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 봉사하는 날이 기다려졌다. 지인들과 어디 놀러가는 일정도 뒤로 미뤘다. 내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지만 기꺼이 썼다. 언제부턴가 봉사가 삶의 큰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 만나는 일이 즐거웠다. 정성껏 만든 빵을 드렸을 때 행복한 미소를 짓는 분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덩달아 좋았다.시설에서 만난 한 어르신이 대뜸 빵이라고 불렀다. ‘선생님, 왜 빵이라 부르세요?’ 물어보면 ‘선생님, 빵 만들어줬잖아. 그래서 빵이라 하는 거야’ 그러신다. 그분 얼굴을 기억도 못 하는데 그분은 날 기억하고 있었다.원생들은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에 만났던 사람을 기억한다고 한다. 가장 행복한 시간을 같이 있어준 사람으로 남는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봉사를 하면 행복하다.지난 9일 동이면에 있는 한 카페에서 옥천다드림봉사단 이경자 회장을 만났다. 이 회장은 우리고장에서 전통발효식품 강사, 어르신 생활관리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전다드림봉사단 팀장으로 활동했던 이경자(54, 동이면 적하리) 회장이 지난 2월부터 ‘옥천다드림’이라는 이름의 봉사단체를 만들어 힘찬 도약을 했다. 봉사단에서 8년간 활동한 이 회장은 옥천과 대전에 있는 장애인 시설, 요양원 등 어려운 이웃에게 찾아가 빵 만들기 봉사에 참여했다.■ ‘봉사하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어요’“옥천다드림봉사단을 만든 이유는 옥천 분들에게 빵을 더 드리고 싶어서예요. 2년 전 옥천에 수해가 났을 때 저희 봉사단이 빵을 3천개 만들어서 수해지역 이웃들에게 무료로 드렸어요. 정말 좋아하셨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옥천 봉사단이 아니기 때문에 회원이 더 안 들어오더라고요. 좋은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번에 옥천군자원봉사센터에 가입해서 옥천다드림이라는 분점을 낸 거죠.”이경자 회장은 3개월에 한 번씩 영실애육원, 청산원, 영생원, 부활원, 요양원 등에 찾아가 빵을 전달했다. 대전에 세 번 봉사하면 옥천에 한 번 봉사를 나갔다. 그만큼 봉사단에 옥천 회원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옥천에 자주 올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를 아쉬워한 이 회장이 이번에 옥천다드림을 만든 것이다. 매달 회비 1만원을 걷어 운영하는 다드림봉사단은 옥천 회원이 기존 4명에서 현재 20명으로 늘었다.“회원이 더 늘면 옥천에서 더 많은 봉사를 할 수 있겠죠. 처음엔 지인 소개로 참여해서 요양원에 갔었거든요. 너무 좋더라고요. 나도 빵을 만들고 봉사를 해야겠다 싶었어요. 옥천 분들은 같이 가자고 해도 대전이 멀어서 안 가시더라고요. 보통 둘째, 넷째 주 토요일마다 장애인 시설에 빵을 드렸거든요. 예전에 제가 장애인분들 데리고 여행 가는 봉사도 했는데요. 예전에 봉사했던 그 시설에 빵을 만들러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기억이 좋아서 계속 다녔죠.”다드림봉사단 활동에 참여한 이경자 회장이 회원들과 함께 빵을 만들고 있다.■ 복지와 음식의 관심이 배움의 열정으로보은군 장안면이 고향인 이경자 회장은 속리초등학교, 보덕중학교를 졸업한 뒤 의정부에서 산업체부설학교를 나왔다. 친오빠를 고등학교 보내겠다는 집안 결정 때문이었다. 그가 옥천에 정착한 지는 30년. 의정부에 살던 중 아버님 돌아가시고 어머님이 홀로 사시는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이 고향에 돌아가 어머님을 모시겠다고 하면서 옥천에 오게 됐다.당시 옥천은 길 포장도 안 돼 있어 흙길을 다녀야 했다. 시내로 나가는 버스도 아침, 점심, 저녁 때 뿐이었다. 택시비 아낀다고 버스 시간이 될 때까지 몇 시간 기다리는 경우가 예삿일이었다. 