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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한 줌, 바람 한 모금, 지저귀는 새 소리. 오랫동안 꿈꿔왔던 산촌. 조급함이 밀려왔던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시골 옥천에 머문 지 어느덧 12년. 자연이 주는 생동감에 처음부터 반했다. 공방 옆 이지당이 보물처럼 다가왔다. 내 발로 느리게 걷기, 나를 묵묵히 바라보는 시간. 들숨과 날숨은 점점 깊어져 간다. 내 안의 진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흙을 만지고, 그림을 그리고, 색을 바르며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마음이 가는 대로 선과 면을 이어 입체의 세계에 침잠했다.내 마음속 깊은 곳, 무엇이 있는지 모르며 지냈다. 아니, 애써 외면했던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가려졌던 그 속내를 옥천에 와서야 마주했다. 옥천은 바로 그런 곳. 처음에는 바깥 구경만 하다 한나절이 훌쩍 지나가기도 했다. 작업하고 바람 쐬기를 반복, 이제야 자리를 잡았다. 내면에 일어난 열정을 꽉 붙잡고 모든 걸 쏟아냈다. 하루가 참으로 짧구나. 온몸과 심혼을 담아 하나의 작품이 힘겹게 나온다. 고되지만 평온하다. 사람 손으로 빚은 작품은 같은 게 하나도 없다.너도나도 행복을 바라며 산다. 사람들은 “나는 네가 행복하길 바래”라고 이야기한다. 행복이 어디 땅에서 솟아나기라도 할까? 끊임없는 언어의 유희가 아닌 진심의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 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었다. 예술은 자기표현을 하는 것. 어쩌면 행복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 않을까, 우리만 모를 뿐. 그리하여 나도 당신에게 이 말을 건네고 싶었다. “이곳에서 당신이 행복하길 바래요”라고, 옥천에서 행복을 찾았듯이. 나의 옥천은 행복하다.'옥천유희2'를 주제로 열 번째 개인전을 연 김미경 도예가를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전시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지난해 서울 갤러리세인에서도 같은 주제로 개인전을 했다.■ 실재와 상상이 넘나드는 이지당 풍경지난 11월17일부터 27일까지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전시실에서 김미경(57, 군북면 이백리) 도예가의 열 번째 개인전 <옥천유희II>가 열렸다. 전시 소제목은 ‘옥천에서 행복하길 바래’. 작품들은 산과 물의 풍경을 추상화한 백자 평면, 기물에 민화 형식의 꽃과 무더기를 그린 분청 입체 두 가지로 나뉘었다. 군북면 이백리에서 이지도예공방을 운영하는 김미경 씨는 옥천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어 설레는 마음으로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오랜 작업을 거쳐 사람들을 만나는 이 시간이 휴식이나 다름없다.“시아버님 고향이 군서면 사양리예요. 선산이 군서에 있어서 결혼하자마자 옥천에 왔죠. 남편 직장이 있던 서울에서도 지내고 대전에서 도예 공방도 했는데요. 다 정리하고 왔어요. 제 고향은 경북 포항인데요. 그전에는 바쁘게 살아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옥천에 지내면서 어느 순간 저 자신을 발견했어요. 멈춰 서서 바라볼 수 있었죠. 나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마음이 생겨났어요.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환경, 공간이 저를 달라지게 한 요인이 아닌가 싶어요.”이지당의 여름 1, 2 (백조형토)왼쪽부터 '산과 들, 꽃과 풀 2', '이지당' (백자)푸른목단 1, 2 (백조형토)이번에 전시된 작품 중에 이지당을 배경으로 한 그림들이 많았다. 김미경 씨는 이지당 주변을 걸어 다니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변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봤다. 이지당 앞 강가에 노니는 물고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옥천의 또 다른 모습을 떠오르곤 했다. 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갈 정도로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관찰하는 시간이 자연스레 길어졌다. 물고기, 어사화, 부귀영화의 의미가 담긴 모란까지 실재와 상상을 넘나드는 이지당 풍경 이모저모를 작품으로 승화했다.■ 도예에 집중하며 신앙심은 더 깊어졌다대학교에서 도자기기술학과를 전공하는 등 20년 이상 도예에 몰두한 그 역시도 중간중간 깨지고, 갈라지는 시행착오가 늘 따라왔다. 