리맡에 놓는다고 한다. 밖에 두면 아빠가 다 먹는다나. 얘기도중 10km를 걷는데 얼마나 걸릴지가 잠깐 화제로 떠올랐다.
 
"5km에 한 시간씩 10km는 두 시간이면 걸어요" 솔민이는 망설이지 않고 결론을 말했다. 솔민이가 이번 탐사에서 얻은 소중한 것 중 하나는 자신감인 것 같았다. 10km는 두 시간이면 걷는다고 큰소리치는 모습이 분명 그 나이 또래의 허풍과는 달랐다.

"드디어 경복궁이 보인다. 엄마, 아빠, 누나들 내가 간다. 흑흑흑 너무 보고 싶었던 가족들을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이렇게 기쁜 날 울면 안되지! 이런 생각으로 울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그리운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8월8일 목요일. 정길이의 일지 `드디어 경복궁 입성' 중에서-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아이들의 경험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왔다. 굴러다니는 페트병을 주워 몰래 가지고 있다가 물을 담아 쉬는 시간마다 셋이 모여 나눠 마신 얘기. 안경테가 부러진 덤의를 위해 솔민이가 헤드렌턴을 비춰주며 함께 밤길을 걸었던 얘기. 야간 도보를 하며 한참을 걷다보니 갑자기 해가 떠올랐다는 얘기. 침낭 속에 들어가 노숙을 하던 중에 비를 만나 식수대로 급히 피했던 얘기.
 
급기야는 그렇게 힘들었다던 탐사가 `친구들과 노래부르고 얘기하면서 걸으면 하나도 안 힘들었던 탐사'로 정정되기까지 했다. 다시 그 때가 생각나는지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때로는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아달라는 표정으로 쏟아놓는 그들의 표정으로 봐서는 `호남대로종주탐사'가 세친구에게 작은 경험은 아니었나 보다. 아직은 논리적으로, 화려한 어휘로 자신의 경험을 포장할 줄도 모르는 세친구들이지만 분명 이번 여름방학동안 일을 저지른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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