아들 유치원 다닐 때 집이 물에 잠겼던 일을 떠오르면 지금 옥천은 도시나 다름없다. “옥천에 살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죠. 지금도 만나는 아기 엄마들이 학교에서 뵀던 분들이에요. 지금 동이에서 탁구동호회로 만나는 분들 보면 다 귀농하고 귀촌하신 분들이거든요. 예전부터 살던 사람은 저밖에 없더라고요.”지난달 11일 다드림봉사단이 우리고장 내 장애인·요양 시설에 빵을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했다.보건소에서 독거노인생활관리사로 일하며 어르신들을 돌보고 있는 이경자 회장. 2018년 충북도립대에 입학해 사회복지학, 식품학을 전공하며 배움을 찾았다. 그때 같이 다녔던 동문들과 함께 노래봉사, 빵 만들기 봉사에 참여하곤 했다. 이 회장은 전통발효식품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발효식품을 배운 지는 2년 됐어요. 된장, 고추장, 수제청, 막걸리, 김치 등 발효식품 관련된 건 다 해요. 어른들이 만든 된장을 먹어보면 너무 짠 거예요. 조금 덜 짜게 만드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대학교 들어가서 배우면 낫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했죠. 학교 졸업하고 대전에 있는 전통발효식품 학원에 다니면서 관련 자격증도 다 땄어요.”■ 봉사는 돈보다 사람으로 채우는 일이 회장은 지난해 죽향유치원 원생들에게 메주를 보여주며 전통발효식품의 가치를 알렸다. 메주 냄새를 맡아본 아이들은 똥 아니냐고 천진하게 물어봤다. ‘아니야, 이게 맛있는 된장이 되는 건데 냄새는 똥 같아도 나중 되면 맛있는 음식이 되니까 다 만들고 냄새 맡아보자.’ 처음에는 믿지 않는 반응이었다.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신기해하면서 맛있다, 맛없다며 표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발효식품에 관심이 있는 이경자 회장이 직접 담은 된장을 보여줬다. 그는 향후 청성면에 전통발효식품 교육장을 세울 계획이다. 청성초등학교 4~6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된장, 고추장 만드는 수업도 했었다. 아이들이 참 똑똑했다. 호기심이 많은지 깊숙한 걸 물어봤다. 수업 때 모든 과정을 하긴 어려워 50일이 지나 장을 담을 때쯤 다시 문자를 줬다. 메주하고 숯을 택배로 보내 만드는 법을 하나하나 알려줬다. 이 회장은 향후 청성면에 전통발효식품 교육장을 세울 계획이다.“전통식품은 살아있는 음식이라 곰팡이가 나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저어야 하거든요. 하얀 곰팡이가 났을 땐 먹어도 돼요. 그런데 새카만 곰팡이가 나면 버려야 해요. 새카만 곰팡이가 난다는 건 그 사람이 게으르다는 거예요. 얘를 안 쳐다봤다는 거예요. 옛날 어른들이 항아리를 닦아주잖아요. 그냥 닦아주는 게 아니라 얘가 잘 있나 바라보는 거죠. 시중에 있는 된장, 고추장은 상하지 않거든요. 앞으로는 살아있는 걸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이경자(오른쪽) 회장이 회원들과 함께 만든 빵들을 어떻게 배분할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봉사단 활동부터 어르신 말벗을 해드리는 생활관리사 그리고 전통발효식품 강사까지 다방면으로 지역을 누비고 있는 이경자 회장. 아이들부터 어르신까지 두루 사람들을 만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는 그의 활동이 기대된다.“봉사는요. 돈만 있어도 되지 않고요. 사람이 있어야 해요.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더라고요. 회원이 없어서, 사람이 없어서 봉사를 해준다고 해도 빵을 못 만든 날이 있었거든요. 그땐 정말 아쉬웠어요. 이렇게 좋고 맛있는 빵을 옥천 분들에게 많이 주고 싶다는 생각이 커서 옥천다드림을 만든 거고요. 제 직업이 어르신들 돌보는 일이잖아요. 제가 더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요. 옥천에 많은 분이 옥천다드림에 오셔서 같이 활동했으면 좋겠어요.”