어느 작품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어떤 유약을 쓸지, 이번에 녹색으로 할지, 따스한 발색을 가져갈지 정하는 일은 매번 어려웠다. 결이나 두께도 제각각. 유약과 불의 세기에 따라 우연의 효과를 기대야 할 때도 생겼다. 알면 알수록 변화무쌍한 도예 세계다. 이번 전시를 관람한 옥천미술협회 회장이자 압화 작가 이미자 씨가 전한 소감이다.“여러 그림을 봤지만 정말 예쁘고,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은 작품도 보여요. 흙으로 직접 만들었다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요. 저도 도예를 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예요. (김미경 선생님이) 협회 회원이에요. 이번 개인전으로 우리 회원들을 모시는 장이 돼서 보람 있고 뿌듯하고 감회가 새롭네요.”옥천유희 (흑조형토)옥천유희 (흑조형토)이지당의 풍경 1 (백조형토)푸른항아리 (분청토)장군병 (분청토)김미경 씨는 옥천성당을 다니고 있는 천주교 신자다. 세례명은 마크리나(MACRINA). 성당에 다닌 지 30년이 지났다. 이번에 전시한 십자가의 길(14처) 작품은 온전히 신앙심의 발로였다고 볼 수 있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이 사형선고를 받으면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14가지 장면으로 표현한 것. 이 작품은 순천 예수회 주문을 받아 12월6일 축성식을 앞두고 순천으로 보냈다. 장장 8개월이 걸렸다. 도예를 하면 체력 소진도 되고 중간중간 고비도 찾아오지만 그때마다 신앙의 힘이 버팀목이 됐다.“제가 옥천성당에 처음 왔을 때 김인국 신부님이 계셨는데요. 도움을 많이 주셨죠. 그분께서 옥천에 잘 적응할 수 있게끔 많이 도와주셨어요. 신부님이 건강하게 옥천에 정착했다고 표현해주시더라고요. 외지에서 온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저는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고 왔지만 신부님은 많은 분을 만나봤을 거잖아요. 되게 편안하게 잘 정착했다고 하시더라고요.”'MACRINA-십자가의 길(14처)' (백조형토)십자가의 길(14처) 중 한 작품.옥천성당 부설 소화어린이집 김지은 원장은 7세 원생들을 데리고 같은 성당에 다니는 김미경 씨 개인전을 보러 왔다. 그는 이지도예공방에 찾아가 아이들과 흙을 만지고 그릇을 만들어 간 경험이 있어 작품들이 친숙하다고 말했다. 김지은 원장은 “이지당을 중심으로 옥천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며 “김미경 선생님 개인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모습을 아이들과 나누게 되어 기쁘다”며 소감을 전했다.■ ‘옥천에 사는 모든 분이 행복하길 바래’김미경 씨는 공방에만 머물지 않고 옥천에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치매안심센터에서 인지재활강사로 4년 그리고 복지관에서 도예강사로 2년째 활동 중이다. 매주 하루 2시간씩 어르신들과 도자기를 만드는 수업은 내년에도 이어갈 예정이다. 도예 수업을 통해 어르신들의 마음을 풀어주고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라고 그는 말한다. 처음엔 도예를 어렵게 느껴 부담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얻는다고.“흙장난처럼 자유롭게 느낄 때 부담이 없으세요. 이지당을 주제로 만들어보기도 했는데 얼마나 재미난지 몰라요. 꼭 굽지 않아도 돼요. 그 상태에서 머물 수도 있거든요. 소꿉놀이처럼 해보자고 말씀드리면 금세 마음이 풀어지고 편안해져요.”남천나무를 좋아해 호를 ‘남천’이라 지었다. 그에게 도예는 일상이자 삶이다. 화려하거나 특별하진 않아도 평범함 속 비범함이 있다. 어릴 때부터 흙을 좋아라 했다. 냇가에 삐뚤고 깨어진 사금파리를 발견하면 귀하게 여겼다. 위에 음식을 올려놓곤 했다. 그때부터 마음이 트였다. 유년시절 유난히 행복하고 따스했던 추억이 하나씩 있다. 그는 엄마가 옛날에 자주 사줬던 니트를 지금도 즐겨 사 입는다. 까슬하고 싫지만 니트를 자주 입게 된다. 내 안에 깃든 향수를 간직하며 산다. 옛날 친구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현재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감사함을 느낀다.“옥천은 따스하면서도 밝고 희망적인 곳이라는 느낌을 받아요. 살면서 주변 풍광이나 모든 게 다 좋잖아요. 마음도 순화되고요. 이번 전시 소제목처럼 ‘행복하길 바래’라고 말하고 싶어요. 옥천에 사는 동안 다들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해요. 저는 신앙이 있는 사람이라 많은 사람을 위해 기도는 못 하지만 항상 그런 마음을 자주 가져요. 모든 분이 잘 되길 바라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김미경 도예가가 작품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인물일반 | 윤종훈 기자 | 2022-12-01 15:27

30년간 참 많이도 변했다. 나도, 내 고향 옥천도. 장날만 되면 발 디딜 곳 없이 북적이던 시장은 상가들이 차지했고, 진흙밭이던 금구천엔 주차장이 들어섰다. 치열한 열정을 가졌던 91년 젊은 나도, 옥천을 따라 많이 변했다.옥천에서 나고 자라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이른 나이에 결혼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인생의 초점을 생업에 맞추니 자연스레 사진은 흐려졌다. 딸아이들을 모두 대학에 보낼 때가 되니 그제야 다시 사진이 보이더라. 거창한 카메라도 필요 없었다. 핸드폰으로 옥천을 담고, 소박한 목표를 세웠다. 내 세월을 담은 사진집을 내보자고. 그러다가 좋은 기회가 왔다. 작년에 충북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개인전 ‘환생시리즈’와 ‘옥천愛 머물다’를 열었다. 그리고 10월19일, 옥천전통문화체험관서 옥천의 향수를 담은 사진전 ‘시간의 풍경’을 열고 본인의 첫 사진집을 냈다. 세월이 옥천이니 옥천을 전시했다. 1991년 당시 사진영상학과 학생이던 서상숙(52, 옥천읍) 씨가 대학 과제로 받은 주제 ‘고향’의 사진을 제일 먼저 전시관 입구 옆에 걸었다. 젊은 날의 열정이 담겨있던 흑백의 사진과, 다시금 타오른 지금의 열정이 만나니 관람객들은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91년의 옥천과 지금의 옥천을 같은 자리에서 찍어보고, 그 향수를 사진에 담았다. 그게 이번 전시회의 제목 ‘시간의 풍경’의 부제가 ‘향수(鄕愁)’인 이유다. 길가에 있는 주인 없는 의자, 한 그루 나무도 전부 옥천의 세월을 담고 있었다. 그 30년의 세월을 모아 꿈이던 본인의 사진집을 내고, 심사숙고한 60여점의 사진을 전시하며 개인전 ’시간의 풍경’을 연 서상숙 작가를 만났다.    “존재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말이 참 좋더라고요. 예를 들어 아름다운 꽃이라도 버려지면 그건 가치가 없는 거예요. 그 모습을 필름에 담고, 그 가치를 기록하고 보여주는 게 바로 사진을 찍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 모든 것엔 저마다의 존재가치가 있다. ‘시간의 풍경’ 사진전엔 91년의 옥천과 30년이 흐른 지금의 옥천 사진들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 바로 왼편에는 사진집의 표지인 ‘91년 옥천역 하행선’ 사진이 걸려있고, 그 옆으로 서상숙 작가가 대학시절 과제로 찍은 고향 옥천의 사진들이 흑백 필름으로 기록돼있다. 그 맞은편엔 서 작가의 일상 속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옥천의 일상 사진들이 걸려있다. 집 앞에 놓여있는 화분부터 나무와 시장 사람들까지 그에겐 모두 소중한 가치를 지닌 피사체다. “이번 사진전의 큰 주제는 일상적인 것들의 존재를 인식하는 거예요. 30년 전 옥천의 모습들과 현재의 옥천 사진을 연결해서 볼 수 있는 사진을 골라서 전시했죠”서 작가의 말대로 전시된 사진들을 보다 보면 관람객들은 같은 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는 예전엔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진 것들을 담고 싶었다고. “예전에는 공판장이라고 해서 시장도 사람이 붐볐죠. 금강 휴게소에 있던 작은 다리도 없어졌고요. 제가 어릴 적에 시장 동네에서 컸는데, 지금은 동네가 다 없어지고 주차장이 됐어요. 제가 기억하는 흔한 일상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했는지 전시하고 싶었어요”■ 사진은 감정을 찍는 것, 그리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사진은 내가 느꼈던 그때의 감정을 기록하는 일이다. 카메라든 핸드폰이든 상관없다. 그 상황을 인식하고, 느낄 수 있는 눈과 마음만 있다면 뭐든 찍을 수 있고,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저는 존재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말이 참 좋더라고요. 예를 들어 아름다운 꽃이라도 버려지면 그건 가치가 없는 거예요. 그 모습을 필름에 담고, 그 가치를 기록하고 보여주는 게 바로 사진을 찍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이번 사진전에도 서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옥천을 주제로 한 만큼, 옥천을 향한 서 작가의 애정과 향수를 가득 느낄 수 있다. “전시회에 오셨던 분들 중에 모녀가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엄마때는 옥천이 이랬어’ 하면서요. 엄마의 시간과 딸의 시간이 제 전시회에서 공유되고 있다는 걸 느꼈는데, 제 의도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 뿌듯하더라고요”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전시실에서 서상숙 작가의 개인전 ‘시간의 풍경’이 열렸다.