인물일반 | 윤종훈 기자 | 2023-03-23 21:16
지난 3월10일 오전 10시 안남면 종미리에 있는 농장에 한 청년이 땀 흘려 일하고 있다. 그는 약 650평 규모 농장에 심은 꽃들이 잘 폈나, 병해충은 없나 살펴본 뒤 오전에 수확을 마칠 계획이다. 지난해 8월 온실 세 통을 설치하고 10~11월에 심은 꽃들을 약 5개월이 지나 출하 작업에 한창이다. 이 꽃들은 경매장에 가거나 온라인 판매가 이뤄진다. 옥천, 대전 꽃집에도 나간다. 최근 로컬푸드 교육을 마쳐 로컬푸드 꽃 납품도 성사했다.안남에서 ‘청춘꽃팜’이라는 이름으로 화훼농장을 운영하는 김지훈(29, 읍 마암리) 씨는 지난해 9월 옥천에 정착했다. 그에게 옥천은 친숙한 지역이다. 아버지 고향은 군서면, 어머니는 안남면 화학리로 어릴 때부터 부모님 따라 옥천에 자주 왔다. 귀농 준비를 위해 여러 지역을 알아보던 중 부모님 고향이면서 정감이 가는 옥천, 그것도 안남면에 꽃 농사를 하기로 결심했다.“화훼는 두 가지가 있어요. 분(盆)에 심어 놓는 ‘분화’ 그리고 제가 하는 것처럼 잘라 쓰는 ‘절화’인데요. 힘이 조금 들긴 하지만 저는 자르지 않고 뽑는 방식이에요. 실은 여러 사정이 맞물려 출하가 조금 늦어졌어요. 스토크, 프리지아를 키우고요. 스토크는 7만주가 심겨 있죠. 여름작기로는 겹해바라기, 유색해바라기, 냉이초를 키울 건데요.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스토크, 프리지아 두 가지는 계속 갈 거 같아요. 저는 향이 있는 꽃을 좋아하거든요.”안남면 종미리에 있는 화훼농장에서 일하는 청년농부 김지훈 씨를 만났다. 지난해 9월 부모님 고향인 옥천에 정착한 지훈 씨는 스토크, 프리지아를 재배하고 있다. ■ 스토크·프리지아 산지 ‘해남’에 가기까지대전에서 태어나고 경기도 안양에서 나고 자란 지훈 씨는 화초를 키우던 어머니 모습을 보고 자라 일상에서 식물을 만났다. 그렇지만 부모님 모두 농사일을 하진 않아 농사에 있어 자수성가형에 가깝다. 경기도 화성에 있는 특성화고에 다니며 화훼장식을 배웠던 지훈 씨는 꽃과 조경에 관심이 커져 전북 전주에 있는 한국농수산대학교 화훼학과에 진학했다. 꽃을 보면서 문득 근본이 무엇인지, 꽃이 어떻게 자라는지 알고 싶었다고.“청년 농부들은 보통 부모님이 닦아놓은 기반을 그대로 이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시행착오가 많았죠. 그렇지만 농고, 농대를 졸업해서 어떻게 보면 성골이에요(웃음). 처음엔 화훼가 아니라 조경을 하고 싶었어요. 농원이나 개인 주택 설계하는 일이 좋았거든요. 자격증도 땄는데 활동적인 제 성향과 안 맞았어요. 진로를 바꾸면서 찾은 게 화훼죠. 저는 조경이나 플로리스트(florist, 화훼장식가) 일이 멋있어 보였어요. 직업을 고를 때 첫 시작은 다들 그렇잖아요.”대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 그는 1년간 현장 실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훈 씨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호주에서 호접란을 분화로 키우는 법을 익혔다. 한국에 돌아와 6개월을 더 배우며 호접란 창업을 꿈꿨다. 현실의 벽을 느꼈던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설비는 현재 농장의 3~4배 더 들었다. 졸업 학기에 호접란 논문을 쓸 때 ‘도저히 타산이 안 맞겠다’고 판단했다. 지근거리에서 봤던 농장들은 굉장한 시간과 돈을 쏟았다는 사실을 알았다.김지훈 씨가 온실에 심은 꽃들의 상태를 확인하며 출하 작업에 한창이다.첫 직장으로 식물 스타트업, 마지막 직장이 화훼유통이었다. 1년 정도 서울 양재동 유통센터에서 경매 낙찰 받고, 온라인 판매하는 일을 했다. 그곳에서 꽃다발 잡는 요령, 꽃을 키우는 법, 유통까지 두루 습득했다. 이제 내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안남에 화훼농장을 짓는 시간 동안 1년 가까이 지인이 있는 전남 해남에 왕래했다. 현재 키우고 있는 스토크, 프리지아 산지가 주로 경기도 이천과 해남에 있어 재배하는 것부터 단계별로 배웠다.■ 옥천에서 만난 화훼농가 선배귀농인“제 인생에서 화훼를 하지 않았던 시간이 딱 한 번 있어요. 제가 옷을 좋아해서 서울 청담동에서 수트 맞춰주는 일을 했거든요. 