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전시실에서 서상숙 작가의 개인전 ‘시간의 풍경’이 열렸다.■ 3대째 이어져온 사진의 DNA, 딸과는 30년 선후배 사이로피는 못 속이는지, 이번에 서 작가의 막내딸도 같은 대학 패션사진학과에 진학해 30년 선후배 사이가 됐다. 윗대의 할아버지도 사진을 했으니 3대째 사진 작가를 배출한 사진 집안이다. “이번에 막내딸이 제 후배가 됐어요. 제가 91학번이고 딸이 22학번이니 30년 차이 선후배네요. 제 윗대 할아버지도 사진을 하셨으니까 정말로 저희 집에 사진의 유전자가 있나 봐요”서 작가는 91년도 학교 과제를 위해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을 때의 모습을 딸에게서 보고 있다. 그것도 어쩌면 서 작가의 ‘시간의 풍경’이 아닐까. “무거운 카메라를 매일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대견해요. 제가 디지털 세대가 아니라서 가끔 딸이 모르는 걸 알려주기도 하고요. 딸이 요새 사진 트렌드도 잘 알고 있어서 제가 많이 배우고 있어요. 기회가 되면 엄마와 딸의 사진 전시회도 해보고 싶어요”서상숙 작가는 항상 사진 생각뿐이다. 벌써 내년 예정인 사진전의 주제도 생각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사진전을 준비하는 그 시기가 휴식이라는 서 작가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어떤 ‘풍경’을 만들지 기대해본다.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전시실에서 서상숙 작가의 개인전 ‘시간의 풍경’이 열렸다.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전시실에서 서상숙 작가의 개인전 ‘시간의 풍경’이 열렸다. 

인물일반 | 주찬식 인턴기자 | 2022-10-27 23:27

편집자주_ 삶의 무게를 내려놓자 눈앞에 하늘이 나타났다. 가슴을 활짝 열며 하늘을 바라봤다.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 그림을 그려보겠노라. 하늘은 나의 캔버스. 푸른 하늘, 노을, 태양, 밤하늘, 나무 잎새, 구름을 있는 그대로 담았다. 너무 화려할 필요 있을까. 그저 순탄하게. 자연적인 것이 감사하고 좋다는 걸 느낀다. 인생도 그렇다. 자연적으로 살아야 어떤 과한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열심히 살았던 만큼 자주 우울해지고, 누군가를 믿었던 만큼 불안해하며 사는 우리네 인생. 그래도 그림 그릴 때만큼은 자유로웠다. 하고 싶은 걸 하니까. 자연과 닮아가는 내 모습을 보며 나를 다독였다.지난 9월21일부터 26일까지 옥천전통문화체험관 관성관에서 특별한 전시가 열렸다. 정가매(67, 읍 수북리) 작가의 첫 개인전으로 주제는 <Dream-Story of sky>, 바로 ‘꿈-하늘 이야기’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 41점은 대청호, 삼청리 저수지, 석탄리, 지양리, 매화리, 동이면 금강 주위, 추소리 등 그가 일상에서 본 옥천 자연환경과 타지에 가서 찍었던 풍경 사진들을 배경으로 했다.정가매 작가는 1997년 홍익대학 화우회전(서울시립미술관)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현대미술여류작가전(대전 고트빈갤러리, 2022), 제55회 한국미술협회전(서울 예술의전당, 2021), 제20회 부산국제아트페어(부산엑스코, 2021), 옥천미술협회 정기전(2012~2021) 등 여러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번에 생애 첫 개인전을 옥천에서 열었다. 직장과 가정 모두를 챙겨야 했던 그는 전업작가처럼 그림에 전념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품었던 화가가 되고 싶은 꿈마저 내려놓지 않았다.“전시회는 나를 발가벗고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일이잖아요. 되게 부끄럽고, 불안하고, 가슴 떨리는 일인데요. 첫 전시회를 열어서 감동이 일어났지만 ‘잘 돼야 하는데’ ‘잘 그렸나’ 자문자답이 생기네요. 좋기도 하면서 불안한 떨림이 있어요. 마치 심판을 받는 기분이죠.”정가매 작가 ■ ‘언니, 저 옥천에 잘살고 있어요’정 작가가 옥천에 정착한 지도 어느덧 32년이 지났다. 경상남도 진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중·고등학교 때 미술부 활동을 했다. 그러나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미술대학이 아닌 서울여대 농촌과학과에 진학하며 그림과 잠시 이별하는 듯했다. 당시 ‘농촌을 과학화하자’는 시대 흐름에 따라갔는데 결과적으로 전공을 살리지 못 했다. 그는 서울서 개인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시부모님이 사는 옥천에 터를 옮겼다. 그렇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잠깐 머물다 갈 생각이었던 옥천에 지금까지 살 줄 그때만 해도 몰랐다.“저도 이 나이가 되기 전에 욕심이 있었죠. 꿈이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그림 그리는 것, 하나는 사회봉사. 돈 많은 자산가가 돼서 사회에 베푸는 봉사를 하고 싶은 꿈이 있었죠. 결혼하면 다 해결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돌아보니 내게 물질은 주어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림 그리는 재능이 있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끈을 놓지 않았네요. 이 세월을 사는 동안 역경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정말 붓을 놓지 않았어요. 매일 그리진 않아도 머릿속에 그림을 항상 갖고 있었어요. 사람은 꿈을 놓지 말아야 해요. 인생은 자기가 만들고 개척하는 거예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거 하나만큼은 지켜야 하고, 끝까지 끌고 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정가매 작가 개인전이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전시실에서 열렸다.도시 서울에 살다 시골 옥천에 왔을 때 고민과 역경이 찾아왔다. 가족들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막내로 태어나 농사짓는 걸 안 보고 컸기에 시골에 어떻게 사느냐는 우려였다. 이번 개인전을 보러 옥천에 온 큰언니에게 말했다. 이렇게 잘살고 있으니 괜찮다고. 언니가 작품들을 보며 많이 놀란 눈치다. 이렇게 많은 작품을 내보인 적은 없었으니. 옛날에 언니와 나눴던 말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가슴에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눈물을 잠시 글썽였다.옥천에 살았던 세월은 내 안에 있던 욕심을 내려놓는 과정이었다. 옥천의 산천초목을 보며 마음의 치유를 얻었다. 인위적인 추상화나 비구상보다 눈앞에 보이는 자연 풍경이 그림 소재로 다가왔다. 파격적인 그림보다 자연 그대로를 옮겨놓는 회화성을 살리는 데 초점을 뒀다. 자연과 대화하면서 자연적인 정서를 살리니 어느새 그림이 됐다. 정가매(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작가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잠을 줄여가며 그림을 그린 세월새벽 3~4시에 잠에서 깨는 일상이 이어졌다. 아침 7시20분 금강휴게소에 출근하기 전까지 그림 그리고 집안 살림까지 병행했다. 그렇게 올해 첫 개인전을 열었다. 배움의 열정은 누구보다 많았다. 나이 마흔이 됐을 때, 서울에 있는 홍익대 사회교육원에 가서 4년 동안 서양화 공부를 했다. 당시 옥천에서 식당 일을 하면서 말이다. 매주 금요일 새벽 5시15분 첫 기차를 타고 상경했다. 기차만 타면 잠이 스르르 찾아왔다. 8시20분 서울역에 도착하면 화장실에서 화장하고 택시 타고 홍대에 갔다.“잠을 줄여야 했어요. 직장일 해야지, 집안 살림해야지, 그러다 보니 남편이 가사 일을 많이 도와줬죠. 바쁠 때 챙겨주고, 하지 말라고 말린 적이 없었어요. 자꾸 하라고 격려해주니 즐길 수 있었죠. 작년에 부산 벡스코에서 전시하고 나서 내가 그랬어요. ‘여보, 이거 돈 들여서 했는데 집 안에 다 들고 와가지고... 그림을 계속 그려야 해?’ 남편이 그래요. ‘그래도 해야지.’ 그래서 했어요.”서예, 서각을 하는 남편의 이해와 응원이 힘이 됐다. ‘여자가 무슨 그림을 그리냐’ 하면 아마 못 그렸을 것이다. 진정한 외조 덕에 붓을 놓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같은 작가로서 ‘붓을 놓지 마라’ ‘꿈을 놓지 마라’ 잔소리 같은 격려를 많이 했다. 덕분에 1등 몇 개로 좌우되는 자본주의 시대에 마음의 힘,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내면에 깃들었다. 심심하거나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았다.“3년 뒤에는 이제 70살인데 그때 개인전을 한 번 더 할 생각이에요. 저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더 성숙해서 그림을 그리겠다는 다짐이 생겨요. 저는 그래요. 실버 세대라고 해서 두 손 두 발 놓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늦지 않았거든요. 90세까지만 살아도 20년은 할 수 있어요. 그런 거 생각하면 뭐가 늦었나 싶어요. 등산을 하든, 시를 쓰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스스로 삶을 만들어야 해요. 남 탓하며 세월 보내는 사람이 많아요. ‘나는 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해서 못 해’ 그러면 ‘왜 못 하냐’고 하죠. 