길게는 안 하고 1년 안 되게 했는데 ‘내 길이 아니구나’ 싶어 식물로 돌아왔죠. 그때 경험이 좋았던 거 같아요. 농업은 생산물을 갖다 파는 일이지만 이 브랜드를 얼마나 가치 있게 만드냐도 중요하잖아요. 수트, 의류 쪽은 그런 게 잘 돼 있어요. 소비자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판매 쪽에 특화된 일을 했던 게 도움이 됐어요.”옥천에 지훈 씨처럼 절화 농사를 하는 농가가 한 곳 있다. 동이면 남곡리에 태양농원을 운영하는 조승범 대표다. 지훈 씨는 이번에 처음 프리지아를 재배하는 과정에서 오랜 경험이 있는 조 대표에게 조언을 구했다. 수확한 꽃들을 꽃차에 싣고 양재동 공판장으로 가는 과정에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만나는 사이라고. 타지에서 꽃 농사를 하는 대학교 동창과도 자주 연락하지만 지역에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훈 씨는 큰 힘을 얻는다.연분홍 스토크.연보라 스토크.흰색 스토크.그는 지난해 상반기 청년후계농에 선정돼 소기의 꿈을 이뤘다. 매달 나오는 영농정착지원금을 기반으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청년을 농촌에 데려오기 위한 정책으로 유의미한 일이지만 지원기간 3년은 짧은 것 같아 아쉬움을 느낀다. 시설 설치하고 꽃 재배하는 과정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앞으로 시설적인 면에서 충원해야 할 일도 많다.한창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꽃 수입이 막혀 내수가 활발해진 시기가 있었다. 지훈 씨는 당시 꽃 가격이 올라간 게 농민 입장에서 그저 웃을 일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졸업식, 어버이날 같은 특별한 날이 다가오면 가격이 2~3배 뜨지만 그 시기를 지나면 가격이 곤두박질치며 다시 내려가기 때문이다.■ “어머니 고향 안남은 달랐어요”“제 생각은 그래요. 호주에 살 때 느꼈지만 꽃을 사는 문화가 일상화했으면 좋겠어요. 호주는 일반 슈퍼마켓에도 꽃을 팔아요. 길거리 좌판에도 팔고요. 아무렇지 않게 사가거든요. 가격도 적당한 가격에 자주 파니까 시민들은 꾸준히 살 수 있어 좋고요. 일정한 가격으로 유지하는 게 소비자나 농가 입장에서 좋지 않을까 싶어요.”프리지아.지훈 씨는 안남에서 화훼농장을 운영하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농산물을 1차 생산해서 판매한다는 자부심이었다. 인구수나 면적으로 볼 때 옥천의 작은 면 단위에 속하는 안남면을 귀촌 지역으로 선택한 것도 자긍심으로 남는다. 배바우작은도서관도 있고, 등주봉도 있고, 아기자기한 것들이 있는 안남은 다른 지역과 다르다는 것. 일반적인 농촌 지역보다 분위기가 젊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어 좋았다고.일과가 끝나면 옥천에서 배드민턴 동호회 활동도 하고 수영이나 낚시, 캠핑을 즐기며 에너지를 채운다는 지훈 씨. 옥천에 화훼 농업이 더 활성화해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체험 농가로도 활용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저는 이제 시작이니까요. 계획적으로 움직이려고요. 현재 온실이 세 통이잖아요. 임차를 하든 토지를 구매해서 1천평 정도 늘릴 예정이고요. 온라인 사업을 더 확대할 거예요. 고객들은 ‘구성을 다채롭게 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많이 하시거든요. 보통 중도매들이 여러 농가에 있는 꽃을 사서 파는 형태인데 저는 중도매 느낌을 농장 자체에서 내는 게 꿈이에요. 화훼 시설을 더 지어서 여러 품종을 키우며 늘려가고 싶어요.”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지훈 씨는 오전에 수확을 끝내면 주문 받은 꽃들을 오후에 차례대로 보낸다. 보통 6시에 일과가 끝나는데 날이 더워지면 8~9시까지 야간작업을 할 예정이다. 출근 시간 또한 앞당겨진다.
인물일반 | 윤종훈 기자 | 2023-03-23 21:16