모든 걸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나는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해요.” ■ 누구의 어머니가 아닌 이름 세 글자로지난달 21일 오후 2시 전통문화체험관 전시실에는 정가매 작가 개인전을 축하하고자 관객 50여명이 찾아왔다. 이날 찾아온 진주여고 동기 동창 최숙희(67, 세종) 씨는 학창시절 정 작가가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은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평상시 하늘을 보면 친구 생각이 난다는 최 씨는 정 작가에게 응원의 말을 전했다. 최 씨는 “친구 집에 가서 작품들도 보고, 지난해 부산 벡스코 전시에도 찾아갔는데 그림을 야무지게 잘 그린다”며 “팍팍 밀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또 다른 진주여고 동기 동창도 이날 찾아왔다. 대학교에서 강의하다 은퇴한 김인선(67, 대전) 씨는 정 작가와 마찬가지로 그림 그리는 걸 취미로 하며 단체전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김 씨는 “다양한 구름을 소재로 그림을 그려 자연 경치의 아름다움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어 좋았다”며 “친구가 제2의 인생을 정말 멋있게 사는 모습을 보며 기뻤고, 실버세대의 좋은 표본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정 작가의 딸도 이날 자리를 빛내주고 있었다. 옥천로컬푸드직매장 생산지원팀에서 일하는 김한지(29, 읍 수북리) 씨는 어머니가 집에서 그림 그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일을 병행하면서 새벽에 일어나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며 자식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김 씨는 “(그래도) 꿈을 잃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려줘서 감사하다”며 “누구의 어머니가 아닌 자기 이름 세 글자로 있어줘서 고맙다”며 축하의 말을 남겼다.정가매 작가는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를 빗대어 첫 개인전을 연 소감을 전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밤마다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 정도로 이번 전시를 기다리기까지 얼마나 가슴 두근거렸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는 지난달 21일 개인전을 보러 온 관객들 앞에 서서 인사말을 건넸다.‘아시다시피 제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전업작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 꿈이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림을 그리는 여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살면서 정말 어려운 시간도 많았지만 작은 꿈을 놓지 않고 나름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 남편이 기를 죽이지 않고 긴 세월을 함께 해줬습니다. ‘해봐, 해봐. 어렵더라도 당신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것이야.’ 그리고 오늘 제가 감히 여러분들 앞에 전시회를 열고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제가 살아온 곳은 경상남도 진주, 성장기는 서울에서 지냈지만 옥천에 산 지 30년이 넘어버렸습니다. 옥천이 제 고향이라 해도 누가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살았습니다. 저도 아스팔트 빌딩만 보다가 옥천에 살면서 이 자연 공간이 너무너무 아름다웠어요. 정말 길에 지나가다 풀 한 포기, 흔들리는 잎 하나만 보더라도 가슴이 떨리고 ‘언젠가는 저것을 그림으로 옮겨야지’ 하는 마음을 갖고 저는 이 옥천을 바라보며 그렸어요.저는 자연 친화적인 그림을 그리거든요. 제 눈에 펼쳐진 자연 자체가 그림이었고, 내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옥천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어 옥천에 사는 것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제 작은 소망을 꿈꾸면서 그 꿈을 실현할 것이며, 아름다운 옥천에 많은 분의 성원에 힘입어 더 열심히 그리겠습니다. 제 작은 전시지만 보시면서 간접적인 자연으로 위로 받아 좋은 시간을 보내시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인물일반 | 윤종훈 기자 | 2022-10-07 1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